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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1분기 주요 힙합앨범 리뷰
    Review/Albums 2020. 5. 1. 15:56

    2020년 1월 ~ 3월 동안 발매된 주요 한국힙합 릴리즈를 발매일 순으로 짚고 넘어갑니다.


     

    Cox Billy - Black Comedy iiii (2020.01.01)

    아마도 제이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우여곡절' '나락'일 것이다. 커리어 내내 아쉬운 선택과 후회로 점철된 가사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음악의 완성도는 들쑥날쑥해졌고 그와 함께 리스너들의 지지도 급하락했다. 매드클라운-마미손에 이은 제2의 얼터 에고 컨셉인 '콕스 빌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더 이상 국힙씬 안에서 설 자리는 없어보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점에 불쑥 나온 콕스 빌리로서의 첫 정규 <Black Comedy iiii>는 더 이상 잃을 것도, 돌아갈 곳도 없는 한 래퍼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뒤틀리고 다크한 무드의 프로덕션에 얹혀진 공격적이고 과감한 랩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이 흔히 보여주는 험블함과 차분함이라는 클리셰를 정면으로 부수면서 이 앨범만의 가치를 새로이 획득했다. 그를 욕하면서도 음악적으로는 (혹시나) 기대하게 되는 새로운 경험이 리스너들에게 공유되는 순간 그의 음악적 생명력도 연장됐다.

    뱃사공 - 기린 EP (2020.01.16)

    뱃사공은 독특한 페이스의 아티스트다. 남들이 다 허겁지겁 뛸 때, 조금 느리게 걸어도 모든 걸음을 온전히 밟아내듯 차분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EP <기린>을 마치 스스로 다짐하듯한 따스한 사운드와 덤덤한 어조의 가사로 채운다. 현재 힙합씬의 빠른 흐름은 그의 낭만이 머무르기엔 급류가 되었고 그 안에서 뱃사공이 택한 방법은 어쩌면 외곬으로도 느껴진다. 그렇기에 뱃사공이 견지하는 태도는 때론 너무 올곧고, 또 지극히 순수하다. 본작은 마침내 고집스럽게 지켜낸 그의 깨끗함 (혹은 진정성)을 초연한 목소리로 전하며 어딘가 가슴 먹먹해지는 앨범으로 탄생했다. 포크라노스의 소개에 따르면 밴드 이안소프 출신의 프로듀서 Chilly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휴식같은 음악"을 추구하며 본작에서도 엿보이는 이런 성향이 앨범의 무드를 구축하는데 크게 일조한다. 2020년, 커리어의 중요한 한 점을 털어낸 그의 다음 행보는 분명 씬에서 주목해야 할 흐름이다.

    릴타치 - Boombap Mixtape 2 (2020.01.30)

    '고등래퍼' 출신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별안간 닥친 명성과 고정된 이미지가 유년기의 최대 장점인 자유로운 선택과 과감함에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담감에 묶여 결과물을 내지 못하거나 기대 이하의 후속작을 낸 고등래퍼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싸늘하다.

    릴타치의 정규 1집인 <Boombap Mixtape 2>는 씬에서 입지를 다지는 면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젊은 래퍼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그의 앨범은 예상을 깨는 요소로 가득하다. 앨범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장르들의 향연, 밸런스를 고려하지 않은 무지막지한 트랙 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려운 가사 전개에 맞물려 돌아가는 본능적인 랩이 그 예다. 두서없어 보이지만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젊음의 정서와 혈기왕성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장치들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완급조절 면에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방송출연 후 답보된 듯한 수많은 고등래퍼들 속에서 이미 한 명의 Young Trapper로서 거칠게 질주하는 그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국사람 - Netflix & Chill (2020.01.30)

    이 시점, 예상치못하게 상당히 감성적인 앨범을 가지고온것은 다름아닌 아티스트 한국사람이다. 크게 볼때 전작과 무드는 다르나 감성을 표현하는 화법이 익숙하다. 한국사람은 짧은 주기로 발매한 몇 가지 작품을 거쳐 소리를 감정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터득한 것 같다. 건조한 언어와 보컬로 표현한 공허함과 감정들의 농도가 짙다. 공허하고 쓸쓸한 전반부를 지나 타이틀곡 ‘little’은 내면세계를 소리로 표현한 듯, 모호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기에 직관적이다. 후반부 ‘오늘 밤 내 계획은 이래’에서 보여주듯, 때론 익살스러운 가사가 있는 앨범임에도 이러한 감정선을 느끼게되면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독특하지만 감정적 설득력이 있는 묘한 앨범이다.

    해쉬스완 - Silence of the REM (2020.02.05)

    해쉬스완은 '쇼미더머니5'의 충격적 첫 등장 이후 결과물로서는 항상 아쉬움을 남겼다. 그동안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작업했지만 유니크한 톤과 다양한 비트에서 자신만의 박자로 가져오는 존재감을 극대화할 최적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렘 수면'에서 깨어난 직후의 심상을 메인 테마로 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는 그의 첫 정규는 '일관된 무드' 조성을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칠한 무드를 바탕으로 한 일렉트로-팝 사운드에 적절한 싱잉을 얹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세팅했다. 다만 정규의 볼륨 안에서 그가 의도한 톤이 계속되는 데 오는 지루함의 함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는 아직 다 보여주지 않은, 여전히 리스너들을 기대하게 하는 그의 독특한 랩이 가지고 있는 숙제다.    

    Uneducated Kid - 선택받은 소년 (2020.02.09)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는 "랩을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길거리에서 약을 팔았을 것"이라며 당돌하게 앨범의 서문을 연다. 어딘가 엉성한 래핑, 그럼에도 곡 적재적소에 맞춰 구사하는 보컬 표현력, 그리고 극한까지 끌고 간 과장된 텍스트는 이미 그만의 전매특허다. 허구와 기믹, 그리고 사실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며 기어코 그는 자신을 신화적 존재로 그려낸다. 앨범은 무려 전곡이 타이틀이며 제목 또한 "선택받은 자"다. 과시의 방법에 있어 디테일한 접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헛웃음이 나오도록 어처구니없는 표현 사이사이 간혹 재치있는 표현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미 그의 클리셰가 된 요소들의 반복이 피로감으로 이어지는 점은 불가피하나 아쉽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는 분명 그의 고유영역을 구축했지만 전작 <HOODSTAR>로 끌어올린 기대치가 이후 그의 커리어엔 독으로 작용한 듯 하다. 씬의 박스 밖에서 등장한 게임체인저, 그 행보가 결과적으론 음악성 증명을 요구하는 잣대의 리그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기믹에 대한 반감 및 비호감 이미지는 리스너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공격하기위한 수단으로 남용된다. 그를 향한 맹목적 비난을 한풀 접어둘 때 그의 행보에 있어 이번 앨범이 어떤 의미인지를 선명히 곱씹어볼 수 있을것이다. 

    Yammo - Please Wipe My Versace Tears Away (2020.02.09)

    얌모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어느 누구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 누군가는 2013년 도끼의 앨범 참여를 언급하며 1세대 일리네어 키드라고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딘(DEAN)과의 인스타그램 설전을 얘기하기도 한다. 활동하는 크루도 레이블도 분명하지 않아 연관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에 대한 희미한 정보는 역설적으로 프로듀서로서 그가 쌓아온 가치를 입증한다. 얌모가 누군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어도 최소한 그의 시그니쳐 사운드가 담긴 비트는 일리네어부터 고등래퍼3 무대까지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2월 발표한 정규 <Please wipe my...>는 그가 프로듀서로서 꾸준히 다져온 브랜드의 공식 카탈로그와 같은 개념이다. 평소 그의 사운드를 좋아했으나 정보가 없어 분절적으로 감상하는 데 아쉬움이 있었던 리스너들을 위한 좋은 선물이자 샘플러가 될 것.       

    Euroko Pizza - Pizza Break Vol.3 (2020.02.17)

    유로코피자 컴필레이션, 그 세 번째 시리즈다. 사실 이 앨범은 놀라운 요소가 여런 담긴 흥미로운 앨범이다.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 중에서도 단연 깊이 있는 라인업과 퀄리티를 자랑한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사실 이 앨범의 본질을 따져보면 피자 프랜차이즈의 브랜딩&마케팅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오히려 음악적인 정체성이 이처럼 선명한 것이 독특하다. 한 마디로 센스가 있다. 2020년 현시점, 햄버거, 피자 등을 비롯한 미국식 패스트푸드가 가진 이미지는 분명하다. 힙스터들의 주식이자 큰 시각으로 볼때는 문화적인 흐름 또한 느껴지는것이다. 그렇기에 피자 브랜드와 힙합의 음악적 만남은 예견된 필연이 아닐까. 각 참여 아티스트의 장르적 매력이 무난히 드러나며 한편으론 매장 음악으로서의 기능이 영리하게 살아있다. 만약 멜론을 통해 처음 접하지 않았다면, 피자를 집어 들다 문득 반갑게 ‘샤잠’ 하고는 앨범의 정체에 적잖이 놀랐을법 하다.

    차메인 - 234 (2020.02.26)

    '쇼미더머니3'을 통해 이름을 알린 차메인으로부터 흔히 연상되는 키워드는 프로듀서 더콰이엇과의 지속되는 인연이다. 소울컴퍼니 시절을 연상케하는 더콰이엇의 비트 위에서 탄탄하게 랩을 했던 본선 1차 때의 모습은 이후에도 그가 종종 더콰이엇의 앨범에서 종종 등장하여 그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원천이 되었다. 

    군 전역 후 그가 내놓은 세번째 앨범 <234>는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깔끔한 사운드 위에 요즘 젊은 트랩퍼들이 시도해봤을 법한 구절이나 익숙한 전개들이 흘러간다. 특별히 기대 이하라거나 부족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동시에 차메인만의 고유한 매력이나 특출나게 좋았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더콰이엇'과 '쇼미더머니'를 떠올리지 않고서도 과연 차메인이라는 래퍼를 계속 찾아들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향후 차메인의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에 대한 힌트가 될 것이다.     

    DPR LIVE - Is Anybody Out There? (2020.03.03)

    다른 우주로 떠난 DPR LIVE는 우리에게 소중한 '보이저 레코드'를 남겨주었다. 프로덕션의 세련미로 유명한 그는 오히려 솔직하고 투박하게 자신의 감정을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즉, 사운드와 영상미 등이 아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척 개인적인 메시지, 그리고 극한으로 컨셉츄얼한 프로덕션을 통해 작품엔 영화 서사와 같은 매력이 느껴진다. 시작부터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는 추락의 시점에 긴장감의 정점을 찍는다. 이어 주마등 혹은 기록을 재생하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곡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자아의 감정선과 우주라는 소재가 절묘하게 맞닿아있는 초반부의 세밀한 묘사는 이어져 지구를 떠나는 순간에 이른다. 이후 우주를 여행하며 중간중간 타 여행자, 즉 외계인 (Alien)과의 로맨스를 그리듯 로맨틱한 순간이 이어진다. 

    다양한 색의 빛으로 채워진 시공간의 터널을 지나 다른 세상, 혹은 다른 지구에 도달한 DPR LIVE. 이 과정에서 그는 유년기, 성취, 고뇌와 사랑 등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담아낸 예술적 유산 (LEGACY)을 남긴다. 커버아트 속, 화성 분위기의 토양에 사출된 듯한 우주 포장 재질의 피지컬 앨범에서 다양한 태도가 엿보인다. 이런 순간들이 그에게 얼마나 감정적이고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일말의 미련도 없이 다음 걸음을 내디디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된 비하인드에서 작품 외적으로 더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구상되었음을 느꼈다. 준비된 완성도를 온전히 보여준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본작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디테일이 미처 아쉽다. 다큐멘터리에서 언급했듯, DPR 유니버스의 구축 과정에서 이런 요소들이 꼭 생명력을 얻길 바란다.

    Swings - UPGRADE IV (2020.03.04)

    그가 전곡 셀프 프로듀싱한 이번 복귀작은 그를 향한 기울어지는 판세 속에서 과감히 던진 승부수였다. 10년 이상 지속된 '업그레이드' 시리즈가 주는 특유의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보다 빨라지는 트렌드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Upgrade IV>는 그의 고유한 매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 작품이다. 

    (자세한 리뷰는 Review > Albums 를 참조하세요) 

    Tommy Strate - Tommy Strate Part. 1 (2020.03.04)

    허슬은 일종의 보증수표다. 허슬러라는 이유만으로 듣기 전에 이미 이름값이 믿음직한 느낌을 주는것이다. 타미 스트레이트, 키드밀리, 그리고 릴 오빠는 이런 점에서 믿음직한 조합이다. 직접 프로듀싱한 대부분 곡의 미니멀한 느낌이 고저없이 반복적인 느낌을 주는 래핑과 독특하게 어우러진. 타미 스트레이트의 랩을 스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것은 이미 구시대적이 아닐까. 요컨대 그가 뱉고있는것은 기술보다는 뉘앙스나 태도에 가깝다. 카톡 알림음이 들어가건 말건, 기술적인 장치를 욱여넣는것이 아니라 필요한 바이브와 멋에 집중한다. 혹자는 이를 양산된 음악이라 말 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양이 질이  시대에서 그만의 색깔은 분명 조금씩 농익어가고 있는 듯 하다.

    BLNK(블랭) - Flame (2020.03.05)

    리짓군즈의 오랜 팬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초입(?) 리스너들에게 블랭은 '내일의 숙취', '딩고x리짓군즈' 등의 뉴미디어 예능에서 보여준 진행능력과 재치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뱃사공의 경우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태도와 모던락/밴드 사운드의 정서에 기반한 음악색깔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반면 블랭의 경우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유쾌한 모습과 그의 음악 사이 느껴지는 간극을 통해 그의 매력이 배가 된다. 

    <Flame>은 컨템포러리 어반의 정서에 기반한 다양한 흑인음악의 색채로 앨범의 전체적인 무드를 총괄했다. 그 위에 얹혀진 다양한 세션은 도시를 살아가는 한 예술가의 이야기장을 생생하게 연출한다. 그 무대 위에 마치 광대처럼 다양한 컨셉과 목소리톤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블랭이 서 있다.       

    Don Malik - 선인장화 (2020.03.06)

    현실은 사막과 같이 건조하고 메말랐고 값진 무언가의 생명을 싹틔우기란 쉽지않다. 앨범 커버 속 사막에 늘어선 신호등은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자 선인장이다. 신호등은 정해진 신호로 타인의 통행을 조율하는 신호체계 기반의 메마른 소통, 즉 단절을 상징하는 듯 하다. 선인장은 곧 가시돋힌 방어기재이자 메마른 현실의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변화한 모습, 즉 결과물이다. 딱 "준비 된 만큼 사랑하"고, 음악과 사랑, 돈에 우선순위를 매기며. 그렇기에 신호등과 선인장은 현실을 살아내며 조금씩 변화한 자신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오브제다. 이러한 배경에서 던말릭은 앨범 속 돈, 자살시도, 가정폭력 등 자신의 다양한 상처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놀랍게도 그의 태도는 감정적이지 않으며 되려 담담하다. 다만 밀도있게 조합된 언어에는 이 기억들이 내포한 생생한 감정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이 곧 음악적 성숙으로 이어지며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받은 영향과 앞으로 자신이 뿌린 씨앗이 끼쳐갈 영향에 대해 말한다. 어쩌면 힙합 팬들에게는 이 지점이 앨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말미에 이르러 자신이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는 과정과 누군가가 자신의 누군가가 되는 과정을 성찰한 던말릭은 한차례 더 변화한다. 생존 행위의 끝에 이윽고 사랑과 영향력을 통해 서로의 선인장에 아름다운 꽃이 개화한다. 그의 말처럼, 여지껏 겪어온 모든 기억들을 고스란히 갈무리하는 이 앨범은 분명 한 인간의 삶에서 "딱 한 번 할 수 있는 자기 이야기"이다. 

    Ash-B - Ok Bish (2020.03.07)

    애쉬비는 여성래퍼들 중 걸쳐져 있던 세대다. 쇼미더머니를 필두로 한 힙합의 부흥이 여성래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때 그녀는 흥행이 가장 저조했던 언프리티 랩스타 3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수혜를 충분히 누리기엔 시간이 짧았던 셈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아쉬운 결과들은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간 겪어온 다양한 경쟁과 실패의 아쉬움은 성공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래퍼 애쉬비에 보다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꾸준히 단련된 랩스킬이 얹어지니 섹슈얼한 컨셉과 애티튜드는 그녀를 차별화하는 무기로서 훌륭하게 기능한다. 마침내 실력이 바탕이 된 (여성래퍼의) 도발적인 컨셉에 빠져들게 되는 기분 좋은 순간.       

    수퍼비 - Rap Legend 2 (2020.03.13)

    'Rap Legend 1'과는 접근과 무게가 달라졌지만 랩 그 자체라는 수퍼비의 무기는 여전히 날이 선명하다. 어김없이 강력한 이 무기를 들고있는 그의 표정은 전과 달리 몹시 화가 나있다. 치카노 폰트의 타이틀은 'Rap'을, 붉은 색감과 종이 질감, 그리고 불을 뿜는 드래곤은 'Legend'를 나타내는 직관적 요소들이다. 드래곤은 흔히 태고의 존재로 일컫어진다. 작중 수퍼비의 정체성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씬의 최전선에 위치한 영앤리치의 행보, 그리고 그가 여태까지 보여온 영리한 행보에도 불구, 그에게선 힙합의 뿌리를 강조하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세련된 하드웨어 이면의 소프트웨어는 흔히 말하는 올드스쿨 래퍼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화법은 고집스럽고 외골수다. 첫 트랙부터 비장하게 시작되는 앨범은 수퍼비가 그리는 이상적 힙합의 모습을 재현함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래퍼들을 날카롭게 공격한다. 그는 자신이 보여준 것이 단순히 돈자랑으로 치부되는 것에 분노한다. 이 앨범의 융통성 부재는 곧 리스너에 대한 분노로부터 비롯된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2020 버벌진트로 묘사한 것은 부연설명을 요하지 않는, 명료한 비유다. 그렇기에 유머와 접근의 세련미를 배제한 앨범의 완고한 태도는 듣는 맛을 텁텁하게 만드는 아쉬움, 혹은 확고한 신념에 따른 비장한 멋일수도 있다.

    언오피셜보이 - drugonline (2020.03.13)

    '고등래퍼 시즌 1'을 통해 알려진 이수린은 완성도 있는 랩과는 달리 커리어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면모로 번번이 회자되었다. 이끌던 크루 '딕키즈'의 갑작스런 탈퇴를 시작으로 수 차례 랩네임을 개명하면서 (배디 호미 -> 루다 -> 언오피셜보이) 이전 작업물과 기록 (프리스타일 배틀 우승)에 대한 어떤 링크도 남겨놓지 않아 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점차 사라져갔다. 심지어 이번 정규는 거의 홍보가 없었던 상태에서 발매되어 대부분의 리스너들은 이 앨범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공산이 크다. 

    소리 없이 나온 언오피셜보이의 정규 <drugonline>은 이렇다 할 PR이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인상적인 수작이다. 이전의 각 랩네임과 정체성이 보여주었던 특징과 장점이 비로소 이 앨범을 통해 하나로 발화한다. 배디호미 시절 다져진 랩 스킬과 루다 시절의 랩-싱잉, 다양한 장르 시도가 체화되어 트랩의 넥스트를 고민하고 도전한다. <drugonline>을 접한 리스너들은 많지 않지만 최소한 이 앨범을 접한 이들은 모두가 묻혀서 아쉬운 상반기 최대의 수작이라 칭하는 점에서 그의 시도가 단순히 욕심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김승민 - Rio Loves Tokyo Part.1 (2020.03.20)

    김승민이라는 아티스트의 보여지는 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명확히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다양하기 때문에. 우주비행의 일원, 뷰티풀노이즈의 아티스트,  개인 커리어 등 시점에 따라 보여지는 모습이 모두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당초 김승민에 대한 필자의 첫인상은 스킬풀한 래퍼이나 어딘가 랩 잘하는 일반인같은 캐릭터였다. 이후 예상외의 기획사에 소속되고 예상외의 음악을 하던 그였기에 받아들여지는 인상이 선명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의 주특기중 하나인 싱잉랩으로 꾸면진 앨범은 퀄리티가 무척 준수하다. 개인적인 고민과 자질구레할 수 있는 감정들을 세련된 이모랩으로 풀어냈다. 이모랩은 지금 한국 힙합의 트렌드이자 가장 상업적인 힙합 음악이라 느껴진다. 생소함에도 상업적으로 어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에 대한 산증인, 애쉬 아일랜드와 김승민의 합은 대중적인 힙합의 모습, 그 자체다. 한편으론 이 유형이 복제되는 유행으로 자리잡은 점이 빠르게 장르 고유의 희소가치를 희석한다. 그렇기에 듣기 좋음에도 불구 김승민이 가진 고유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플라 - u-n-u (2020.03.24)

    약 3분의 1이 지나간 2020년, 가장 큰 반전은 이 앨범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실 모두의 기대를 보기좋게 따돌려 당황하게 한 나플라의 앨범이다. 앨범은 2개의 파트로 나눠 발매했고 이는 이미 일반적인 과정이며 하나의 유행인 듯 하다. 우선 첫인상은 나플라의 새로운 컨셉에서 느껴진 놀라움이 가장 컸다. 강렬한 이미지가 주 되었던 그의 전작들에 비하는 정도가 아닌, 어지간한 감성적 힙합 음악보다도 농도 짙게 감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곡이 예상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주며 완벽한 이미지 변신과 아티스트의 실력에 대한 신뢰도 상승,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다. 잘 만들어진 좋은 EP를 듣는 느낌이었다. 이후 발매된 파트 2는 조금 더 정규에 가까운 런타임이다. 두 파트의 느낌은 비슷한 듯 사뭇 다르다.

    파트 2는 조금 더 랩이 강조된 곡들을 통해 주제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정규임에도 불구하고 오밀조밀한 기획의 느낌보단 현재 나플라의 감정과 영감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느낌이다. 그렇기에 정규라는 관점으로 보면 파트 1에 비해 몇 곡이 사족으로 느껴지는 파트 2의 구성이 아쉽다. 조금 더 컴팩트한 구성이었다면 나플라의 감성을 세련되게 표현한 풀-렝스 정규앨범으로 기능하는 느낌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컨대 에너지를 응축해서 좀더 영리하게 가는 방법이 분명 있었으리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전의 이미지를 덮어쓰기 하는것은 분명 성공한 앨범인 만큼, 그의 추후 행보를 충분히 기대할 만 하다. 

    Sik-K x Goosebumps - Officially OG (2020.03.24)

    식케이는 커리어의 태생부터 양면성을 지닌 래퍼다. 데뷔 초기부터 트래비스 스캇에 대한 적극적인 오마주/레퍼런스로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반대로 그 유사성에 기반한 매력이 그가 동년배 래퍼들과는 차별화되는 래퍼 이상의 (월드투어를 다니는) 케이팝스타로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프로듀서 구스범스와의 합작 EP인 <Officially OG>는 이미 성공의 궤도에 안착한 아티스트가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포지셔닝을 단단하게 구축하는 법에 대한 모범 사례다. 씬의 OG 라는 주제에 따라 기용된 아티스트들과 자웅을 겨루거나 시너지를 내는 심플한 구성이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프로덕션에 무게감을 부여하는 구스범스의 디렉팅과 만나 EP이지만 LP같은 알찬 구성을 자랑한다. 랩-싱잉의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식케이가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   

    한요한 - 원기옥 (2020.03.28)

    샤우팅, 기타, 락스타, 일렉트로닉  구성, 일본 락음악 풍의 감성. 이것들은 한요한이 이미 그가 명료하게 깔아놓고 보여주는 손패다. 이처럼 가지고 있는 패와 무기가 명확하기에 구사할 수 있는 음악의 결 또한 분명하다. 음악의 결이 분명한 만큼 장점이 두드러지지만 한편으론 모든 곡이 영락없는 자기복제다. 전작 엑시브부터 원기옥까지의 행보 (스윙스와의 합작을 포함한)에서 음악적 다양성을 엿볼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이런 점은 결국 아티스트와 창작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연결된다. 과연 아티스트는 다양한 음악을 해야하는가? 도끼는 비슷한 갑론을박에 관해 상당히 우직하며 설득력있는 태도로 일관했다. 어쩌면 한요한이 현시점 가장 'fresh한' 아티스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약간씩 새로운 요소와 접근을 섞는 것. 이 일관된 스타일을 머천다이즈화 하며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구축하는 것. 한요한의 곡은 일종의 프랜차이즈처럼 느껴진다. 일정한 퀄리티와 형태, 감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어느 한 곡만 들어가도 한요한임을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의도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캐치하고 구사하는 영리함이라 생각된다.

    Coogie - UP! (2020.03.29)

    쿠기는 데뷔 초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알려졌다. '쇼미더머니777' 속 더콰이엇의 일관된 사랑 외에도 그가 참여한 단체곡들에서 그의 스킬을 기대하고 칭찬했던 리스너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의 진가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랩스킬을 넘어 곡 해석력에서 나온다. 최대한 비트의 리듬을 해치지 않는 플로우 디자인과 타격감 있는 라이밍이 만나 그의 랩은 스킬풀하지만 단조롭거나 피로하지 않다. 여기에 감각있는 랩-싱잉이 곁들여지니 소화할 수 있는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그의 정규 <UP!>은 그런 그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는 야심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Dope한 힙합 트랙부터 팝적 어프로치가 돋보이는 곡들까지 배치한 전형적 블록버스터 앨범의 구성이지만 게스트들과의 조화를 통해 어느 쪽도 놓치지 않고 간다. 동갑내기인 창모, 식케이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케이팝 알앤비/힙합 스타로서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품게 만드는 작품.      

    ODEE - Scumbag EP (2020.03.29)

    EP 본디 구성상 애매한 존재다. 정규처럼 꾸며버리면 중간에 끊기는 아쉬운 느낌이, 싱글의 확장처럼 꾸미면 단순한  나열같은 게으른 느낌이 드니까. 오디의 EP  그대로 EP다운 EP 무엇인가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다. 짧은 런타임으로 듣기 부담되지않는 정도의 무게감을 유지하며 각 곡의 존재감과 유기성이 절묘한 밸런스를 맞춘 앨범이라는 의미다. 사기적이란 수식어가 떠날 일 없는 오디의 랩톤은 매력적인 하드웨어다. 발음이나 작사를 응용하는 방식 또한 전보다 훨씬 세련되어져 듣는맛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뛰어난 비트초이스가 오디의 스타일을 적절히 보조하며 시너지를 내 한결  흥미로운 결과물로 탄생했다. 피처링진들의 존재감 또한 적재적소 흐름을 환기하는데 일조한다. 특히 빌스택스의 기용은 이 외엔 길이 없는 정답이라 생각될 정도로 적절한 선택인 듯 하다. 모든 곡의 훅이 클래식한 구성에도 불구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며 귀에 잘 걸리기에 기억에 남는다. 오디의 음악적 진보가 추후 어떤 결과물로 또 이어질지 무척 기대되게 만드는 앨범이다. 

    Blase(블라세) - WAGWAN (2020.03.31)

    블라세 하면 쿠기의 초기 싱글 <Movin' and Movin'>에서 여유롭지만 단단한 랩을 들려준 조연으로 떠올리는 리스너들이 많을 것이다. 쿠기가 트랩부터 팝/알앤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래퍼 이상의 케이팝 엔터테이너로서의 확장을 도모한다면, 같은 Hive Crew 소속 블라세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장르와 무드를 좁힌 뒤, 그 안에서 소위 '랩으로 조지기'를 시전한다. 그의 정규 <WAGWAN>은 청각적 쾌감에 집중한 호쾌한 앨범이다. 시종일관 다이나믹하게 몰아치는 그의 랩이 가끔은 비슷한 전개로 들려 아쉽지만 적재적소에 배치한 어글리덕, 빌스택스, 식케이, 쿠기 등의 게스트들이 단점을 적절하게 상쇄해준다. 그만의 고유한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제는 아직 남아있는 듯하지만 패기 넘치는 신인의 첫 정규로서는 재미있게 즐길 거리가 많은 작품.    

     

    Written by Vapizz (원지훈), 안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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