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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힙합 앨범 대담: DEEPFLOW - FOUNDER
    Review/Albums 2020. 5. 19. 16:37

    지난 4월 발매 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딥플로우의 4번째 정규 앨범 [FOUNDER].

    힙합뮤지션이자 대중음악 레이블 대표로서 겪는 애환을 실감나게 풀어낸 그의 음악과 스토리에 뜨겁게 공감한 음악산업 종사자 분들을 모시고 대담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 호스트 : 안승배(IT회사 마케터, 전 로엔엔터테인먼트 근무, 이하 '안')
    • 참여 : 원지훈(유니버설 뮤직 A&R, 이하 '원'), 백승용(브랜뉴 뮤직 A&R, 이하 '백')

    1. [FOUNDER],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백 : (한 때 뮤지션으로도 활동했던) 저는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동네 형'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미 힙합 아티스트로서 랩 음악으로 성공한 많은 뮤지션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 과정을 건너 뛰고 '그래 난 성공했어' 의 결과 위주로 어필하는 가사가 많았거든요 (그게 꼭 잘못된건 아니지만요). 그런데 그 성공 과정을 정말 자세히 풀어낸 점이 같은 맥락에서 음악을 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저에게 많은 공감이 되었던 같습니다. 지금까지 딥플로우 님의 음악을 15년 넘게 들어왔지만 그 어떤 앨범들보다 가장 무게감이 느껴졌어요. 

    원 : 저는 랩이 직업이 되고 (힙합) 크루가 레이블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희노애락에 많이 공감했는데, 이게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만해도 한 때 음악에만 집중하던 뮤지션의 시기가 있었는데 이후 음악회사에 입사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잘 준비된 마술의 트릭을 전부 알아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동안 한국힙합 안에서 예술의 뒷편에 존재하는 '현실'의 존재 혹은 가치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번 앨범은 그 지점을 굉장히 영리하게, 감정적으로 다루면서도 힙합적으로 승화하는데 성공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안 : 말씀주신 것처럼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이면' 과 '현실' 같아요. 뮤지션에서 음악업계종사자로 포지션이 변경되면서 달라진 시야에 대해 좀 더 여쭤봐도 될까요?

    원 : 사실 음악에만 집중하던 시기엔 저나 저희 크루 뮤지션들은 기획사라는 것의 존재 의미를 잘 몰랐어요. 저작권이라는 개념도 그랬고요. 처음 멜론에 곡을 등록할 때만 해도 당최 뭐가 뭔지 몰랐으니까요. 앨범의 주인인 아티스트만이 모든 관점의 중심이었던 것 같아요. 앨범을 들으면 '어떻게 만든건진 모르지만 (아티스트가) 뚝딱 만들어냈구나' 하고 막연하게 느꼈던거죠.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다가 음악회사에 입사한 뒤 업계 일을 시작한거에요. 음원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아티스트의 예산 관리를 하면서... 한 마디로 아티스트의 노래 한 곡의 정확한 값어치를 한 눈에 보게 된 것 같아요. 수치적으로 '이 곡은 몇천만원 짜리구나. 멜론 000위 곡이구나. 이 뮤비는 조회수 000 어치의 뮤비 정도 되겠구나' 같은 생각들?

    백 : 말씀 주신 (음악업계에서 통용되는) 그런 수치적인 부분들을 자세하게 얘기하는 앨범 가사들이 소위 '업계종사자' 라 불리는 저를 크게 반성하게 했어요. 가령 'DEAD STOCK' 에서 '매달 23일 새로고침 가격표' 라는 가사나 'Big Deal' 에서 '박리다매 행사는 우릴 감가상각 시키지' 같은 부분들이 말이죠. (뮤지션 시절) 그렇게 넘으려고 했던 (아쉬운) 시스템과 음악산업이라는 벽을 더 단단하게 세우는 일원인 저를 발견하게 되어 조금 씁쓸했습니다. 그래서 앨범을 듣다보면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씁쓸함과 나를 대신해 이루어준 듯한 뿌듯함이 양가감정으로 느껴지는 듯해요. 

    원 : 네 저도 제가 새로 장착한 그런 시선들이 썩 달갑지 않았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계약서에 사인한 순간, 혹은 수익 창출의 목적이 조금이라도 앨범에 담긴 순간 앨범은 프로젝트가 되고 아티스트를 포함한 관련 인원들은 프로젝트의 스태프들이 되는 것이더라고요. 

    그렇게 시선을 돌리고나니 음악업계에서 흑백논리로 재단해왔던 무수한 선택들이 어떤 (고민의) 무게를 헤쳐나와 내린 결론들인지 배우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 앨범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화자인 딥플로우 본인이 회사대표이자 프로젝트 매니저 당사자의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산업 이야기를 함에도 구구절절하다기 보다는 멋이 배어나왔던 것 같아요. 어떤 리스너들은 '일종의 타협에 대한 변명', '멋있는 변명' 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지만요 (웃음). 결국 사람들이 돈을 대하는 양가적인 태도가 이 앨범을 향한 호불호를 가르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안 : (이전에 사석에서도) 올 상반기 발매된 JJK의 새 앨범과 더불어 굉장히 반가운 앨범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어떤 부분들이 반가우셨나요?

    원 : 저는 두 분의 새앨범 모두 너무 반가웠던 것이 둘 다 등장 당시에 씬에 충격을 줬던 플레이어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000년대 중반 당시에도 한 발짝 씩 앞서서 뭔가를 했던 그 당시의 다음 세대들이 이제 세월이 흘러 OG가 되었잖아요? 그러면서 OG들만이 할 수 있는 음악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전 세대들의 음악이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이 항상 아쉬운 지점이었는데 한국힙합 전체로 보면 지금이 시작인 것 같거든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딥플로우 세대의 래퍼들이 레이블 대표가 되는 것을 선택하면서 국힙을 산업 구조로 재편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고요. 래퍼들의 커리어 평균수명이 계속 연장되고 있는데 이 흐름이 이어지면 그 다음 세대들의 음악이 어떻게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질지가 기대되는 것이죠. 힙합도 이제 조금씩 역사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백 : 맞습니다. 이번이 가장으로서의 결과물이잖아요? [FOUNDER] 앨범은 '누구도 성공할 수 있다' 에서 '누구도 언젠가는 증명할 수 있다' 를 씬에 던져 준 사례라고 봅니다. 한국의 20대 뮤지션들에게는 유독 시간적 조건이 가혹한데요. '군대가면 선수 생명 끝이야' 혹은 '결혼하면 음악 생활 끝이야' 같은 굴레들 속에서 보여주고 증명하는 앨범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한국힙합이 10대, 20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면 이제 30대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확실하게 개척한거죠. 


    2. [FOUNDER]에 대한 공감

     

    안 : 이번 앨범의 가사들은 굉장히 구체적이면서 개인적이기도 해요. [FOUNDER] 앨범을 이해하려면 결국 음악산업의 일부를 어느 정도는 몸으로 겪어봐야 알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일까요?

    백 : 저는 이 앨범 가사에 담긴 백그라운드를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봐요. 꼭 음악산업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파노라마' 에 담긴 가사들을 몸소 경험한 세대들이라면 업계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간접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2020년에는 다소 어색한 가사지만, 압구정 상아레코드에서 천원짜리를 세가며 음반을 사고 CDP에 VJ의 [Modern Rhymes EP]와 소울컴퍼니의 [The Bangerz]를 넣어가며 듣고 얘기하고, 피씨방에서는 프리스타일을 주말 클럽으로는 홍대 코쿤을 갔던 세대들이라면 분명 주위에 이런 음악을 하겠다던 친구가 한 명쯤은 있었을 거거든요 (웃음). 

    원 : 감정선에 충분히 공감할 여지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가장의 어깨' 같은 상투적이지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로 이루어진 구성이라 생각되거든요. 다만 분명히 여러 입장을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더 깊이 있게 다가올 것 같아요. 

    백 : 'BEP' 같은 트랙은 개념적으로는 누구나 다 알지만 그 단어에 얽힌 상황적인 온도를 100%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 있죠. '방송이 터진 건 넉살인데 왜 다른 애들 뮤비에 몇 천씩 불러?' 같은 가사는 업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분들이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거에요.  

    원 :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힙합이 산업적으로 좀 더 파이를 키우게 되면 분명 재평가될 앨범인 것 같아요. 그 시기가 되면 예술과 기업의 관계가 좀 더 명확하게 구분되고 이해되고 있지 않을까요?

    백 : 그 재평가의 여지를 마지막 트랙인 'Blueprint' 에 이로한을 참여시키며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인수인계 받은 이로한 님이 다음 10년 동안 만들어 나가야 할 청사진? (웃음) 


    3. [FOUNDER], 그리고 업계의 현실

     

    안 : 5번 트랙 '대중문화예술기획업'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 나눠 보고 싶은데요, 아티스트인 동시에 업계종사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 곡이 표현하는 업계의 현실과 답답함을 느낄 만한 에피소드들이 또 있을까요? 딥플로우가 시간 상 생략했을만한 얘기들?

    원 : 저는 그 곡 자체가 답답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것 같아요. 사실 대중들이 보기에 레이블 설립이 거창할 수 있지만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네이버 고객센터에 연락해서 소속사 변경하는...자질구레한 일들이거든요 (웃음). '업종에 힙합이라 써야하나' 같은 가사가 그런 순간들의 일부인 거죠. 급여 형태로 금액이 지불된 기록이라는 지점에 대한 해석도 (아티스트들에게 물어보면) 뭔가 음악으로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단 한 순간에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백 : 가사 속에서 아티스트가 느끼는 현타라면 이런 사례가 있을 수 있겠네요. 보통 역삼동 콘텐츠진흥원에 방문해서 서류를 제출하는 날에는 진흥원 직원들의 이상한 눈초리와 시선을 견뎌야 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무대 위와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도장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하며 쭈뼛쭈뼛 하는 상황 간의 괴리감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원 : 사실 현실적인 부분을 제쳐두고 보면 일반적으로 사회에 나가면서 처음 세금, 부동산 계약 등을 진행할 때 느끼는 답답함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음악인으로서 성숙해져가는 과정인 것 같은데요, 타협이 아니라 세상의 룰에 힙합을 맞춰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죠. 이런 과정들을 타협이라 부르고 배척하는 순간, 내가 사랑한다고 하는 힙합에게 "밥먹지 말고 열심히 일해!"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리스너 분들이 아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백 :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이라는 제도가 생길 당시에는 아이돌 연습생을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돈을 요구하고 갈취하는 악덕 사기꾼이 워낙 많긴 했었어요. 그래서 그런 사짜들을 거르기 위한 국가의 제도적 장치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그 4년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정해진건지 알 수 없었다는 거죠. 당시에 일반 가요 기획사에 재직중이셨던 매니저들과 일반 직원들도 그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었고요.

    이제는 기준이 2년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업종 특성상 아직도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아요. 어린이 모델과 연습생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100만원을 수업료로 요구하는 곳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원 : 사실 간단한 유통 계약을 체결할 때도 서류 작업 없이 계약을 한다는 건 PPT 하나 보고 소규모 스타트업과 계약하겠다고 하는 말과 다름 없거든요. 앨범 안에서 (절차 같은) 부분을 너무 조롱하거나 'Fuck the system' 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풀어간 지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안 : 확실히 딥플로우의 장점이 그런 지점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클리셰로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잘 끌어다가 웰메이드로 승화시키는? (원 : 맞아요, 그 세심함이 딥플로우님만의 독특한 설득력을 만드는 것 같아요)


    4. [FOUNDER]를 둘러싼 호불호. 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안 : 이번 앨범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 딥플로우의 진가를 느끼고 좋아한 분들이 있는 반면 '그럴싸한 변명' 정도로 치부하는 분들도 있고 전반적으로 '의견의 양극화' 가 보이거든요. 이 앨범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티스트나 리스너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원 : 저는 이 오해의 원인이 사실 앨범과 아티스트의 삶을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티스트 개인이 삶에서 많은 생각들을 소화하는 과정과 그것이 앨범으로 나오는 주기, 그리고 그 앨범을 소비한 대중들이 이를 기반으로 해당 아티스트를 '어떤 사람이구나' 하고 규정하는 시점까지 각각의 시차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될 것 같아요. 

    백 : 저는 모두를 설득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전체 대중이 아니라 힙합 장르 내 코어 팬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말이죠. 가끔 데일리로 펼쳐지는 디스곡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내용에 의심을 품지 않고 가사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EP나 정규에 관해서는 가사 한줄한줄에 좀 다른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 : 앨범에서 한 얘기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면 바로 공격당하는 현상은 그 가사들이 정말 멋지기 때문에 그로 인한 배신감을 리스너들이 느끼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버벌진트 님의 작업물들이 좋은 예시였던 것 같은데... 여기서 리스너들에게 업계 관계자와 같은 시선이나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힙합을 볼 때 힙합음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문화 안에서 산업으로 기능하는 것들의 전체 프레임워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Interviewer : 안승배 / Interviewee : 원지훈, 백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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