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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LL STAX - DETOX
    Review/Albums 2020. 4. 24. 23:16

    BILL STAX - DETOX Album Cover

    (*이 글에서 다루는 물의 중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형태의 범죄는 포함하지 않았음을 서두에 밝힌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한국에서) 아티스트가 물의를 빚었을 땐 어떻게 해야할까? 이미 대다수의 머릿속에는 흡사 매뉴얼과도 같은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대국민 대상 사과문에 이은 무기한 자숙은 필수요, 혹여나 복귀한다 해도 결과물에 반성의 흔적이 선명하지 않다면 금세 도마 위에 오른다. 반성에 대한 강박이 두드러질수록 결과물은 뻔해지고 아티스트는 위축된다. 요컨대 논란에 대한 예술가의 대처 방식은 향후 결과물의 완성도를 엿볼 수 있는 열쇠와 같다.

    한국힙합씬의 경우 이 문제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대처하는 래퍼들이 생기고 있다. 이센스는 리얼리티 다큐 'I"M GOOD' 에서 보여준 출소 이후 컴백 과정으로 굴곡진 커리어에 페이소스를 부여했다. 씨잼은 작년 발매한 '킁' 앨범에서 타락과 참회를 오가는 불안정한 자아를 쿨하게 그려내어 '노잼' 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 소개하는 (구 바스코) 빌스택스는 앞선 두 래퍼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앨범 커버에서 보여지듯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에 대한 정면돌파가 그것이다. 

    그의 첫 정규 앨범인 [DETOX]는 트랙 구성부터 가사까지 초지일관 대마초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미 뜨거운 커뮤니티 반응들처럼 앨범의 호불호 요인도 이 주제의식의 극단적 추구에서 나온다. 옹호하는 입장에겐 데빈 더 듀드(Devin the dude)부터 위즈 칼리파(Wiz Khalifa)까지 이어져온 '100% 대마초 랩', 미국에선 이미 익숙한 장르의 로컬화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의 행보는 반성 없는 범법자의 이슈 메이킹이다. 설사 중립일지언정 (미국에서) 계속 이어지던 대마초 랩의 한국 버전 이상의 가치에 대해 의문이 들 것이다. 

    잠시 초점을 돌려 한국사회가 대마초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서 대마초 자체에 대한 찬반 이론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참고로 필자는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다만 주목할 점은 타 이슈 대비 대마초 언급 자체로 생기는 소통의 병목이다. 가령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벌어지는 합법화나 국내 아티스트들이 그간 전개해온 합법화 운동을 다루는 포스팅들을 봐도 그렇다. 포털 댓글들을 요약하면 귀를 막은채 상대방을 향해 외치는 고성방가다. "나라에서 불법이라는 데 어딜 감히" 라는 (자기만의) 무적 논리가 모든 정반합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빌스택스가 말했던 것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자신만의 의견에 입각해 찬반을 표명하는 것이 아닌, 기성세대로부터 내려오던 명제를 의문 없이 수용하여 찬반을 결정하는 매커니즘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한국사회만의 맥락이 더해지는 지점에서 [DETOX]는 미국의 여타 대마초 랩 앨범과는 구별되는 가치를 획득한다. 당연하게 여기고 판단해온 기준에 대해 뿌리부터 재접근하고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대마초' 는 그의 움직임들을 하나로 표상하는 은유이자, 그가 풀어놓은 내러티브에 생생함을 더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또한 이 앨범을 상반기 가장 주목할 힙합 앨범으로 꼽는 이유는 그가 이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즐거운 엔터테인먼트로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합법화)는 급진적이지만, 앨범 속 서사와 음악적 장치는 B급 정서에 기반한 유머와 멜랑콜리, 또는 쿨(해보이는) 모습들이 맞물려 상대적으로 유쾌한 경험을 선사한다. 탈선과 저항의 상징이던 대마초는 부부싸움을 위한 솔루션이 되기도('WASABI'), 매일 아침의 루틴이 되기도('Wake-n-Bake'), 1인 가구 세대들의 외로움과 생활상을 반영하는 거울('Lonely Stoner')이 되기도 한다. 이 앨범을 듣고 난 뒤 포털이나 SNS로 보여지는 '대마초' 키워드가 무덤덤해졌다면, 그가 의도한 마음의 장벽 완화가 음악적으로 설득력있게 전달되었다는 반증이리라.    

    과연 그의 바람대로 합법화는 몇 년 안에 현실화될 수 있을까? 대마초에 대한 그간의 국민적 인식을 상기하면 낙관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그의 음악을 듣고 응원하는 대다수의 리스너들조차 바위에 계란 던지기로 볼만큼 확률이 낮아보인다. 합법화 운동의 성패를 떠나 [DETOX]는 의문을 품지않는 오늘날의 고집센 사회구성원들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시도로 남을 것이다. 그 방식이 '운동권 식 저항'이 아닌 서브 컬처에 기반한 유쾌한 힙합 엔터테인먼트였다는 점에서 이 앨범의 음악적 가치는 계속해서 유효하다.    

    Written by 안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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