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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JK -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Review/Albums 2020. 4. 9. 16:58

    JJK -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명작이란 평가가 자자했던 지난 정규 '고결한 충돌'로부터 무려 5년 만의 정규다. '왕처럼 주인처럼' 즈음부터 JJK의 음악을 꾸준히 팔로우해온 입장에서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선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라는 타이틀이 주는 첫인상은 다분히 직관적이다. 자연스레 육아와 가장의 삶에 대한 메타포임을 알 수 있었다. 사전 공개된 정보만으로도 이 앨범이 '고결한 충돌'의 후속작이라 직감했고 아니나 다를까, 앨범의 감상은 전작과 더불어 감정적인 경험의 연장이었다. 앞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왠지 이 앨범을 꾸준히 찾고, 그때마다 한 번씩 글썽이게 될 것만 같다. 그렇기에 지금 이 앨범의 첫 감상을 꼭 다뤄야만 한다고 느껴졌다. 우선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몇 가지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앨범의 주제다. 전작에 이어 가족이라는 테마 안에 JJK는 훨씬 세밀한 시선으로 아티스트이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집중력 있게 묘사한다. 앨범의 구성을 살펴보자. 하루가 시작되는 기상의 시점이 곧 앨범의 시작이며 이후 아내와 아들을 비롯해 그의 가족이 보내는 숨 가쁜 일과가 그려진다. 음악적인 진보 또한 돋보인다. 전반적인 프로덕션, 즉 비트와 랩디자인 모두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세련됐다. 때때로 제이콜과 켄드릭 라마를 연상시키는 음악 구성이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편안한 무드로 나타난다. 앨범에 담긴 메시지 또한 흥미로운데, JJK가 말하고자 하는 '지옥'과 '천사'는 각각 무엇인지 또한 그 의미가 복합적으로 겹겹이 쌓여있다. 이를 어떻게 곱씹는지에 따라 앨범은 다양한 각도에서 재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앞서 말했듯, 앨범은 JJK의 아침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그를 깨우며 시작되는 일과는 강박 없이 좋은 하루를 보내길 다짐하며 집을 나서 (오늘만큼은) 미세먼지가 나쁘지 않은 야외에 도착해 (청녹 숫자) 아이의 놀이에 정신없이 페이스를 맞추는 (일루와) 장면까지 이어진다. '일루와'는 마치 켄드릭라마의 'For Sale?'과 'For Free?'를 떠올리는 프로덕션과 랩으로 상황이 가진 속도감을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좋은 하루가 될것이란 다짐이 무색하게도 강박적이다 (웃어!). 이후 집에 도착해 다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감정 (번호키 누르면)은 앨범의 중요한 주제인 완벽한 가장에 대한 강박과 행복에 대한 고찰이 느껴진다. 이후 잠이 들고 (알잖아) 악몽을 꾼 뒤 (낙하점) 깨어나 새벽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어스름) 약간의 감정적 해소에도 불구, 끝엔 결국 이런 하루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마주하다. 다시,). 하루의 일과를 고스란히 따라가는 구성은 무척 정석적인 만큼, JJK의 연륜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 이런 점을 해소하는 것은 확실히 프로덕션의 세련됨과 가사의 디테일이다. 

    '2014 Forest Hills Drive', '4 Your Eyez Only',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 당장 이 앨범이 가진 무드와 연결 지어 연상되는 몇 가지 앨범들이다. 코러스 기타가 주를 이루는 Chill 한 사운드는 한편으론 화지나 리짓군즈 특유의 나른한 바이브와도 닮아있다. 코드의 흐름이 직관적이지 않고 붕 뜬듯한 분위기를 제시하는데 이는 앨범에 묘사되듯, 약간은 지친듯한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한편으론 전반적으로 그 뜨겁지 않은 온도가 전작 '고결한 충돌'의 감정적인 프로덕션과도 대치된다. 아이의 탄생이 주는 감동이 직관적으로 담긴 전작 이후 5년이 지난 본작의 시간적 배경을 고려하면, 감정이 현실이 되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을 때 느껴지는 태도의 변화가 음악의 화법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듬어진 랩 메이킹 역시 놀랍다. 사실 JJK의 긴 커리어를 고려하면 이 시점에서 랩의 진화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기존 JJK가 구사하던, 음절 수를 독특하게 욱여넣은 플로우메이킹, 의식적으로 라임의 앞뒤에 넣는 강세 등 뱉는 맛이 온전히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박자감은 정제되었기 때문이다. 정석적인 방식과 달리 잘게 쪼갠 마디들을 촘촘히 쌓아 올려 배치하는 만큼, 이전 앨범들에서 JJK 특유의 플로우는 때때로 안정감이 떨어지는 구간이 간혹 있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지점이 보이지 않고 가장 촘촘한 구간도 능숙하게 운영해간다. 가사의 측면으론 디테일한 어휘들이 아티스트이자 가장이란 복합적인 자아가 가진 감정선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이런 요소들이 곧 높은 청각적인 만족도로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JJK라는 래퍼가 가진 랩의 강점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가사적으로 꾸준히 반복되는 메타포는 바로 제목과 같이 지옥과 천사다. 작중 시점에 따라 지옥과 천사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앨범의 초반부, 지옥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 반복되는 육아노동을, 천사는 그 시작을 알리는 아들에 대한 비유다. 앨범이 진행될수록 점점 지옥이 나타내는 것은 JJK를 괴롭히는 완벽한 가장에 대한 강박, 그리고 아티스트로서의 열망이다. "너와 함께 하는 이 집 안에서 행복함을 느끼지만, 이 행복한 시간을 두 밤 자고 세 밤 자도 지키려면 아빠는 지금 집에 있으면 안되는데". 아티스트로서의 중요한 가치들이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와 충돌하는 딜레마 속에서 그는 지옥과 같은 강박에 갇혀있다. 이는 이후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되며 이 시점에서 지옥과 천사의 의미가 이전과는 달라진다.

    날 이 지옥 안에서 깨운 너의 부족해도 괜찮다는 말
    그 말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
    - 어스름 중


    또 발바닥이 뜨겁다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JJK가 현 상태를 심리적 지옥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물론, 보일러가 틀어져 바닥이 뜨거운 안락한 가정집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따뜻한 바닥은 곧 가정의 안정을 의미하고 이 안정성은 그의 아티스트 자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평화이자 지옥의 구체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이 진행되며, 특히
    마지막 트랙 '마주하다. 다시,'에서 그는 날개를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마치 JJK 또한 가족들에게 '천사'였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JJK의 지옥을 깨우는 천사는 결국 JJK 그 자신이다. 스스로의 행복과 가정의 행복 사이에서 균형을 찾은 그는 깨달음을 얻어 내면의 성장을 이룩한 천사다. 다만, 다시 바쁜 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인간으로서 그는 다시 고민의 반복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런 깨달음과 고민의 반복은 마치 하루하루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주어진 일과를 한껏 살아내는 가장의 모습이다.

    JJK의 새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단순히 그가 가족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냈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한국 힙합 안에서 가장이 된 래퍼들이 커리어를 이어가는 방향성에 대해 그가 새로운 예시를 남겼기 때문이다. 가족의 일원이자 아버지가 된 자신과 래퍼를 억지로 분리하지 않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제이지의 4:44가 그랬듯 힙합의 멋과 폼을 유지하며 말이다. 한국에서 자녀의 탄생은 곧 수치화 된 현실이고, 래퍼의 삶은 관념적인 이상이었다. 이상이 현실을 만났을 때, 이는 래퍼로서의 유통기한 종료 선언과도 같았다. 하지만 JJK의 앨범은 이 고민의 지점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연결해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본작으로 그는 그만의 위치를 공고히함과 동시에 정체성의 균형감을 유지한다. 아버지이지만 여전히 래퍼이고 래퍼이지만 여전히 아버지일 수 있는 그 지점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래퍼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와 함께하는 세대가 된 지금, JJK가 제시한 방향성은 래퍼들로 하여금 일상의 무엇에서 영감을 얻을지, 어떻게 자신이 처한 입장을 지혜롭게 살아낼지에 대해 좋은 사례를 남긴다. 그렇기에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는 한국힙합이 성숙해가는 과정의 증명이며 래퍼들의 커리어가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다음 단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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