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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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분기 주요 힙합앨범 리뷰Review/Albums 2020. 5. 1. 15:56
2020년 1월 ~ 3월 동안 발매된 주요 한국힙합 릴리즈를 발매일 순으로 짚고 넘어갑니다. 아마도 제이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우여곡절'과 '나락'일 것이다. 커리어 내내 아쉬운 선택과 후회로 점철된 가사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음악의 완성도는 들쑥날쑥해졌고 그와 함께 리스너들의 지지도 급하락했다. 매드클라운-마미손에 이은 제2의 얼터 에고 컨셉인 '콕스 빌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더 이상 국힙씬 안에서 설 자리는 없어보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점에 불쑥 나온 콕스 빌리로서의 첫 정규 는 더 이상 잃을 것도, 돌아갈 곳도 없는 한 래퍼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뒤틀리고 다크한 무드의 프로덕션에 얹혀진 공격적이고 과감한 랩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이 흔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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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STAX - DETOXReview/Albums 2020. 4. 24. 23:16
(*이 글에서 다루는 물의 중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형태의 범죄는 포함하지 않았음을 서두에 밝힌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한국에서) 아티스트가 물의를 빚었을 땐 어떻게 해야할까? 이미 대다수의 머릿속에는 흡사 매뉴얼과도 같은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대국민 대상 사과문에 이은 무기한 자숙은 필수요, 혹여나 복귀한다 해도 결과물에 반성의 흔적이 선명하지 않다면 금세 도마 위에 오른다. 반성에 대한 강박이 두드러질수록 결과물은 뻔해지고 아티스트는 위축된다. 요컨대 논란에 대한 예술가의 대처 방식은 향후 결과물의 완성도를 엿볼 수 있는 열쇠와 같다. 한국힙합씬의 경우 이 문제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대처하는 래퍼들이 생기고 있다. 이센스는 리얼리티 다큐 'I"M GOOD' 에서 보여준 출소 이후 컴백 과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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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래퍼들은 아버지가 된다Feature/힙합과 한국 2020. 4. 6. 16:55
래퍼 JJK가 새 앨범을 발표했다. 서프라이즈라면 서프라이즈다.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스타그램 상에선 앨범 작업을 하는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리도 과묵한 래퍼라니. 그러자 JJK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제 입장에서 앨범 작업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일상이거든요. 그래서 SNS에 딱히 말하진 않았어요.” 새 앨범 타이틀이 눈에 띈다.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성경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가족 이야기다. JJK가 그의 아내와 아이에 관해 만든 음악이다. 이 쯤 되면 앨범 타이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은 지옥처럼 힘들다. 하지만 지옥의 아침은 매일 천사가 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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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K와의 대담 "유부힙합이요? 어쨌든 이 앨범이 가장 자신 있어요"Interview/RAP GAME TALK 2020. 3. 18. 18:11
[RAP GAME TALK]는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REP TV'의 주요 콘텐츠입니다. 래퍼를 초대해 한국힙합씬에 대해 대담을 나누며, 매디에서는 인터뷰 영상의 텍스트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JJK는 현재 한국힙합씬에서 가장 독특한 포지션에 있는 래퍼입니다. 누군가는 그를 올티, 서출구 등의 래퍼들과 함께 프리스타일 랩 문화를 이끌었던 크루 ADV의 수장으로 기억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랩 레슨'의 체계를 다진 파이오니어로 인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채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JJK. 그의 새 앨범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의 발매에 앞서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이 진행한 대담의 전문을 공개합니다. 김봉현 (이하 'B') : 새 앨범을 발표할 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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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특집] '리스펙트'에 관한 단상Feature/힙합과 한국 2020. 3. 6. 20:42
* 이 글은 방탄소년단 자체에 관한 글은 아니다. 대신에 그들의 새 앨범 수록곡을 듣고 떠오른 단상을 간단히 정리한 글에 가깝다. 이번 BTS 특집 중 외전 격 정도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힙합에서 출발했다. 초기 앨범 몇 장을 들어보면 힙합과 관련지을 수 있는 꽤 많은 시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팝 쪽으로 외연 확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RUN', '피 땀 눈물’, ‘DNA' 등이 그 증거라면 증거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MAP OF THE SOUL : 7]이 발매됐다. 그런데 이 앨범이 재미있다. 초기 앨범 몇 장을 제외하면 힙합 색이 가장 짙은 작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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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 그리고 더 나은 세계Feature/힙합과 한국 2019. 12. 8. 02:31
쇼미더머니라는 문구와 힙합의 연결고리가 처음 생겼던 순간이 떠오른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로만 익숙했던 문장이 제목으로 쓰인 요상한 힙합 오디션 프로. 2012년 6월, 그 첫 방송 이후 벌써 7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영원히 나만 몰래 알 것 같았던 힙합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무려 어린 학생들이 동경하는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대중의 반응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멜론 차트에서도 힙합 트랙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듯 한국 힙합은 지난 몇 년간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분명 이는 모두가 달가워한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지금은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이니 말이다. 쇼미더머니는 늘 특유의 자극적인 편집으로 악명이 높았다. 오로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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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이후의 시대, 한국힙합이 느끼는 불안감Feature/힙합과 한국 2019. 11. 12. 16:03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된다. 출근길 음악을 위해 스트리밍 앱을 켰을 때 보이는 건 유명한 래퍼의 플레이리스트. 많은 ‘좋아요’를 얻은 이 리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건 물론 힙합이다. 부서 회의에 가니 요즘 트렌드로 래퍼들이 출연한 뉴미디어 콘텐츠가 화제란다. 엊그제 회식에선 래퍼가 되고 싶어하는 아들에 대한 부장님의 고민을 자정까지 들었다. 이것이 래퍼 화나가 13년전 싱글 ‘그 날이 오면’에서 간절히 바랐던 시간일까 싶다. 힙합이 대중화를 넘어 내 일상 곳곳에도 연결된(듯한) 시대. 일상 속 체감과 달리 요즘의 한국힙합 씬에서는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힙합계의 대표적 상반기 공연 콘텐츠 ‘일리앰비션 서울 투어’가 기대 이하의 예매율을 보인 상황이 그 예다. 당시 댓글들 중 눈에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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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와 밈 세대는 어떻게 힙합을 바꾸었는가Feature/힙합과 한국 2019. 11. 12. 15:36
뻔한 말로 시작해야겠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힙합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힙합 마니아들은 힙합을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 혹은 다른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는/받아선 안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힙합의 고유한 특성과 멋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힙합 역시 시대의 산물이며 늘 변하는/변할 수 있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성실하고 균형 있게 따라잡는 것이다. 힙합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기만의 것이 몇 가지 있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여겨온 힙합의 전통 말이다. ‘킵잇리얼(Keep It Real)'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개념이다. 지금껏 우리는 래퍼들이 손으로 제스처를 취해가며 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