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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특집] SM의 가사. SM 음악을 완성시키는 목소리에 대하여.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0. 6. 18. 16:03
댄스 음악의 마무리는 뭘까? 비트? 춤? 아이돌의 퍼포먼스? 많은 게 있지만 역시 '가사'라 생각해. 가사가 멋져야 한다거나, 그럴듯한 서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야. 콘텐츠적으로 댄스 음악 기획의 마지막.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건 결국 언어. 즉 '가사'라는 뜻이지.
가사는 곡, 혹은 넓게 말하면 아티스트의 메세지를 담고 있어. 그 곡의 화자를 보여주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콘셉트, 나아가 세계관을 구축해주기도 하지.SM의 가사는 특히 초기에는 남성 아티스트는 유영진. 여성 아티스트는 켄지의 손에 써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이 글에서도 다수의 가사가 이 둘에 의해 만들어졌지. 둘의 톤은 상당히 비슷하고, 유영진이 여성 아티스트를, 반대로 켄지가 남성 아티스트를 작업하는 경향도 있어.
하지만 기본적으로 둘에게 차이도 있지. 유영진은 힙합 알앤비 베이스에 좀 더 중2병, 사회비판 적인 가사라면 켄지는 흑인음악적인 바이브는 상대적으로 적고, 대신 난해하며, (페미니즘, 순정파 사랑에 대한 부정 등의 정서를 통해) 클리셰를 뒤트는 날카로운 가사가 장기지. 발라드 등 외부 장르를 쓸 때는 훨씬 더 정통적인 접근의 가사를 잘 쓰기도 하고.
둘의 가사가 SM의 코어가 됐지만, 지금의 SM은 수많은 작사가들과 협업하는 만큼 점점 가사도 풍부해져 가고 있어. 실제로 발라드 등 장르에 충실한 음악을 할 때 SM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가사를 쓰기도 해.
이렇게 점점 거대해진 SM. 하지만 SM만의 가사적 특징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생각해. SM은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넘어서 기획사 단위로 일정한 스타일과 메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지. 문학으로 치면 '문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오늘은 SM만의 가사적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려 해.
*들어가기 전에: 가사란 본질적으로 '모호한 것'이라고 생각해. 힙합이나, 발라드가 아닌 아이돌 케이팝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이번 분석은 정답이라기 보다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의 전달'이라는 면으로 생각하면 충분할 거 같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해석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1 소년만화
SM의 가사는 소년만화같기도 하고 순정만화 같기도 한 독특한 정서가 있어. 간단하게 거두절미해서 이야기하면 '대책 없는 해맑음'이랄까?
“그래! 할 수 있어! 힘 내!”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재지 말고 떠나라 하고(으쌰! 으쌰!) 해보고 싶으면 그냥 하고 만다(행복)고 하기도 해. 이게 끝이 아니야. '같이 하자고 선동하기까지'하지.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게 필요하다며 짜릿함을 찾으러 떠나자(Power Up)고 외치곤 하고. 이제 시작이란 마음 하나로 다시 일어서요(그래! 그렇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거 아냐(힘 내!)라고 말하지.사랑에서도 마찬가지야. 사랑에 흔들리거나, 의심하는 태도 따위는 없어. 신화의 'Perfect Man'을 볼까?
모두 변한다 해도 (난 변하지 않겠어) 그냥 내버려둬.
나의 그녀에겐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난 기다려야만 돼
때론 힘들겠지 항상 네 곁엔 완벽한 사랑이 있어.
내가 줄 수 없던 많은 것 세상을 다 가진 너일테니까나보다 더 완벽한 남자가 있다는 여자에게 보내는 연가라기에는 너무 확신에 차 있지? 이게 바로 '대책 없는 긍정의 러브송'이라 생각해. 특히 SM의 보이그룹의 사랑 노래는 언제나 이런 식의 톤을 갖고 있어.
대책 없는 긍정은 때로 짜증나기까지 할 수 있어. 하지만 SM은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고, 심지어 싫어한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아. 대신 끈질기게 '일관성'을 유지해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지.
무서운 사실은 SM은 언제나 '진심'이라는 거야. 그리고 30년 간 지속될 정도로 '꾸준하기까지 하지'. 흔히 볼 수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한 무기력감이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냉소 같은 주제는 SM 가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이런 대책 없는 긍정성이 어쩌면 SM만의 '순정만화 주인공 적인 화자' 캐릭터를 유지하게 해 주는지도 몰라. 순정만화와 소년만화 속 주인공은 대개 언제나 긍정적이고 자존감에 가득 차 있는 타입이 많으니까. (슬램덩크의 '강백호'부터 '너에게 닿기를'의 쇼타까지.) SM만의 화자야말로 이런 유형의 영웅을 원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SM'이라는 브랜드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 수도 있겠지.
2 사회비판SM은 초기부터 사회 비판을 노래했어. 특히 보이그룹이라면 거의 필수요소였다고 볼 수 있겠지.
아침까지 고개 들지 못했지 맞은 흔적들 들켜 버릴까봐(전사의 후예)
돈 돈 모든 게 돈 세상 원안에 갇힌 너(돈돈)
서로 다른 성 일뿐.. 존재하기 위한 인간인걸 (Girls On Top)
학교 폭력부터 자본주의. 젠더까지. 주제도 다양하고, 시대를 한참 앞서간 다양한 종류의 비판을 했어.
다만 이런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시적이고, 모호해져 갔어. 청소년 특유의 반항적인 에너지는 유지하되, 누구도 다치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SM만의 특유의 사회 비판 음악이 점점 장르로 잡혀간 거지.
시간이 흐를수록 어쩌다가 이 사회가 이리됐을까(해결사)
진실은 누구라도 갖고 있는 것 하지만 보여준 얼굴엔 거짓뿐인걸(Rising Sun)
우린 더 이상 눈을 마주 하지 않을까 소통하지 않을까 사랑하지 않을까(MAMA)
이런 식으로 안타까움만을 표한다거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해결사를 원해(해결사)
도와줘요 마마마마 마마마마(MAMA)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현상을 묘사하고, 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기도 했지.
사회 비판 자체는 힙합에서도 점차 사라져갈 정도로, 어쩌면 조금 촌스러울 수 있는 주제야. SM은 이를 추상적이고, 누구나 자기 견해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추상적인 주제를 택하면서. 그러면서도 사회 비판 곡 특유의 공격적인 에너지는 남기는 방식으로 극복했어. 최근에는 사회 비판보다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곡을 내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3 중2병
SM은 H.O.T 시절부터 '청소년의 목소리'를 대변했어. 청춘의 공격성. 무모함. 자기 긍정. 그리고 파괴 본능까지. 그리고 이 모든 에너지의 대상은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야. 그게 청춘이니까. 이런 자칫 낯 뜨거울 수 있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SM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보여줬지.
H.O.T의 '위 아더 퓨처'는 그 중2병 가사 계보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볼만 해.
난 내 세상은 내가 스스로 만들 거야
똑같은 삶을 강요하지마
내 안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세계
난 키워가겠어 We are the future
내가 스스로 만들겠다. 어른들의 세상을 부정하겠다. 이제 나의 시대다. 어른이 말하기에는 좀 간지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법한 이야기기도 하지. 이런 정서를 날카롭게 다듬은 게 SM이야.
사랑에서도 이런 '중2병'적인 정서는 적절하게 나오고 있어. 사랑의 무한함에 대한 대책없는 확신. 고민보다는 일단 들이대고 보는 정서. 이런 정서를 지금까지도 SM은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지. NCT 127의 '무한 적아'를 볼까?
이제 시작이야 무한의 나
동의 처음과 서의 끝 쪽부터
빛은 암흑 속 퍼질 수록
강해져 가 눈을 떠 봐 오
점점 커져가 나의 노래가
봤니 뜨겁고 터질듯한 세계
들리니 우리는 하나가 돼
Baby I don’t want nobody but you
무한. 빛. 암흑. 무슨 무협지 마냥 다양한 수사를 배치했지만 결국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가사야. 사랑에 쓸데없이 진지하게, 마치 영원할 것 마냥 불나방처럼 달리는 청춘을 사랑. 그 '정서'를 유치하게, 하지만 치밀하게. 날 것 그대로 전달하는 게 바로 SM이라 생각해.
4 캐릭터현대 아이돌에게서 '콘셉트'을 빼놓을 수 없지. 아무래도 음악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대부분 다 나왔다 보니 새로운 걸 보여주기 위해 '콘셉트'가 승부처가 되었어. 이 콘셉트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가사'야.
SM의 가사는 난해하고 분절적이야. 서사를 표현하지 않고 콘셉트, 나아가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대부분의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 아닐까 싶어. (사운드적인 완성도는 기본이고)
레드벨벳을 예로 들어볼게. 레드벨벳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레드'콘셉트와 '벨벳'콘셉트로 초기부터 나뉜 콘셉트의 그룹이야. 당연히 음악이 다르고. 두 콘셉트의 화자 또한 다르지.좋아 첫눈에 반해 버린
네가 자꾸만 생각나
내 방식대로 갈래
빨간 맛 궁금해 honey
깨물면 점점 녹아든 스트로베리 그 맛
코너 캔디 샵 찾아 봐 baby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 그 맛, yeah'빨간 맛' 중
'레드'의 레드벨벳은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긍정소녀야. 긍정의 힘을 믿고(행복), 쉽게 사랑에 빠져 버리지(빨간맛).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마네킹처럼 어색한(Dumb Dumb) 모습을 보이다가도, 정신없고 숨이 막히고 내게 빠진 거 맞지?(음파 음파)라고 물을 정도로 자신이 넘쳐. 좋아하는 걸 원해봐요 매일 그대 열정은 타오르죠(Power Up)라고 말하는 게 바로 '레드'의 레드벨벳의 목소리야.Oh gosh 난리야 (Oh gosh)
맞아 난 좀 기분파
헤 금방 또 사랑에 빠져
(Yeah yeah yeah yeah)
새것만 좋아해요 반짝거리죠
다들 그렇잖아요 맞죠?
Peek-A-Boo!
설렐 때만 사랑이니까
(La la la la la)
내 친구 모두 소리쳐
넌 정말 문제야
I’m fine fine fine fine fine fine피카부 (Peek-A-Boo) 중
'벨벳'의 레드벨벳은 신비롭고 당당한 여성이라고 볼 수 있지. 주변에서 넌 정말 문제(피카부)라고 하거나 별나다(Psycho)고 해도 I’m fine(피카부)이라며 개의치 않아. 오히려 참 별나고 이상하다(Psycho)고 쿨하게 인정하지. 나쁜 남자에겐 너무 쉽겐 오지 마 재미없잖아(Bad Boy), 멋대로 해 허락할 게 있는 힘껏 나빠져 봐 그런 네가 변해갈 때 짜릿하지(RBB)라고 말하지. 도발적이고, 강렬한 목소리. 그게 바로 '벨벳'의 레드벨벳의 목소리라고 봐.
SM은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가사를 활용해. 그러니 당연히 말도 안되게 유치한 가사가 나올 때도 있어. 엑소의 '늑대와 미녀'에서 '발톱에 힘이 빠져 입맛까지 으 없어져'라는 가사라던지.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순간은 정말이지 유치하다 못해 광기(?)까지 느껴지곤 해. 샤이니의 '셜록'에서 '용의선 상의 널 찾아냈어 난 Freeze!'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런 짧고 임팩트 있는 가사는 함축적으로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어. 엑소의 '늑대와 미녀'에서는 한 여자만 사랑하는 상처 입은 늑대인간의 모습. 샤이니의 '셜록'에서는 미궁에 빠진 사랑이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모습으로 말이야. 함축적으로 캐릭터를 만들려 하니 당연히 강렬하고 분절적인 4차원 가사가 나올 수밖에 없겠지.가사는 글로 보는게 아니야. 심지어 '음악만' 보는 것 또한 아니지. 음악 너머의 '서사'와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게 SM의 가사, 나아가 케이팝의 가사의 목적이라 보면 될 거야. 정통적인 걸그룹 느낌의 소녀시대. 4차원 소녀 느낌의 F(x). SF적인 세계관이 느껴지는 NCT 등등. SM의 아이돌은 덕분에 항상 비슷한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그룹마다 겹치지 않는 캐릭터를 절묘하게 구성했어. 이런 방식을 30년간 추구해온 SM의 성과라 볼 수도 있겠지.
SM의 가사는 30년간 끝없이 발전했어. 그렇게 수많은 캐릭터와 컨셉을 발굴해냈지. 놀라운 건 30년 간 끊임없이 변화했음에도, H.O.T부터 NCT까지. 기본적인 골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정신을 유지했다는 거야. 앞으로도 SM의 가사가 어디까지 진화해 나갈지 궁금한 이유야.Written by 김민정, 김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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