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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앤비 특집] 한국, R&B의 나라
    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0. 4. 27. 18:09

    '한국 음악에는 장르가 없다.'

    뮤지션 윤상이 한국 음악시장에 대해 아쉬워하며 했던 말이야. 음악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하나의 장르를 파고드는 뮤지션이 나오기 어렵고, 될 거 같은 음악은 다 했어야 했다는 뜻이겠지.

    사실 이 말은 분명 윤상이 현역이던 시절에는 사실이었어. 8090년대 슈퍼스타 조용필, 서태지, 이승환 등의 앨범만 봐도 알 수 있어. 발라드, 알앤비, 뉴 잭 스윙, 아프리카 음악, 트로트 등 한 앨범에 들어갈 수 없는 장르들이 한꺼번에 들어간 백과사전 식 구성이었거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봐. 물론 여전히 케이팝은 '온갖 장르를 뒤섞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앨범이 아닌 한 싱글의 초 단위로 장르가 바뀌고 있으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장르가 많이 뒤섞였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장르가 섞인 게 전부가 아니야. 이 모든 음악은 하나의 장르를 중심으로 엮여 있어. 모든 장르를 볼 수 있지만 그 비율이 대등하지 않고, 전체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주 장르'가 있다는 뜻이야. 그게 바로 알앤비야. 알앤비의 영향력을 어떻게 케이팝부터 인디, 또 과거지향적인 '컨템퍼러리 팝'에까지, 한국 음악 전반에서 볼 수 있는지 살펴볼게.

     

    1. 케이팝

    케이팝의 기본은 알앤비야. 케이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90년대 '신세대 댄스 가요' 때부터 그랬지. 신세대 댄스가요는 결국 '뉴 잭 스윙'이었어. 비트가 강한 알앤비, 혹은 힙합의 효시라 부를 수 있는 장르야. 지금 들으면 트로트를 연상시키는 토속적인 멜로디가 항상 들어가는가 하면 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알앤비가 있던 셈이야.

    시대가 지나면서 일렉트로니카,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흡수한 케이팝. 그럼에도 그 중심에는 알앤비가 있었어. SM, JYP, YG, 심지어 Big Hit까지. 케이팝을 이끄는 대형 기획사의 음악의 중심을 구축했던 유영진, 박진영, 방시혁 등은 모두 흑인음악, 그중에서도 알앤비를 중심으로 하던 아티스트들이었지. 힙합을 표방한 YG 조차도 엠보트 시절부터 휘성 등 정통 알앤비를 보여줬고, 빅뱅 이후에도 힙합과 결합한 2천 년대 이후의 알앤비의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했어.

    케이팝이 얼마나 알앤비를 충실하게 반영했는지 잘 보여주는 인터뷰가 하나 있어. '레드벨벳'의 'Bad Boy'를 작곡했던 프로듀싱 팀 The Stereotypes의 인터뷰야. 브루노 마즈와 함께 그래미 본상을 탔던, 현재 최고의 프로듀서의 인터뷰임에도 SM과의 협업이 너무나 즐거웠다 말하고 있어. 그 중심에는 '알앤비'가 있었지. 미국에서는 시도하지 못하는 정통 알앤비적 구성. 복잡한 하모니. 다양한 보컬 멜로디 등을 케이팝에서는 마음껏 시도할 수 있어 즐겁다는 내용이었어.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조차 놀랄 정도로 우직하게 정통 알앤비를 시도하는 곳. 그게 바로 현재 케이팝 시장이야.

     

     

    2. 인디

    원래 홍대 하면 록과 포크의 시장이었어. 홍대 하면 떠오르는 어떤 유형의 아티스트들이 있었지. 이제는 그 자리가 알앤비로 채워졌어. 신인의 표준이 과거에는 솔로 포크 싱어송라이터, 혹은 밴드였다면 이제는 래퍼 혹은 알앤비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지.

    현재 홍대씬을 지배하고 있는 아티스트를 생각해볼까. 크러시. 조지. 백예린 등등 모두 알앤비 기반의 아티스트들이야. 심지어 '볼 빨간 사춘기' 등 밴드 씬 최고 히트작도 모두 알앤비 베이스의 음악들이지.

    신예로 가면 알앤비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져. 최근 화제가 된 제이클리프 등 신인들은 알앤비 위주의 음악가가 대다수야.

    이들은 기존 알앤비 가수들처럼 '가창력 위주'의 노래를 부르지 않아. 그보다는 '콜드'처럼 깔끔하게 부르면서도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야. 기존에 테크닉 위주의 음악이 아닌, 진짜 체화된 음악이랄까?

    메시지도 주목할만해. 사랑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야. 서사무엘이나 제이클리프의 앨범에는 힙합 못지않게 다양한 주제가 녹아들어 있지. 가장 힙하면서, 가장 진지한 메시지를 담은 앨범을 발표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의 중심이 알앤비가 된 셈이지. 메시지와 창법, 사운드 등 모든 면에서 홍대 신인 뮤지션의 음악에 알앤비가 기본 토대로 자리 잡혔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야.

     

    3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

    흔히 '대중 가요'라고 불리는 음악은 잘 비평에서 다루지 않는 영역이야. 하지만 다수의 대중이, 대부분의 시간 듣는 음악이기도 하지. 소위 말하는 '멜론 차트' 음악들 말이야.

    멜론 차트 음악은 발라드가 점령한 지 제법 되었어. 최근까지는 SNS 마케팅 음악들이었고, 요즘은 이 자리를 드라마 OST가 차지했지. 차트 조작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SNS 마케팅이 줄어든 자리를 차지한 건 발라드 OST였어. 대다수의 대중이 발라드를 좋아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 해.

    이 대중 발라드의 표준 또한 알앤비야. 우연이라기엔 참으로 얄궂지? 대다수가 창법으로, 또 장르로도 8090년대 미국 팝 차트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알앤비를 중심으로 잡고 있어.

    항상 이래왔던건 아니야. 2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버즈, 엠씨더맥스 등이 대표하는 '록발라드'가 알앤비 발라드 못지않게 큰 지분을 차지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록 발라더 못지않은 성량과 고음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장르는 분명히 '알앤비'거든.

    '록발라드 급 하드웨어를 갖춘 신예 알앤비 가수'중 HYNN을 대표로 꼽아보고 싶어. 김사랑의 'Feeling'같은 록발라드도 완벽하게 소화해. 최고 히트곡 '시든 꽃에 물을 주듯'은 록발라드 급 고음을 내기도 하지.

    하지만 그 기본 베이스는 '인천 에일리'라는 별명에서 보듯 알앤비야. 단순히 고음을 꾸부려서가 아니라, 음악의 기본을 알앤비 창법을 중심으로 해서 익혔다는 뜻이야. 어느새 '과거 지향적인 가요'의 기본 또한 록발라드, 성악이 아닌 알앤비가 된 셈이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메인스트림 케이팝부터 가장 개인적인 작품을 내는 인디씬까지. 가장 앞서가는 최신의 아방가르드한 음악부터 가장 과거 지향적인 오디션 음악까지. 한국 음악의 곳곳에는 '알앤비'라는 키워드가 있어.

    더 흥미로운 사실은 알앤비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전통이라는 거야. 한때 미국 팝 시장 또한 알앤비가 주류였지.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빌보드는 힙합으로 재편되었고, 알앤비 시장은 최근까지 사라졌어. 이제야 다시 90년대 알앤비를 재해석하는 신인들이 나오는 형편이지.

    팝 조차 잊고 있던 팝의 전통인 알앤비를 중심으로 일렉트로니카, 힙합 등 최신 음악의 경향을 자유롭게 조합한 음악. 이게 세계를 제패한 잡탕 음악 '케이팝'의 경쟁력이라고 봐. 흑인음악을 주류가 받아들이지 못한 제이팝과도 대비되는 차별점이기도 하고.

    잡탕 음악이라는 케이팝. 하지만 그 안에는 '알앤비'라는 주재료가 있는 건 아닐까? 마치 부대찌개와 같아. 칠리부터 햄까지 온갖 국적의 요리를 제멋대로 섞어 넣은 요리지만, 그 중심에는 '김치'라는 주 재료가 전체의 맛을 잡아주지. 마찬가지로 케이팝은 온갖 장르의 음악을 섞어주지만 그 중심에는 알앤비가 있다 생각해. 한국이 '알앤비의 국가'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야.

    Written by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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