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Cover Story] Hash Swan - Silence of the REM
    Curation/월로비의 Cover Story 2020. 2. 21. 18:28

    무형의 음악에 얼굴이 되어주는 앨범커버는 음악과 디자인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디자인 장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월로비의 Cover Story'에서는 인상 깊은 앨범커버를 골라 소개하고 음악 감상의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합니다.


    Hash Swan_1집 《Silence of the REM》

    발매: 2020.02.05

    아트워크: JOPH @495.495.495.495

     

    해쉬스완의 정규 1집에 관한 내용은 음악으로 접하기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며 팝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만큼의 범위 넓은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던, 그래서 더더욱 음악을 듣기 전부터 호기심을 갖고 찾아본 이번 신보 《Silence of the REM》은 앨범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커버 이미지에서부터 이미 그 기대감을 마구 증폭시키고 있었다.

    분명 스토리텔링에 초점이 맞춰진 밀도 높은 앨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커버부터가 벌써 이번 앨범의 의미를 추적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적 단서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쉬스완 본인은 스트리밍 사이트 ‘VIBE’에서 진행한 짧은 인터뷰에서 “느끼는 그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앨범 감상에 대한 뚜렷한 포인트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살펴볼 몇 가지 단서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작업과정에서 만큼은 메시지 전달을 위한 치밀한 설계가 동반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1. Silence of the REM, 침묵하는 꿈

    《Silence of the REM》의 커버를 찬찬히 살펴보자. 아마 많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은 역시나 한 남자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나방일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끔 그림 속 인물의 입을 막고 있는 나방. 어딘가 익숙한 구도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곧바로 어느 유명한 포스터가 오버랩 될 것이다. 이미 영화 자체로도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르며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포스터를 탄생시킨 이 작품은 바로 1991년에 개봉한 <양들의 침묵>, 원제 <Silence of the lambs>라는 소설원작의 스릴러 영화다.

    양들의 침묵 (1991)

    이번 앨범은 이미지의 구도에서 한 번, 제목으로 또 한 번 <양들의 침묵>을 오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단순히 'Rem'과 ‘Lambs'가 가진 발음의 유사성으로 언어유희를 시도한 것이라고 보기엔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양들의 침묵>은 FBI 수습요원 ’스탈링‘이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를 통해 또 다른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 검거의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양‘은 주인공 스탈링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어릴 적 목격한 목장에서의 도살 장면, 그 과정에서 결국 구해내지 못한 새끼양의 울음소리는 매일 밤 꿈에서 스탈링을 괴롭히지만 결국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이렇듯 ‘양들이 침묵했다’는 표현은 주인공의 악몽이 끝나고 내적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다시 앨범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제목에서 ‘Lambs'와 대구를 이루고 있는 ’Rem'은 가사에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렘수면’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렘수면은 수면의 단계에서 주로 대부분의 꿈이 만들어지는 얕은 수면 단계를 말한다. 제목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구조에서도 <양들의 침묵>과의 대구가 이어진다면 결국 ‘렘수면’이라는 것도 극복해야할 어떤 대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앨범을 정주행하다보면 기승전결의 큰 흐름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극복해나가는 화자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렘수면’이 의미하는 것은 ‘꿈을 꾸는 시간,’ 즉 떠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무의식적으로 투영되는 시간이자 극복의 과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렘수면의 침묵(Silence of the REM)’이라는 제목은 꿈이 끝나고 화자의 발목을 붙잡던 장애물이 사라진 상태, 궁극적으로 이별을 극복해낸 화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2. 나방, 변신과 욕망

    이제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 남자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나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양들의 침묵>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이기도 한 나방은 영화 속에서 작품의 핵심 키워드인 ‘변화’를 상징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쫓던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은 정신적 결함을 이유로 여성으로의 성전환 수술을 거부당한 후 여성들만을 납치, 살해하는 행각을 이어가는데 살인 현장마다 놓여 있던 범인의 단서가 바로 아직 탈피하지 않은 나방의 번데기다. 번데기를 찢고 날개달린 존재로 거듭나는 나방은 여성으로의 ‘변신’을 꿈꾸던 버팔로 빌의 욕망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이자, 반대로 탈피에 성공해도 결국 나비가 되지 못하는, 이뤄지지 못할 욕망을 뜻하기도 한다.(나방과 나비는 외형의 차이로 인해 상징적으로 자주 비교되는 대상이다.)

    변신을 상징하는 나방과 나비

    앞 단에서 《Silence of the REM》의 제목을 통해 유추해보았던 앨범 전체의 주제의식(이별의 극복) 또한 ‘나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그렇듯, 이별이라는 큰 사건을 맞닥뜨리게 되면 크고 작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기 마련인데 앨범 속 화자에게 그 감정 변화들은 이별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끔 ‘변화’하는 동기가 된다. 꿈의 침묵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별을 극복하고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Olive is Bitter>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별의 후유증을 훌훌 털어버리고자 한 화자의 이상과는 다르게 어딘가 씁쓸하고 시원섭섭한 미련이 느껴진다. 이별 이후의 삶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불현 듯 찾아오는 불가항력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화자는 완전한 극복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청자의 자연스러운 공감과 몰입을 낳았고 그 모습은 나방으로 대변되어 앨범의 스토리텔링에 깊이감을 더해주고 있다.

     

    3. 발트뮐러, 평화와 낭만을 꿈꾸며

    그렇다면 나방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단순히 이야기 속 화자라고만 생각하기엔 지금까지 다룬 이야기들이 꽤 깊이 있고 다양해서 이 인물조차도 그 아래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커버를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모티브로 삼은 그림이 존재하는데 바로 19세기 오스트리아 화가 ‘페르디난드 게오르그 발트 뮐러(이하 발트 뮐러)’의 <Self-portrait at the Age of 35> 라는 작품이다.

    Hash Swan 《Silence of the REM》, 발트 뮐러 <Self-portrait at the Age of 35>

    앨범 커버와 발트 뮐러의 그림을 비교해보자.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과 왼손을 제외한 나머지 상체 부분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발트 뮐러라는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세세한 묘사를 통해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소시민들의 삶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화가였다. 그의 화풍은 ‘비더마이어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을 모두 담고 있는데 이 시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적 격변에 지친 유럽인들이 소박하고 평화로운 정서에 기대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작업관은 비엔나 아카데미의 전통과 전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고 결국 아카데미에서 퇴출당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훗날 아카데미에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이는 본인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이어갔던 작품 활동이 기득권의 인정을 받아냄으로써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런 그의 삶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장치 중 하나일 뿐일까? 물론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별을 극복해가는 과정’과 나란히 두고 설명을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작품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려고 한다. 앨범 안에 담긴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가 발트 뮐러의 초상화 속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트 뮐러의 상체 위에 덧그려진 얼굴은 발트 뮐러가 아니다. 오히려 해쉬스완 본인을 모델로 삼은 듯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얼굴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이며 이는 발트 뮐러의 삶에 스스로를 투영하고자 한 해쉬스완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앨범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빡센 랩’과는 거리가 먼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수록곡이 싱잉랩으로 채워져 있으며 다양한 보컬 피쳐링으로 장르적인 색깔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게다가 컨셉 앨범이라고 구분지어도 무방할 정도로 첫 곡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잘 짜인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 격정의 시대 속에서 평화와 낭만을 그리고 그 소신을 지켜낸 발트 뮐러의 삶을 통해 해쉬스완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결국 본인의 색깔이 아니었을까. 그의 소속사 앰비션 뮤직 안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감성과 스타일을 보여주던 해쉬스완은 이번 앨범을 통해 앨범 프로듀서로서의 재능을 증명하고 그만이 가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Silence of the REM》은 앨범 내적으로 보던 외적으로 보던 완결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적으로는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으며 외적으로는 궁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해쉬스완만의 음악성이 돋보인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커버 디자인과 맞물려 유기적으로 의미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으니 듣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잡는 데에도 성공했다.

    물론 지금까지 풀어낸 모든 이야기는 공식적으로 전혀 밝혀지지 않은 내용들이다. 해쉬스완 본인도, 이 커버의 디자이너 ‘JOPH’도 앨범 해석에 대한 부분을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이야기는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느끼는 그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해쉬스완의 말처럼, 꿈보다 커져버린 해몽이야말로 《Silence of the REM》을 감상하는 가장 알맞은 방법일 테니 말이다.

    Written by 월로비

     

     

    내용 참고: @hanabee0222

    댓글

Copyright ⓒ 2019 By Maedi.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