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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특집] BTS라는 거대한 디자인 프로젝트
    Curation/월로비의 Cover Story 2020. 3. 3. 18:36

    무형의 음악에 얼굴이 되어주는 앨범커버는 음악과 디자인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디자인 장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월로비의 Cover Story'에서는 인상 깊은 앨범커버를 골라 소개하고 음악 감상의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합니다.


    BTS가 돌아왔다. 10개월 만에 돌아온 BTS의 정규 4집은 20곡에 달하는 물량공세에 걸맞게 지금까지 발표했던 앨범들 중 비주얼적인 부분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앨범이기도 하다. BTS 비주얼 전략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커버는 이전 글에서 정리했던 것처럼 단순히 음원사이트에 내걸릴 이미지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 더 나아가 그 세계관을 소개하는 방식과 전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역시 이번에도 되새기고 곱씹어볼 이야기가 한가득인 만큼, 커버 디자인의 의미부터 하나씩 파헤쳐 가보기로 하자.


    《MAP OF THE SOUL : PERSONA》, 《MAP OF THE SOUL : 7》

    디자인에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여 시리즈라는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청춘 2부작이었던 《화양연화》 시리즈에서부터 BTS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다. 좌표를 연상시키는 격자무늬 배경은 ‘영혼의 지도(Map of the soul)'라는 시리즈 컨셉을 담고 있는 동시에, 전작 《MAP OF THE SOUL : PERSONA》와의 연관성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그 위에서 강하게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숫자 ‘7’이 보일 것이다. 이번 커버 디자인의 주인공이자 사실상 거의 유일한 등장인물인 ‘7’은 BTS 멤버 7명이 지금껏 함께해온 7년이라는 시간, 더 나아가 그 시간을 거쳐 만나게 된 진정한 ‘나’를 상징한다. 이 ‘7’은 모두 일곱 가지 형태의 서로 다른 7들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졌는데 각각의 7은 BTS 멤버 7명 각자의 개성을 담아 디자인되었다.

    왼쪽부터 열망의 백조, 화려한 흑조, 멤버들의 사명감, 다채로운 본연의 모습을 상징한다.

    피지컬 앨범을 구매한 팬들만 확인할 수 있는 요소도 존재한다. 4가지 버전의 디자인이 적용된 앨범 구성이 그것이다. 이번 앨범은 ‘7’의 형태와 색, 그리고 패키지 안에 담겨 있는 구성물의 종류를 BTS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깔과 대응시켜 4가지 버전으로 디자인되었는데 이 방식은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하여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마성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가 이번 앨범 디자인에 대한 해석의 전부다. 생각보다 짧은 분량에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 잔뜩 기대치를 높여놓고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고작 A4 반 페이지도 되지 않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어버리려고 하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번 커버가 중요한 이유는 커버의 어떤 요소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같은 디자인 자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BTS가 팬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Love Yourself》 시리즈 (자세한 이미지 분석은 이전 글 참조)

    이번 커버 해석에 대한 내용을 풀어내는 데에는 말 그대로 많은 내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한 디자인이다. 사실상 거의 유일한 요소라고 해도 될 만한 ‘7’은 그 존재감으로 인해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고 있는데 그 의미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비단 이번 앨범뿐만이 아니다. 《MAP OF THE SOUL : PERSONA》에서는 각기 다른 하트 모양의 선으로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Love Yourself》에서는 커버의 색깔과 상징적인 선의 형태를 통해 각 버전이 담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담아냈다.

    전부 팬이라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하지만 그 해석을 누구나가 손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TS가 디자인 전반에 깔아놓은 시각언어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말 그대로 팬이기에 알 수 있는 그 디테일한 지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4집 커버를 한가득 메우고 있는 ‘7’은 누군가에겐 그저 7명의 멤버와 그들이 함께한 7년이라는 시간을 뜻하는 물리적인 수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BTS가 지금의 월드스타 자리에 오르기까지 거쳐 온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는 순간 ‘7’은 비로소 끊임없이 자신들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BTS 서사의 상징으로 변모하게 된다.

    '문'이라는 상징을 통해 아티스트와 팬의 유기적,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BTS와 ARMY의 로고

    팬들에 의해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팬들에 의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BTS의 디자인은 BTS라는 아티스트와 ARMY라는 팬덤의 유기적인 관계가 지향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이렇게 어렵지 않은 시각적 은유 방식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의미로 팬들을 유도하는 동시에 팬들의 해석이 기획단계에서 의도한 내용 밖으로 벗어나버리는 것을 제한하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효과적으로 의도를 반영하되 그 방식이 너무 어렵지 않아 떡밥을 풀어나가는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그 떡밥을 노골적이지 않은 적당한 난이도로 숨겨두어 팬들이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것. BTS의 디자인은 영화로 치면 최근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기생충>과 비슷하다. 난해한 예술영화도, 시간 때우기용 팝콘무비도 아닌,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인기를 전부 잡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BTS의 행보가 오버랩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탄생한 흑조(Black Swan) 컨셉의 화보

    현대무용팀과의 협업이나 세계 5개국에서 열린 BTS 현대미술 프로젝트(CONNECT BTS) 등 유독 ‘아티스트적 면모’를 강조하고 있는 이번 앨범 활동을 보고 있자면, 알고 보면 BTS는 예술가라기보다 디자이너에 더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해석과 열린 감상을 인정하는 예술분야와 다르게 디자인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라는 3요소가 뚜렷해야한다는 차별점을 가진다. ‘BTS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그들만의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 서사’를 ‘적당한 난이도의 매력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매일매일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기록을 갱신 중인 BTS의 인기로 미루어 보건데 그들이 지금 취하고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말 그대로 굉장히 성공적인 디자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앨범 커버뿐만 아니라 BTS의 음악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컨텐츠들은 하나의 해석,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물론 그 방식은 단순히 효과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BTS를 K-POP 아이돌 그룹인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 힘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BTS이기 때문이다.

     

    written by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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