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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특집] NCT 127, 맥락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방법
    Curation/월로비의 Cover Story 2020. 6. 22. 18:17

    무형의 음악에 얼굴이 되어주는 앨범커버는 음악과 디자인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디자인 장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월로비의 Cover Story'에서는 인상 깊은 앨범커버를 골라 소개하고 음악 감상의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합니다.


    NCT 127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K-POP 시장에서 ‘비주얼 디렉팅’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업계의 판도를 바꿔버렸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소녀시대와 f(x), 샤이니를 필두로 하여, 음악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시각분야들에 대한 업계의 기준을 제시한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선구자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좌: 레드벨벳 정규 1~4집 / 우: 엑소 정규 1~6집

    레드벨벳과 엑소는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도 건재한 SM의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비주얼 디렉팅이 포괄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앨범 커버 디자인(이하 ‘앨범 커버’)를 기준으로 서술해보자면, 이 두 그룹의 앨범 커버들은 특정 활동 시기에 국한된 앨범 단위의 기획을 넘어서 그룹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견고하게 만드는 브랜딩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컬러를 중심으로 콜라주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고유의 분위기를 어필한다던지(레드벨벳), 탄탄하게 디자인된 로고를 기준삼아 다양한 변주를 이어가는 방식(엑소)은 각 그룹의 음악에 시각적으로 일관된 맥락을 부여한다. 이러한 전략은 팬들로 하여금 아티스트의 모든 활동을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는 곧 그룹의 브랜딩으로 이어지게 된다.

     

    좌측상단부터 순서대로 미니 1집, 미니 2집, 미니 3집, 정규 1집, 1집 리패키지, 미니 4집, 정규 2집, 2집 리패키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함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다. 먼저, 지금 SM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NCT 127의 앨범 커버들을 쭉 나열해보자. ‘시각적으로 일관된 맥락’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각적인 공통점을 가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앞서 언급했던 다른 그룹들과 비교했을 때 그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SM 내부 회의를 통해 디자인의 비중을 줄이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NCT 127이라는 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그리고 SM이 보여준 그간의 비주얼 디렉팅 전략을 고려해본다면 오히려 디자인의 비중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따라서 이러한 행보에는 분명 나름의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그들의 음악과 세계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꿈과 관련된 많은 곡들 중 하나인 <Day Dream (白日夢)> Track Video

    NCT 127은 앨범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컨셉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간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들도 새 앨범을 발매하면서 컨셉에 변화를 주는 경우가 많지만 NCT 127은 ‘변화’ 그 자체가 메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소화해내는 컨셉은 사이버펑크, 우주전사, 무협물, 가상공간 등을 아우르며 음악의 방향성 또한 매 앨범마다 변화하는 컨셉에 따라서 끊임없이 진화, 확장된다. 그리고 이런 변화무쌍한 컨셉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데뷔 초부터 꾸준히 강조해온 ‘꿈’이라는 키워드다. 최근에 발매한 2집 정규 앨범에도 ‘꿈’이나 ‘잠’을 주제로 하고 있는 곡들이 적지 않은 만큼, 앨범에 따라 서로 다른 시공간을 넘나드는 NCT 127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꿈’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이제 다시 앨범 커버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해외 발매, 라이브 및 콜라보 앨범을 제외하면 NCT 127은 지금까지 4장의 미니앨범, 2장씩의 정규앨범과 리패키지 앨범 등, 총 8장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각각의 개성 넘치는 컨셉들은 해당 앨범의 앨범 커버 이미지에 잘 반영되어있다.

     

    좌:  NCT #127 정규 1집 《Regular-Irregular》 / 우: 영화 <인셉션> 포스터

    시각적으로 유독 눈에 띄는 몇 가지 앨범을 살펴보자면 먼저 정규 1집을 예로 들 수 있다. 전체적인 음악적 구성은 본격적으로 ‘꿈’을 전면에 내세운 앨범답게 중간에 배치된 트랙 <Interlude: Regular to Irregular>를 기준으로 현실에서 꿈으로 넘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 앨범 커버 또한 중앙에 위치한 ‘nct 127'이라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제목과 이미지를 대칭시켜 마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게 될 NCT 127의 향후 행보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배경의 이미지는 상하 반전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영화 <인셉션>의 명장면과 오버랩되며 ‘꿈’이 가지고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NCT #127 정규 2집 《Neo Zone》

    이후 1집 리패키지 앨범과 미니 4집을 거쳐 발매된 정규 2집 《Neo Zone》은 다시 한 번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보여주었는데 타이틀곡 가사에 언급되는 ‘브루스 리’라는 인물을 통해 메인 테마인 중국풍의 무협 테마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는 기와집 지붕을 앨범 커버 전면에 배치하여 메인 테마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레트로한 느낌의 두꺼운 서체와 시너지를 일으켜 마치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듯 동양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렇듯 NCT 127은 매 앨범마다의 특색을 잘 살린 디자인으로 앨범의 완성도를 꾸준히 높여왔다. 하지만 이러한 앨범 단위의 기획을 넘어선, NCT 127의 세계관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관된 맥락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들쑥날쑥함,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 방식이야말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다른 수많은 컨셉들을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NCT 127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치면 <무한도전>과 비슷하다. 고정된 멤버들이 매주 달라지는 컨셉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른 신선한 재미를 주던 무한도전은 유형이 비슷한 회차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컨셉이 다양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우리가 그 모든 회차들을 통틀어 ‘무한도전’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항상 변화한다.”라는 변하지 않는 컨셉이 있었고 이것이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NCT 127도 마찬가지다. 매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미리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컨셉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그것은 ‘새로움만을 위한 새로움’과는 엄연히 다르다. ‘꿈’과 ‘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확장되는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꿈'을 중심으로 무한 확장되는 NCT 127의 세계관

    이것은 NCT 127의 디자인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꿈속에서는 꿈을 꾸고 있다는 인식이 불가능한 것처럼 언뜻 보면 전혀 맥락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의 앨범 커버들은, 사실 앞서 설명한대로 이들이 음악을 통해 세계관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나란하게 변화, 확장되고 있었다. 만약 NCT 127의 비주얼 디렉팅이 앨범마다의 서로 다른 컨셉을 각각 시각화해내는 것만으로 그쳤다면 앨범 단위에 머무는 반쪽짜리 기획이었겠지만 이들의 음악이 ‘꿈’을 통해 하나로 묶이듯, 서로 다른 디자인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맥락이 존재한다. 비현실적인 일들이 난무하며 매번 새로운 시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꿈’처럼, 공통점 없이 매번 달라지는 디자인은 오히려 공통점이 없다는 점으로 인해 ‘꿈을 통해 무한한 시공간을 넘나든다’라는 NCT 127의 세계관에 정확히 부합하는 동시에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가상 공간으로 까지 세계관을 확장시킨 2집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 곡 <Punch> MV

    물론 이러한 느슨한 연결고리가 지나친 의미부여나 합리화로 비춰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껏 SM이 다른 아이돌 그룹들을 통해 보여준 비주얼 디렉팅 방식과 많은 부분 결이 다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각적인 통일성만이 비주얼 디렉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세계관, 그 나름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가장 알맞은 방식과 수단으로 탄탄하게 받쳐주고 묶어주는 것이 바로 비주얼 디렉팅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만약 NCT 127의 앨범 커버들이 누가보아도 뚜렷하고 일관된 시각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면 디자인이 필요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곧, 음악을 통해 구축해놓은 세계관과의 충돌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서론에서 제기했던 의문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문에서 NCT 127이 전하고자 했던 디자인 컨셉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셈이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주인공이기 보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음악시장에서의 디자인, 즉 비주얼 디렉팅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상이 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시각적인 장치들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맥락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NCT 127은 비단 앨범 커버뿐만이 아닌 다른 모든 비주얼 분야에서도 단순히 시각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 오히려 비주얼 디렉팅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진 방법론을 적용하고 있다. ‘비주얼 디렉팅’이라는 개념을 싹틔우고 업계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던 SM은 이제 다시 출발선을 되돌아보고 있는 것일까. SM이 추구하는 앞으로의 디자인에 대한 힌트가 NCT 127의 다음 행보에 담겨있다.

     

    written by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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