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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앨범 디자인 연대기 (1부)
    Curation/월로비의 Cover Story 2019. 12. 9. 18:31

    제61회 그래미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가한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저물어가는 음반의 시대

    음반은 죽었다. 스트리밍이 대세다. 이미 상식이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한 이야기다. 음원 다운로드조차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음악은 더 이상 소장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피지컬 앨범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해야 했다. 이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아이돌 시장이다. 케이팝 아이돌의 CD는 그 안에 담긴 음악을 배제하고서라도 충분히 하나의 작품이자 상품이 된다. 포토 카드, 화보, 창의적인 패키징 방식. 팬이라면 도저히 안 사고는 못 배길 다양한 구성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팬들은 CD를 재생할 방법이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들으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이런 흐름 속에서 다른 아이돌들과는 다른 행보로 주목해볼만한 그룹이 있다.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 하면 떠오르는 음악, 퍼포먼스, 팬덤이 아닌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들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첫 번째 특징이 바로 디자인의 방향성에 있다. 아이돌 앨범의 상징은 앞단에서 언급했듯 '멤버들의 사진(이왕이면 얼굴)이 보이는 커버'다. 이는 팬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커버는 대부분 타이틀곡의 이미지를 반영한 화보나 그래픽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효율적이다. 하지만 방탄은 다르다. 방탄의 디자인은 단순히 홍보를 목적으로 한 멤버들의 화보를 커버에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앨범 전체의 성격, 또는 그룹의 정체성이나 그들이 지향하는 메시지를 조금 더 넓은 시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런 방향성은 데뷔 초의 앨범에서부터 조금씩 엿볼 수 있는데 그야말로 초반부터 커버 디자인을 통해 의도하고자 했던 바가 남달랐던 셈이다.

    두 번째. 방탄소년단은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된 적이 있다. 그것도 음악이 아닌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이었다. 참고로 이 상은 그해 최고의 앨범 패키지를 위한 것으로 연주자나 가수가 아닌 패키지를 디자인한 아트디렉터에게 주어진다. 그래미가 주목했을 정도로 방탄의 디자인에 무언가 특별함이 있었다는 뜻이다.

    방탄 소년단의 앨범 커버는 그들의 음악적 서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디자인과 음악이 그만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갔다는 뜻이다. 방탄소년단의 시기별 페이즈를 편의상 3개로 나누고, 각 페이즈 마다의 디자인적인 특징을 살펴보았다.

     


     

    페이즈 1: 학교 3부작

    초기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누가 들어도 10대의 음악이었다. 3부작으로 제작된 앨범 시리즈는 고등학생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랫말과 이에 어울리는 거칠고 직설적인 힙합 음악으로 가득했다. 학교 폭력, 야자 등 고등학생의 삶과 밀착된 가사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노래되었고 그만큼 전체적으로 지금의 방탄소년단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이 당시는 성장형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이 가장 약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2 COOL 4 SKOOL》, 《O!RUL8,2?》, 《Skool Luv Affair》

    그렇다면 디자인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학교 3부작’의 커버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글 앞머리에 언급했던 것처럼 단순히 타이틀곡의 이미지만을 반영한 그래픽이나 멤버들의 비주얼을 앞세운 화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XXX'는 앨범마다 멤버들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10대들의 외침’이 묵직한 볼드체와 강렬한 색 대비를 통해 잘 전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시는 아직 방탄소년단의 최대 강점이라고 이야기되는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기였다. ‘학교 3부작’이라 불리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각각의 독립된 앨범이 비슷한 컨셉으로 묶여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세 앨범 간의 디자인적인 맥락 또한 아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후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방탄소년단의 디자인은 디자인 그 자체가 세계관을 구성하는 하나의 독립된 요소로서 목소리를 가진다. 하나의 페이즈 안에서 음악과 디자인, 디자인과 디자인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그들만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학교 3부작’은 한 장의 커버로써 각 앨범만의 목소리를 잘 담아냈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장치까지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만의 색깔과 방향을 찾아가는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에 어울리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페이즈 2-1: 청춘 2부작

    멤버들이 성인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방탄소년단의 음악 또한 달라졌다. '청춘'과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춘 2부작’에 해당하는 《화영연화》의 타이틀 곡 <I NEED U>를 시발점으로, 달콤한 사랑 노래가 수록곡의 주를 이룬다. 이때부터 방탄소년단은 음악방송 1위가 어색하지 않은 대형 아이돌 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화양연화 pt.1》, 《화양연화 pt.2》

    디자인적으로도 ‘청춘 2부작’은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여전히 멤버들의 사진을 메인요소로 활용하지 않은 점은 물론이고 아이돌 앨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자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한자가 풍기는 묵직한 뉘앙스는 그 힘이 다른 요소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 사용하게 되면 이미지 전체의 느낌은 물론, 앨범 커버의 경우 수록곡들에 대한 첫인상마저 한쪽으로 고정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군다나 ‘화양연화’라는 앨범명이 주는 동양적인 느낌까지 고려한다면 한자라는 요소가 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파격적인 시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방탄 앨범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리즈’라는 개념이 디자인에 적용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7개월의 간격을 두고 발매한 《화양연화》 시리즈는 ‘청춘 2부작’이라고 불릴 만큼 음악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그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다. 파스텔톤의 배경 위에 산세리프 계열의 두꺼운 한자 타이틀이 이미지의 중심을 무겁게 잡아주고 그 주변으로 부수적인 정보들이 위계를 달리하여 여백을 채워준다는 규칙이 두 편의 시리즈에 걸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때 축적된 시리즈 개념은 훗날 발매될 《Love Yourself》에서 그 정점을 찍고 방탄소년단의 디자인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부분 또한 존재한다. ‘청춘 2부작’에서 검정색 세리프체로 적혀있는 일련의 정보들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미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花樣年華’ 라는 텍스트가 그대로 중복될 뿐만 아니라 pt.2에서는 ‘2부작 중 두 번째’라는 정보를 굳이 한 번 더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전달과 홍보라는 측면에서 그룹명과 앨범명은 회사 입장에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수많은 앨범 커버들이 굳이 넣지 않아도 될법한 추가적인 텍스트를 억지로 끌어안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앞서 언급한 신선한 시도들을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페이즈 2-1: WINGS 

    큰 흐름에서 같은 시기로 분류되는 차기작 《WINGS》는 전 멤버의 솔로곡을 수록하며 음악적 성숙함을 보여준 앨범이었다. 내용적으로 '청춘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전작 《화양연화》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좀 더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아이돌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들어보았을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은 드디어 방탄소년단을 한국 제일의 아이돌 그룹으로 올려놓았다.

    《WINGS》

    디자인 또한 《WINGS》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성숙해졌다. 방탄소년단의 디자인에 대한 본격적인 자료나 관련 콘텐츠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만큼 팀이 최정상에 올라가면서 비주얼적인 부분에서도 과감한 시도와 투자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WINGS》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총괄했던 ‘VB 스튜디오’는 멤버마다의 개성을 담은 동그란 모듈을 디자인한 후 이를 통해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조합으로 다양한 시각적 변주를 만들어냈다. 모든 멤버의 솔로곡들이 하나의 앨범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완성되었던 음악적 흐름을 디자인적으로 탄탄하게 뒷받침해준 셈이다. ‘여백의 미’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강조할 것들에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디자인은 성숙해진 방탄소년단의 모습을 상징하듯 절제된 멋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시기는 본격적으로 방탄소년단의 디자인이 브랜딩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도 볼 수 있다. VB 스튜디오는 동그라미 모듈들의 조합에서 파생된 새로운 로고를 디자인했는데 이것이 바로 《WINGS》의 활동기간 동안 진행된 월드 투어 공식 로고다. 이 로고는 공연 포스터는 물론이고 다양한 홍보물과 공연 당일 무대 연출에도 활용되는 등 《WINGS》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련의 활동들에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동일한 맥락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하여 이 모듈에서 시작된 디자인 컨셉은 결과적으로 《WINGS》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서 인식하게끔 하는 효과를 낳았다. 데뷔 후 단 3년 만에 음악적으로도, 디자인적으로도 눈에 띄게 성장한 방탄소년단에게 거는 기대감이 날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2부에 이어집니다.

    글: 김은우,,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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