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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기야 ‘컨셉 앨범’의 가치까지 얻어버린 아이돌 앨범 슈퍼 주니어 Super Junior – Timeslip
    Review/Albums 2020. 2. 22. 22:22


    아이돌 앨범 하면 어떤 공식이 있지? 시작은 뭔가 실험적이고 강렬한 댄스음악 타이틀곡 느낌으로 달리기 시작해. 이후 우울한 발라드나, 밝고 펑키한 팝을 넘어, 뭔가 귀여운 팬송으로 마무리되는 위아더월드 구성. 소위 말하는 ‘백화점’식 구성이 일단 떠올라.


    소위 말하는 ‘명반 리스트’에 아이돌 앨범이 거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어. 명반의 조건 중 하나인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거지. 케이팝 아이돌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 H.O.T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동방신기 4집 등 아주 훌륭한 음악도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어.


    상황이 달라졌어. 빅뱅, 2NE1 등 YG 아이돌은 의외로 단일한 무드로 가는 음악이 많았지. 백화점식 아이돌. 가장 아이돌다운 음악을 추구한다 알려진 SM도 EXO의 ‘Universe’ 겨울 스페셜 앨범, 태연 솔로 2집 등 단일한 무드의 컨셉 앨범을 점차 내놓기 시작했지.


    이번에는 SM의 컨셉 앨범. 그것도 발라드도 아닌 정규 ‘댄스 앨범’ 중에서 꼽아볼까 해. 올해 발매된 슈퍼주니어의 오랜만의 완전체 컴백작 ‘Time Slip’이 바로 그거야.

    https://www.youtube.com/watch?v=iVzFO-1euU8

    Super Junior - The Crown (M/V)


    왜 Time Slip일까?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복고풍 음악을 하겠다는 의미인 듯 해. 앨범 소개를 보면 일관되게 ‘뉴트로’(New-tro)를 강조하고 있어. 가장 힙한 옛것을 보여주겠다는 거지. 아이돌치고는 연령대가 높은 ‘추억의 아이돌’인 슈퍼주니어의 컴백에 적합한 수식어 같기도 해.

    https://www.youtube.com/watch?v=CbFh06IpSwA

    Super Junior - I Think I (M/V)

     

    앨범 전체의 곡 구성 또한 ‘뉴트로’스러워. ‘King Is Back’부터 ‘I Think I’까지. 앨범을 시작하는 댄스 음악은 분명 강렬하지만, 아주 요즘 느낌은 아니야. 그보다는 교묘하게 트렌드를 덧입힌 예전 음악의 느낌이 더 강해. NEO하고 도발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올해의 SM 음악과는 대조되는, 소위 ‘예상되는’ 구성이야. 레드벨벳의 ‘짐살라빔’, 엑소의 ‘Obsession’, NCT Dream의 ‘BOOM’, 무엇보다 SuperM의 Jopping등과 대조해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지.


    이는 안전한 보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뉴트로’라는 컨셉에 충실했다는 편이 맞지 싶어. 어딘가 익숙하되, 절대 촌스럽지는 않은 음악을 타이틀곡뿐 아니라 ‘앨범 단위’로도 보여주겠다는 거지. 실제로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봐.


    타이틀곡은 아니였지만, 끝까지 타이틀곡으로 경합했다고 알려져있고, 결국 무대까지 해냈던 곡 ‘I Think I’가 대표적이야. 슈퍼주니어 하면 과거에는 ‘Sorry Sorry’로 대변되는, 소위 SJ Funky였지. 후기 슈퍼주니어는 남미의 인기를 등에 업은 라틴풍 음악이 대표적이야. I Think I 또한 그 라틴 음악을 충실하게 재현했어. 의상부터, 원테이크의 뮤직비디오까지, 모두 뭔가 익숙한 요소를 절묘하게 배합해서 새롭게 재해석했지.

    https://www.youtube.com/watch?v=bguAqCE_KTk

    Super Junior - No Drama


    또 하나 이야기해보고 싶은 곡은 후반부에 위치한 No Drama야. 멤버들이 직접 작사한 곡이기도 해. 가사는 이별에 대해 다루는 발라드지만, 곡 자체는 발라드라기 보다는 절묘하게 과거의 정서를 소환하는 댄스 팝이면서 묘하게 기타가 곡을 리드하면서 '라틴팝'의 느낌을 가미했어. I Think I등 초반의 댄스 음악과 맥을 같이하는 음악인 셈이야.


    이 곡은 두가지 가치가 있다고 봐. 하나는 멤버들의 성장. 슈퍼주니어는 실제로 솔로 가수 커리어,가창력에서부터 뮤직비디오 감독, 안무제작 등 다방면에서 성장을 꾸준히 보여줬어. 최근 공연은 은혁, 신동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지. 멤버들이 직접 작사한 곡이 실렸다는 사실 또한 멤버들의 성장을 잘 보여준다 생각해. 별게 아니라 여길 수 있지만, 뭔가 음악에 진지하다는 인상보다는 느긋한 이미지의 슈퍼주니어이고, 아무리 멤버라도 쉽게 작사, 작곡을 주지 않는 SM이기에 더 돋보이는 시도라고 봐.


    또 하나는 앨범의 컨셉.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댄스 음악을 구사하고 있어. 그런 의미에서는 백화점식 구성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다 들으면 쭉 이어진 하나의 컨셉앨범을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뉴트로’라는 ‘정서’. 그리고 ‘템포있는 댄스 음악’이라는 전체적인 장르를 통일해서 채웠기 때문이야. 전혀 다른 듯한 음악들을 콜라주해 결과적으로 통일감 있는 앨범으로 만든, SM의 프로듀싱의 또 하나의 경지를 보여준 셈이야. 발라드 역할을 가사적으로는 하는 'No Drama'조차도 전체 앨범의 느낌에 잘 녹아들고 있지.

    https://www.youtube.com/watch?v=VRuLUt-Pz88

    Super Junior - Show (M/V)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곡은 ‘Show’야. 김동률이 작곡한 김원준의 그 노래 맞아. 심지어 편곡은 황성제니 그야말로 Old Boy들의 곡이라 할 수 있지. 뉴트로를 컨셉으로 한 앨범의 완벽한 마무리랄까?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게 리메이크한 이 곡을 굳이 끄집어내려는 건 이 곡이야말로 ‘뉴트로’ 컨셉의 완성이기 때문이야. 우선 이 곡은 과거 곡을 리메이크해서 요즘 노래로 내놓았으니, 그런 의미에서 당연히 ‘뉴트로’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이 곡의 의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


    이 곡은 ‘슈퍼주니어의 과거 활동, 특히 초기의 정신을 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뉴트로야. 무슨 뜻이냐고? 앨범 전곡을 다 듣는 팬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사실이지만, 슈퍼주니어는 초기부터 꾸준히 리메이크, 혹은 과거 가요와의 접점을 만들어놓았어. 유재하의 ‘우리들의 사랑’이나 이상은의 ‘언젠가는’, 토이의 ‘좋은 사람’ 등의 발라드부터, 심지어 CCM ‘아주 먼 옛날’까지 다양한 곡을 리메이크해서 실었고, 윤종신이나 유영석 등 이전 세대 가요 작곡가의 곡을 받기도 했지.


    중반이 넘어서 리메이크곡의 전통은 점차 사라지거나 흐지부지 되었어. 그런데 슈퍼주니어가 오랜만에 군대 시기를 넘어 대다수의 멤버가 돌아온 앨범에서 다시 이 리메이크 기조를 가져온거야. 진정한 ‘Time Slip’이고, 진정한 ‘뉴트로’야. 그야말로 우리가 다시 돌아왔다는 선언이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노력이기도 해. 설령 앨범 전곡을 다 듣는 팬만 이를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지.


    심지어 ‘뉴트로’라는 컨셉은 앨범에서 끝나지 않고 활동까지 이어져. 최근 슈퍼주니어가 동방신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자체 제작 웹예능 ‘아날로그 트립’은 과거, 데뷔 직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여행을 해보자는게 주요 취지야. 앨범의 컨셉인 ‘뉴트로’ 그리고 ‘타임 슬립’을 심지어 자체 제작 예능의 핵심 컨셉으로까지 가져온 셈이야. 이쯤 되면 그 치밀함이 무섭기까지 해. 이 모든걸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팬이라면 정말 ‘타임 슬립’, 그리고 과거지만 과거보다 훨씬 세련된 ‘뉴트로’를 즐기는 기분이었을 거야.


    아이돌 팬을 관성적으로 욕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많아.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이돌 팬만큼 진지하게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는 존재가 있을까? 그리고 꾸준히 전곡을 즐기는 팬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은 그 어떤 장르 뮤지션보다 진지하게 앨범 단위의 작품을 만들고 있어. 얼핏 평범하고 무난한 댄스 음악 같지만, 사실은 팬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치밀하게 조각된 ‘Time Slip’이 바로 그 근거야. 앨범의 미래를 알고 싶어? 그렇다면 아이돌 앨범을 들어야 할 지 몰라.

    Written by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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