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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와 밈 세대는 어떻게 힙합을 바꾸었는가
    Feature/힙합과 한국 2019. 11. 12. 15:36

    뻔한 말로 시작해야겠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힙합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힙합 마니아들은 힙합을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 혹은 다른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는/받아선 안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힙합의 고유한 특성과 멋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힙합 역시 시대의 산물이며 늘 변하는/변할 수 있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성실하고 균형 있게 따라잡는 것이다.

    힙합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기만의 것이 몇 가지 있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여겨온 힙합의 전통 말이다. ‘킵잇리얼(Keep It Real)'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개념이다. 지금껏 우리는 래퍼들이 손으로 제스처를 취해가며 킵잇리얼이라고 외치는 광경을 수없이 보아왔다. 늘 진실할 것. 자기의 진짜 이야기를 랩으로 풀어낼 것.

    어쩌면 힙합은 모든 음악장르를 통틀어 ‘창작자’와 ‘가사 내용’의 일치를 가장 당연시하는 음악일지도 모른다. 성시경의 발라드를 들으며 우리는 노래 가사가 성시경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잘 만들어진 허구’라고 생각한다. 성시경이 진짜 겪었던 일이 가사에 담길 수는 있지만 그래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건 발라드에 없다.

    하지만 힙합은 사정이 다르다. 지금껏 우리는 꽤 오랫동안 랩이 곧 그 래퍼의 삶이라고 여겨왔다. 래퍼는 자기의 ‘진짜’ 삶을 기본적으로 ‘진지하게’ 뱉는 존재였다. 조금의 각색이나 과장이 있을 순 있지만 핵심은 ‘리얼리티’였고, 늘 엄숙하진 않았지만 큰 틀에서는 진중함을 근본으로 삼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힙합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산산조각 났다는 말은 아니다. 대신에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이것이 조금씩 변하거나 서서히 느슨해져온 광경을 지켜봐왔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하지만 최근 몇 년 간을 돌아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전에 비하면 ‘급변’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다시 말해 SNS가 등장하고 밈(meme) 세대가 출현한 지난 몇 년 동안 힙합은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힙합의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세대’가 힙합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힙합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거나, 앞선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세대 단절을 논할 정도로 그동안의 전통과 무관한 힙합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말이다.

    SNS는 직관적이다. 누구나 누구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누구나 누구의 삶을 직접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빠르게 흘러가고 쉽게 스쳐 지나간다. 한 사람의 삶을 더 쉽고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면만 보면 SNS는 언뜻 힙합의 전통을 더 강화해줄 존재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빠르게 흘러가고 쉽게 스쳐 지나가는 SNS 속에서 누군가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할 여유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기에 SNS에 올라온 그 래퍼의 가사가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대신에 중요해진 것은 ‘매력’이다. 빠른 속도와 방대한 볼거리 가운데 나를 사로잡는 매력이 중요해졌다. 모두의 삶을 SNS로 엿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그 사람의 퍼스널리티에 매력을 느껴야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단, 그 퍼스널리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력이 있다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즉 SNS는 타인의 퍼스널리티를 쉽게 엿볼 수 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타인의 퍼스널리티를 엿보는 것 자체만을 중요하게 만들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믹인지 컨셉인지 사람들은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밈의 ‘지배’ 역시 중요하다. 드레이크(Drake)의 ‘Hotline Bling’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밈이다. 팻죠(Fat Joe)의 친구이던 디제이칼리드(DJ Khaled)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원동력은? 역시 밈이다. 미고스(Migos)의 히트 싱글 ‘Bad and Boujee’의 가사 구절 하나를 무한 루핑해놓은 동영상이 유투브에서 조회수 320만회를 기록한 까닭은? 이것도 밈이다. 사람들이 밈을 원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밈이 지배하는 시대의 정신은 명확하다. 웃겨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벼워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해보자. ‘웃기면 그만이다’. 물론 밈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진지한 것도 살아남을 순 있다. 하지만 진지한 것은 희화화되며 살아남는다. 희화화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궁예의 관심법과 김두한의 사딸라와 박찬호의 긴 인터뷰에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열광했는지 떠올려보면 답은 쉽다. 힙합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이들이 랩의 완성도나 힙합 정신에 대해 논할 때, 밈 세대는 그냥 웃고 넘어가자고 말한다. 밈은 이 시대의 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래퍼 언에듀케이티드키드(Uneducated Kid)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가 성공한 방식은 확실히 흥미롭다. 그의 성공방식은 흡사 디제이칼리드나 식스나인(6ix9ine) 같은 인물을 연상시킨다. 언에듀는 SNS에서 자신의 일상을 전시한다. 그중에는 약간의 연기가 가미된 짧은 예능 영상이 적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웃으며 소비한 후 잊어버린다. 문득 얼마 전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제목이 ‘아메리칸 밈(The American Meme)’이었지 아마. 언에듀는 밈 세대를 정확히 관통한 거의 최초의 한국 래퍼다.

    염따 역시 마찬가지다. 염따의 성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2019년’이다. 2019년 방식의 성공이라는 뜻이다. 일단 염따는 재밌다. 웃기는 형이다. 밈으로 즐기기 최적화된 인물이다. 또 염따는 자신의 퍼스널리티를 SNS에 가감 없이 드러낸다. 너무 날 것이어서 어떨 땐 오히려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진솔하게 전시한다. 롤렉스 시계를 몇 백 만원 주고 산 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온다. 밉지 않은 자랑을 한 후 ‘실은 나도 너희와 똑같다’고 말한다. 그 후 사람들을 자신의 ‘음악’으로 끌어들인다.

    언에듀케이티드키드가 90년대로 상징되는 힙합의 전통에서 자유로운 20대 초반이라는 점, 그리고 염따가 지난 오랜 커리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한 끝에 성공했다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SNS와 밈 세대는 힙합을 바꾸고 있다.

    Written by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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