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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모임 특집] 다모임의 기부와 '진정한' 플렉스
    Feature/힙합과 한국 2020. 2. 12. 19:20

    다모임은 원래 사이트 이름이다. 동문이나 동창을 검색해서 만날 수 있는 사이트였다. 나 역시 좋아했던 여자애 이름을 입력해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20년 전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는 다모임이라는 이름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하게 됐다. 딩고와 84년생 동갑내기 래퍼 5명이 만든 힙합 프로젝트 때문이다. 더콰이엇, 사이먼도미닉, 염따, 팔로알토, 딥플로우. 2000년의 다모임을 기억하는 이들은 2020년에 다모임의 뜻을 재탄생시켰다. ‘둘도 없는 힙합친구.

    다모임 프로젝트에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명의 젊은 프로듀서를 파격적으로 기용했다는 면에서 한국힙합의 형님들이 씬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유의미하게 세력화해 큰 영향력을 갖춘 최초의 윗세대래퍼들이라고 규정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조회수와 파급력만으로 이 프로젝트를 높게 평가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기부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다모임은 4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아동센터와 대학교 힙합동아리에 기부했고 한국 소아암 재단에도 따로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며 나는 몇 가지 생각을 했다.

    일단 기부는 좋은 것이다. 힙합이든 아니든, 래퍼가 하든 안하든 기부는 그 자체로 좋다. 하지만 기부는 힙합 안에서 특수한 맥락을 가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다모임의 기부는 플렉스를 확장시켰다. 성공한 래퍼들이 그동안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며 자기를 위해 돈을 써왔다면 다모임은 남을 위해 1억 원이 넘는 돈을 써버렸다. 래퍼가 돈을 쓰는 방식, 즉 플렉스의 방식을 하나 더 늘린 것이다. 나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남을 위한 소비로.

    그러나 오해는 말자. 나는 지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플렉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해 외제차를 뽑는 것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다. 힙합은 부정적 상황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긍정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행위를 장르적 멋으로 삼아온 음악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불리하게 시작했는지 말해줄게. 난 밑바닥에서 왔고 내 힘으로 정상까지 왔어. 나는 스스로 이 모든 걸 얻었어. 지금 내 성공을 자축할 거야.” 그렇기에 플렉스는 단순한 허세나 과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여는 축하연이자 세상을 향한 자기증명이다.

    따라서 나는 다모임 콘텐츠에 달렸던 이 댓글에 동의할 수가 없다. “겉멋만 들린 허세힙합하는 인간들아. 이게 진정 힙합이고, 영향력이다. 감사합니다. 84년생 국힙 선도자들아.” 물론 나 역시 다모임 멤버들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나머지 래퍼들을 겉멋만 든 존재로 폄하한 건 명백한 왜곡이다. 빈약한 이분법이다.

    내친 김에 다른 댓글도 보자. “힙합은 뭔가 바른길에서 엇나가고 옆으로 새어나가는 인생과 동일시했는데, 힙합 자체를 선행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시대의 힙합 리더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동.” 앞선 댓글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찝찝하다. 바른길이란 대체 무엇일까. 또 힙합 자체가 선행이 되는 것이 과연 아름다운 일일까. 나는 이 댓글이 한국이니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기부나 선행으로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납득시켜야 비로소 온전히 사랑받는 나라 말이다. 다모임은 진정한 플렉스를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다. 대신에 다모임은 플렉스를 확장해 그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모임의 기부는 염따 개인과 연관해 말할 수도 있다. 염따는 내 유튜브 채널에 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가 1집을 내고 주변 사람이나 팬들이 저에게 앨범 너무 좋다고 말해줬을 때 그 한마디 때문에 그 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느껴봤어요. 그리고 그런 기분이 삶을 지탱해줘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저를 보는 사람들이 저를 통해서 힘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는 격려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그 격려를 통해서 이 모든 걸 이뤄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모임 7번째 에피소드에서도 염따는 비슷한 말을 한다. 대학교 힙합동아리에 음향장비를 기부한 뒤 하는 말이다. “뭔가 느끼잖아 지금, 너네 뭔가 지금 느끼잖아. 이 기분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음악을 해서 우리 다 같이 잘되자.” 염따는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줬다.

    어쩌면 다모임 멤버들은 특별한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기부를 할 때 그들이 지녔던 것은 그저 좋은 마음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들의 행위는 복합적인 층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힙합이 가장 핫한 음악으로 각광받는 이 시대에, 힙합이 냉대 받던 때부터 시작해 20년 가까이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성공한 84년생 래퍼들이, 전시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인스타그램 시대 한복판에서, 전시의 상징과도 같은 플렉스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흥미롭게 지켜보고 성실하게 해석할 뿐이다.

     

    * 이 글을 쓴 후 다모임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글과 함께 이 영상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Written by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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