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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특집] 오디션은 어떻게 케이팝을 바꾸었는가?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0. 10. 24. 08:33
오디션은 한때 케이팝 업계를 지배했다. '공정'이 키워드인 요즘, 공정하게 모두가 팬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는 오디션 서사는 케이팝 아이돌을 뜨겁게 달구었다. 오디션에 참여해보지 않은 아이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이제 오디션 열풍은 사그라든 걸로 보인다. 현재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기획사. 빅히트의 오디션 프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참담할 정도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불명예스럽게 종영해야 했다.
오히려 오디션 열풍이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오디션이 어떻게 케이팝 시장을 바꾸었는지 되짚어보기에 적합한 시간이라 본다. 오디션 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케이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보자.
프로듀스 시리즈 이전
오디션 열풍이란 말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도 낡아 보이는 개념이지만 당대에 그 위력은 굉장했다. 오디션으로 데뷔한 켈리 클락슨은 팝시장을 들어 올렸다. 한국도 아메리칸 아이돌을 벤치마킹한 '슈퍼스타 K'가 케이블 TV 최초로 방송계를 평정했다. (역시나 매우 낡아 보이는 말이다. 성공한 혁명은 이다지도 지루하다.)
슈퍼스타 K 열풍 이후. 무수히 많은 오디션이 쏟아졌다. 보컬리스트에 집중한 보이스 코리아. 기성 가수마저 오디션의 자리에 놓은 나는 가수다. 래퍼를 뽑는 쇼미 더 머니까지. 그리고 드디어 아이돌 업계 또한 오디션 포맷을 받기 시작했다.
시작은 대형 기획사였다. 빅뱅과 트와이스의 공통점은? 당대를 풍미한 케이팝 그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오디션 포맷으로 일부 멤버를 선발한 그룹이라는 거다. 데뷔를 오디션 포맷으로, 방송사와 함께 치르는 방식은 당대 오디션이 핵심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케이팝스타는 3사 대형기획사가 모여 아이돌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비록 SM은 한 번 지나 그만뒀지만. 케이팝 스타를 통해 수혈된 악동뮤지션, 이하이 등의 가수들은 대형 기획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핵심은 역시나 '실력'이다. 오디션 열풍의 초기. 보컬리스트와 홍대 감성의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은 아이돌이 휩쓰는 가요계에 '진짜 음악'을 보여주겠다며 등장했다. (역시나, 매우 고루해 보이는 개념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아이돌 외에도 홍대 뮤지션, 보컬리스트 등의 시장을 건설했다.
아이돌 업계 또한 이에 대해 포용으로 대항했다. 엑소 등의 그룹의 발라드 앨범을 통해 정통 보컬 음악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제 아이돌 메인보컬의 솔로 발라드 싱글은 전혀 놀랍지 않다. 홍대나 인디 감성의 음악 또한 포용했다. 밴드 음악을 감싸 안은 JYP의 데이식스. 힙합 아이돌 방탄소년단. SM의 고집스럽기까지 한 발라드 솔로 앨범 프로젝트 등이 그렇다. 초기에 오디션 열풍은 케이팝의 다양성을 강화하고, 실력을 늘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거겠지만.
프로듀스 시리즈
시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걸그룹을 투표로 선발하겠다는 충격의 기획의 프로듀스 101 첫번째 시즌. IOI라는 대형 그룹이 등장했다. 하지만 박진영이라는 용병을 고용해서야 진정 대중이 기억하는 IOI의 히트곡이 나왔다. IOI 열풍은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하고 약화되었다.
진정한 프로듀스 101 열풍의 시작은 시즌 2였다. 남자 아이돌로 바뀌면서 음악부터 방송까지 모든 부분의 퀄리티가 급격히 올라갔다. 팬들의 몰입도도 엄청났다. 시즌2는 시청자들이 직접 기획한 조합의, 서로 다른 기획사의 멤버들이 아이돌 유닛으로 데뷔할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워너원은 한국 아이돌계를 그야말로 '평정'했다. 프로듀스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프로듀서 시리즈는 너무나 자극적인 유혹을 했다. 너희에게 모든 권한을 주겠다고. 너희가 직접 선발하는 아이돌이라고. 전문가들과 프로듀서들은 그저 너의 선택을 보조하기만 하겠다고 말이다.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인다. 하지만 거짓된 약속이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기획자들은 합법적인 편집권으로 사실상 순서를 바꿀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최소한 게임의 룰 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조합이 아니라면, 이를 '국민 프로듀서의 뜻'이라며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어떤 오디션도 '우리는 선발하지 않겠다. 전권을 고객에게 맡기겠다'는 거짓된 약속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킬수 없던 약속을 했던 셈이다. 이후 시즌3에서 제작진은, 본인들이 원하는 투표 결과가 나오지 않자 급기야 선을 넘어 결과를 조작했다. 이후 시즌4를 제작하며 뒤를 밟히며 방송계와 음악계를 주름잡았던 프로듀스 시리즈는 불명예스럽게 퇴장해야만 했다.
프로듀스 시리즈 그 이후
프로듀스 시리즈 시절, 이미 오디션은 사양길이였다. 사람들은 오디션이라는 자극적 포맷에 점차 시들해져 갔다. 프로듀스 시리즈 후반기에는 이미 대중의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투표 조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스캔들은 오디션 열풍에 치명타를 가했다. 프로듀스 시리즈 이후 대중의 관심을 받는 오디션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기존 아이돌 업계는 포스트 프로듀스, 나아가 포스트 오디션을 준비 중이다. 현재 활동하는 다수의 그룹에 오디션 참여해본 그룹 멤버가 없는 경우가 더 드물다. 특히 중소형 기획사일수록 오디션 프로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전략을 활용했다.
이 방식이 사실상 어려워진 지금. 케이팝 업계 신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 길을 모색 중이다. 최대한 많이 팬과 접촉하던가. 최대한 많은 공연으로 해외 팬들과 접점을 만들던가. 그도 아니면 뮤직비디오 등 콘텐츠에 많은 신경을 쓰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코로나가 이런 전략에 많은 차질을 빚게 만들었다.)
오디션 이후, 대형 기획사를 포함한 다수의 기획사는 아직도 새로운 신인을 성공시키는 공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디션 없이 등장한 슈퍼스타 방탄소년단은 '예외'에 가깝다. 유튜브 콘텐츠나 진정성 있는 소통이 해답이라는 방탄소년단의 해법은 유튜브 폭증의 시대인 요즘에는 요원해 보인다. 새롭게 아티스트에서 서사를 주는 방법이 필요하다.
케이팝 업계는 오디션 이후 다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케이팝 뿐 아니라 '어디에도'없다. 전 세계 어디도 이 새로운 해답을 찾지 못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의 음악 업계가 침체기에 빠진 요즘, 그 어디보다 가장 새롭게 음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팬과 관계를 맺는 케이팝이 오디션 이후 또 하나의 해답을 찾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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