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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특집] 인상적이었던 오디션 예능의 순간들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0. 11. 6. 17:42
[고등래퍼2, 모든 순간이 레전드였다]
싸이퍼부터 파이널까지- 빼놓을 수 있는 장면이 있을까. EBS에서 방영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던 레전드 오브 레전드. 고등래퍼2다.
과장을 좀 보태 서태지의 'Come back home' 수준의 영향력이 아닌가 싶다. 당시 수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서태지의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갔듯이, 이번엔 수많은 어른들이 고등학생을, 나아가 자퇴생을 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의의는 간단히 이 정도로 정리한다 해도, 라인업 마저 김하온/이로한/윤진영/조원우/오담률 이다. 다시 말해, 하이어뮤직/VMC/앰비션뮤직/하이라이트레코즈/밀리언마켓이 모두 있다는 얘기. 고등학생 래퍼들의 경연대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내로라하는 국힙 소속사들의 신예 래퍼 드림콘서트였다.
이 경연인지 콘서튼지 싶은 프로그램의 숱한 명장면들 중에서 꼭 한 장면을 꼽자면, 역시 2차 팀대항전에서 보여준 김하온X이병재의 '바코드'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이자 그들의 명암 대비가 그루비룸의 비트를 타고 폭발했던 곡. 한없이 밝고 긍정적인 김하온과 못지않게 어둡고 깊은 이병재. 이 둘의 합은 실제 바코드가 흰 막대와 검은 막대로 이루어진 모습과 닮아, 곡의 주제에서부터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사 내용부터 랩 스타일까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무대는 당시 10대들에게뿐만 아니라, 음원차트를 석권할 만큼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자라면서 점점 밝음도 어둠도 모두 탁해져 회색빛을 띠던 어른들마저 그 찬란한 흑백에 반응했던 것. 그토록 밝고, 또 깊고, 그래서 혼란스러운 모습이 모두가 지나온 10대- 그 자체였다.
김하온과 이병재 모두 이후 개인전에서는 각자의 색깔을 심화시키며, 또 다른 레전드 무대들을 완성해갔다. 이토록 다른 두 아티스트가 이토록 어우러지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물러섰다는 의미. 고등래퍼2가 '고등래퍼'답게 흥했던 데에는, 결국 서로에 대한 Respect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Respect이야 말로 가장 힙한 힙합 정신 일 테니!배연지, 케이팝 작사가
'전성기의 시작'. 아마도 2014년 상반기 첫 방송을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키워드. 그만큼 시즌3는 소위 말하는 '쇼미' 시대의 본격적인 포문을 염과 동시에 대부분의 래퍼들이 쉽게 꿈꾸지 못했던 'Rap Money'를 실체화 시켜준 효자 같은 콘텐츠였다.
이 시즌은 다시 봐도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몇 안되는 시즌이다. 처음 도입한 '4팀 스타 프로듀서(심사위원) 체제'는 프로그램에 퀄리티와 안정성을 불어넣었다. 도끼-더콰이엇부터 스윙스, 양동근까지. 고유한 음악색깔과 스타성을 가지고 있었던 프로듀서들의 합류는 더욱 더 다양해진 참가자들을 돋보이게 해줄 토대가 되었다. 또한 시즌3는 이전부터 일렁거리고 있던 언더그라운드 래퍼 vs 아이돌래퍼 구도에 불을 지펴 힙합의 흥행 요소가 무엇인지 정의내린 시즌이기도 하다. 전해 최대의 화두였던 '컨트롤 디스전'을 적절히 활용하여, 디스전의 매운맛은 가져오되 상처뿐인 엔딩은 피하고자 소년만화 영웅의 서사를 뛰어난 참가자들에게 입혀 훈훈한 그림을 연출했다. 방송사는 아이돌 이후 날것의 새로운 캐릭터와 음원을, 래퍼들은 랩스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보기 드문 윈-윈 사례.
안승배, 음악에디터
슈퍼스타k2는 시즌1 몹지 않게 재능이 넘치는 참가자들이 등장했다. 당연히 노래를 잘 부르는 참가자는 물론 기타 한 대만 들고와서 가요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는 참자가들도 여럿 등장했다. 참가자들이 각자 재능을 무대 위에서 펼치며 잊을 수 없는 무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무대라면 강승윤의 '본능적으로' 무대였다. 지역예선에서 강승윤은 재능은 있는데 어딘가 아쉬운 참가자였다. 나이에 비해 올드한 장르의 음악을 불러 어딘가 핏이 안 맞았다. 노래할 땐 무의식적으로 눈을 반쯤 뜨고 노래를 부르며 비주얼적으로도 약간의 충격을 줬다. 그랬던 그가 병정 모자를 쓰고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기타를 매고 무대에 섰다. 그리고 무대를 주도해갔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돌 락스타같았다.
아쉽게도 이 무대를 끝으로 강승윤은 탈락했다. 하지만 이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또한 자신의 재능과 스타성을 우승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증명해냈다. 게다가 이 무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각의 우승무대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도록 했다. 모두가 우승에만 의미를 두고 관전할 때 이 무대는 묵직한 한 방을 던졌다. 아마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이 아닌 값진 결과는 이 사례가 유일할 것이다.한슬비, 디자이너
<나가수 시즌1>을 한두문단으로 완벽하게 요약하기란 어렵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야깃거리들이 다 사람들의 기대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돌과 전자음이 점령한 가요씬을 피곤스럽게 여겼다. 이런 측면에서 <나가수>는 시의적절한 구원투수였고 마운드에 올라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뒤로 갈수록 가수들의 다양성이 썩 존중 받진 못했지만 시즌1은 모든 시즌 통틀어 폭넓고 다양한 편곡들이 돋보인 시즌이었다. 5.22 대첩이 대표적인 예.
몬세, 대중문화덕후
예로부터 제일 재미있는 장면은 싸움구경이라고 했던가. 쇼미가 제한된 링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캐릭터들간의 프로레슬링을 보여주었다면, 2015년 초 야심차게 출범한 '언프리티 랩스타'는 싸움구경의 재미를 극한까지 확장시킨 첫 오디션 예능이다. 불문율에 가까웠던 '카메라 꺼진 순간'의 모습들까지도 그대로 담아버리는 접근은 기존의 한국 오디션프로보다는 미국 MTV '저지 쇼어' (Jersey Shore) 류의 영향이 짙다. '아 쟤네들 진심이구나'가 확인된 순간 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불판에 몰입하고 각 디스전들은 생명력을 얻고 뻗어나갔다. 짜여진 각본에 출연진들이 진심으로 화를 내며 행동할 때 어디까지 시너지가 나올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 이후 두 개의 시즌이 더 제작됐지만 첫 시즌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건 '진심'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AOA 지민을 향한 제시의 행동, 그리고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서로를 향한 감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기가 아니었다. #극한의찐텐
안승배, 음악에디터
<K팝스타> 시즌1이 끝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당시 오디션 후발주자였던 K팝스타는 기존 오디션과 조금 달랐다. 우선 아이돌 3대 기획사(SM, JYP, YG)의 수장들이 직접 나서 오디션을 진행했다. 우승자에겐 소속사를 고를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까지 주어졌다. 각 소속사의 심사기준과 트레이닝 방식의 차이를 보는 것도 K팝스타만의 재미요소였다. (여전히 회자되는 박진영의 ‘공기반 소리반’도 K팝스타에서 나왔다.)
게다가 K팝스타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유독 어린 참가자들의 활약이 두드려졌다. 심사도 당장의 실력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우승과 준우승 역시 이례적으로 십대 소녀들이 모두 차지했다. 당시 우승자인 박지만은 만으로 15세였다. 그녀가 결승라운드에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You Raise Me Up’을 부르다 울컥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능숙하게 ‘Rolling in the deep’을 부르던 그녀가 중학생 소녀임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달까. 어린 나이에 겪는 기대와 압박을 아는 보아는 심사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우승자인 박지민은 JYP로, 준우승자인 이하이는 YG로 향했다. 든든한 소속사가 있어서였을까. 반짝했던 오디션 스타들과 달리 K팝스타 출신들은 오디션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올해 박지민, 이하이 모두 새로운 소속사로 이적했다. 꾸준한 행보와 별개로 두 뮤지션의 음악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었는데 소속사 이적 후 두 사람의 음악적 색깔은 보다 확실해진 느낌이다. K팝스타 이후 새로운 출발을 한 셈인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된다.
김민정, ex-업계종사자
공중파스러운 슈스케. 이 말 말고 위탄 시즌1을 더 잘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소위 조선족, 한국계 중국인인 백청강의 우승이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대표적인 순간이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잘 상상이 안되기 때문. 프로그램 전체적으로 슈스케 열화판이라는 인상을 벗진 못했지만 슈스케가 편집이라는 강력한 향신료를 넣었다면 위탄은 김태원과 방시혁을 필두로 재료 자체가 매운 느낌. 공중파에서 하는 오디션이라 가능한 그림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몬세, 대중문화덕후
보이스코리아는 미국 포맷을 수입한 오디션이지만 한국 취향에 맞는 보컬 포맷이였다 본다. '계급장 떼고' '노래만으로 승부하자'는 기본 컨셉이 워낙 '복면가왕'으로 대변되는. 한국 취향에 맞는 방식이었다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1라운드의 충격에 비해, 이후 평범한 오디션이 되버리는 한계도 있었다. 미국의 원 포맷도 이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최근 방영한 '보이스코리아 2020'은 이를 긴축해서 해결하려 했다. 1라운드 이후에는 딱 한번 배틀. 이후 패자부활전만을 거치고 바로 준결승으로 간다. 준결승 결승은 1화로 라이브 방송으로 끝낸다. 코로나에 맞게, 유튜브 시대에 맞게 간소화된 버젼으로 오디션의 쾌감을 짧게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는? 안정적으로 오디션의 쾌감은 보여줬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과 경쟁 구도의 소소한 케미. 보컬들의 인간 승리 스토리. 그리고 그 결론은 인간승리의 반전은 아니였지만, 여지껏 잘 알고 있다 생각했던 골든의 새로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며 마무리 지었다. 모든 재미를 짧은 시간 내에 충실하게 담아냈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오디션 프로가 사양길에 접어든 이유를 잘 보여준 걸 수도 있겠다. 대중에게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으니까.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사실 프로듀스 시리즈 자체는 시즌 2 이후 내리막이었고, 오디션 프로 또한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기점으로 빠르게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프로듀스 시리즈 사태는 그 속도를 더욱 빠르게 부채질했을 따름이다.
대체 왜 조작했을까? '신선한 뉴페이스가 우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프로듀스 시즌 1은 트와이스 데뷔 오디션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전소미가 우승했고, 그룹은 실패했다. 시즌2는 강다니엘이라는 뉴페이스가 우승했고, 그룹 워너원 또한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 인간이 과거의 성공을 잊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프로듀스 시리즈는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신이 직접 아이돌을 뽑을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막상 그 약속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자 순위를 바꾼다는, 초유의 일을 저질렀다.
트로트 오디션 열풍으로 중장년층마저 오디션 열풍이 지나간 지금. 이제 오디션 프로는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가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남은 느낌마저 든다. 지금도 쇼미더머니 등 기존 프로그램부터 신규 프로그램까지 온갖 시도가 나오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과연 이렇게 죽은 포맷을 살릴 혁명적인 프로그램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니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때깔은 <케이팝스타>와 비슷하다.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비춰주는 그림이나 자막을 쓰는 방식이 그렇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크게 색다른 것들은 없어 보일만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JYP 단독 프로그램이다보니 JYP가 인재들을 어떤 관점에서 선발하고 어떻게 훈련시키는지를 지켜볼 수도 있다. 덕분에 케이팝스타보다 더 설득력 있고 일관성 있는 평가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 프로그램이 더욱 흥미로워지는 것은 일본에서 케이팝 자원들을 뽑고 일본 로컬들로 케이팝을 재현한다는 것에 있다. 일본 로컬들이 우리말의 가사를 부르고 커버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뭔가 좀 낯설면서도 재미있다. 동시에 케이팝이라는 장르는 음악적 장치라기보다는 제작사와 그 공정과정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몬세, 대중문화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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