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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Remix'의 의미: 비로소 비에게 보내는 존경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1. 2. 19. 10:32
"비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최근 몇 년간 들었던 생각입니다. 비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사실 '집단 괴롭힘' 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영화 '엄복동'을 1ubd라는 단어로 취합하는 태도, 비의 '깡'을 흉내 내며 춤을 추고 영상으로 올리는 소비 방식. 이건 누가 봐도 '조롱'에 가깝습니다. 비가 뭘 잘못했나요? 자기 능력으로는 좀 벅차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지요. 그에게 보인 우리의 반응은 놀림과 조롱이었습니다.
비는 어떤 사람인가요? 박진영이 출연한 예능 프로 <무릎팍 도사>를 보면 비의 위엄을 알 수 있습니다. 박진영은 비가 등장한 이후 자기보다 비가 더 유명해져서 자기가 상대적으로 초라해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비는 노력하면 정말 월드 스타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죠. 그게 당시 비의 위치였습니다.
전성기 비는 대단했습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보여주는 무대, 예능 활동을 통해 보여준 멀티테이너의 면모, 드라마 <풀하우스>부터 할리우드 액션 영화까지 다양한 연기 시도들. 심지어 '레이니즘'에서는 프로듀싱에 참여해 성공하기까지 한 최고의 스타였지요.
30대가 되면서 그는 조금씩 밀려 나갔습니다. 젊은 후배들이 다양한 부분에서 활약하면서 기준을 올렸지요. 연기의 디오, 춤의 태양, 셀프 프로듀싱의 지드래곤, 랩의 지코, 노래의 백현 등. 각 분야에서 비의 '상위호환' 후배들이 등장한 겁니다.
이때 나온 '깡'은 야심찬 시도였습니다. 엠넷의 음악 프로에서 '호랑나비' 등 히트곡을 만들어낸 프로듀서 길의 프로듀싱. 대형 기획사가 실제로 시도하는 미국 안무가의 도전적인 '본토 갬성'의 춤. 공격적인 랩 파트부터 달콤한 알앤비 파트까지 피처링 하나 없이 시도하는 '깡'까지. 혼자 해내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야심이 엄청났던 만큼 그 실패도 거대했죠. 지금까지 놀림거리가 되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비가 대체 뭘 잘못한 걸까요? 나이든 가수는 최신 음악을 하면 안 될까요? 야심차게 도전할 수는 없는 걸까요? 도전하다 보면 실패 좀 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래서 하이어 뮤직이 발매한 '깡 Remix'가 반가웠습니다. JYP 출신 박재범을 필두로 식케이, pH-1, 김하온이 리믹스한 '깡'은 선배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합니다. 비 형이 하고 싶었지만 못다 한 게 얼마나 멋진 건지 우리가 보여주겠다는 패기가 느껴지지요. 박재범의 춤, 김하온의 랩 등 4명의 재능이 합쳐 만든 누구보다 트렌디하고 멋진 노래입니다.
압권은 역시 음악 마지막에 비를 중심으로 5명이 함께 추는 춤입니다. 원곡처럼 동물적이면서도, 원곡처럼 과하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 '비'를 세워서 경의를 표한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대중 또한 이 곡을 차트 정상에 세우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인간 정지훈에게 보내야 했던 존경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HIM 매거진 2020년 7월호에 게재.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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