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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힙합과 군대: 래퍼들의 새로운 SWAG
    Feature/힙합과 한국 2021. 2. 19. 11:02

    "조기기상 6시에 나 좀 깨워~" 지난 6월 래퍼 던밀스(Don Mills)가 발매한 복귀 싱글 'OKGO 2'의 후렴입니다. 길었던 군 생활이 끝나고 돌아왔다는 전형적인 가사. 하지만 잘 들어보면 이전 전역자 래퍼들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지금껏 군대라는 건 젊은 날 한번쯤은 통과해야 하는 '관문' 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를 그리는 시선은 무거웠죠. 수많은 뮤지션이 입대 당일 '이제 떠난다'라는 메시지의 싱글을 남기고 쓸쓸한 표정으로 입대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녀온 이후의 소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이 잘 요약해줍니다. 군대 갔다 오면 곧 서른이야. 

    재미있는 건 최근 전역한 래퍼들의 군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꽤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작년 4월 복귀 싱글 'OKGO'를 발매했던 빈지노를 봐도 그렇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그가 경험했던 군 생활의 영향이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복무 지역이었던 강원도 철원군에서 촬영하고 아트워크를 군 생활 시절 그렸던 스케치로 구성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던밀스의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확장합니다. 단순히 군대 언어를 빌리는 대신 군 생활이 몸에 밴 만기제대 병장으로 빙의해서 가사를 씁니다. 이제 사회인의 신분이지만, 해야 할 일들을 앞두고 그가 새롭게 하는 다짐은 군 생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조기기상부터 사격훈련, 포구 확인까지. 그가 버텨야 했던 순간들은 그의 음악에 매력을 입히는 요소로 재탄생합니다. 

    창작자들의 군대를 향한 시선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요? 국방부 주도하에 점진적으로 개선된 병영 환경도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복무 기간 단축', '스마트폰 도입' 등의 여러 조치를 통해 병사들이 느끼기 쉬운 '사회로부터의 단절감'을 일정 부분 해소한 것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지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스마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상이 크게 달라진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기존의 TV 세대가 인식했던 미디어의 정의가 '일방적 정보 전달'이었다면 지금은 내 몸을 감싸는 모든 디바이스들이 콘텐츠를 24시간 주입합니다. 유튜브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자극들로 넘쳐나는 거죠. 

    이 시점에서 래퍼들에게 군대는 역설적으로 창조를 위한 재충전의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작년 4월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빈지노는 '세상이 자극으로 넘쳐났기에 오히려 적절한 결핍과 규칙이 있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더 많은 아웃풋을 만들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던밀스 역시 제대 후 출연한 '랩하우스 온에어'에서 군대의 특수한 환경이 주는 장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로 인한 영향일까요? 더 이상 래퍼들에게 군대란 예전처럼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무엇은 아닌 듯 합니다. 최근 식케이, 지코 등 랩스타들의 입대를 봐도 가야 할 땐 주저없이 가는 모습이죠. 어차피 한번은 경험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빈지노-던밀스가 보여준 것처럼, 특수한 환경이 주는 긍정적 측면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접근도 필요해 보입니다. 곧 제대를 앞둔 AOMG의 랩스타 로꼬(Loco)는 과연 'OKGO 3'를 만들지 궁금해지네요. 

    *HIM 매거진 2020년 9월호 게재.

    안승배, 음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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