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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이 아닌, 전 세계 케이팝 팬을 위한 케이팝, NCT 127Review/Singles 2019. 12. 13. 21:11
요즘 음원 차트 상위권에서 아이돌 음악이 사라졌어. 항상 여름마다 등장하던 '올해의 여름 아이돌 노래'도 없었지. 상위권은 발라드, 아니면 볼빨간 사춘기, 헤이즈 등 '장르 음악'이 차지한지 꽤 됐어.
케이팝의 인기가 식은 걸까? 그보다는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너무 잘 되기 시작 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 같아. 케이팝 데이터 분석 사이트 '케이팝 레이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국의 케이팝 소비 비율은 고작 10% 밖에 안 된다고 해. 전 세계의 케이팝 팬이 (한국 케이팝 팬은 몰라도) 한국 대중보다는 더 중요한 시대가 온거야.
그래서일까? 케이팝은 점차 '한국 대중 취향'에서 멀어져가고 있어. 그 대표적인 예시가 이번 글에서 소개할 NCT 127의 'Superhuman'이야. 들어보지 못했다고? 그럴만 해.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성과가 거의 없었던 곡이거든.
https://www.youtube.com/watch?v=sXkOcGxtWfU
미국으로 보면 상황이 달라져. 이 곡은 빌보드에서 11위에 올랐어, 방탄소년단에 이어 역대 한국 가수 2위 기록이야. 북미 투어 또한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지. 그럼에도 유튜브 뷰는 불과 2천만을 조금 넘을 정도야.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빌보드 11위를 기록한 곡의 유튜브 뷰라기에는 아쉽지. 오로지 타겟인 북미에서만 성공을 거둔 곡인 셈이야.
Superhuman은 어떻게 정확하게 본인의 타겟 고객을 저격했을까? 이를 분석해보면, 자연스럽게 왜 한국 차트 상위권에서 케이팝이 줄어들고 있고, 대신 해외 시장에서 케이팝의 성과가 커지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아가서, 앞으로 케이팝의 한국 차트 성적을 예상해볼 수 있을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럼 같이 곡을 자세하게 살펴볼까?
음악
NCT 127의 미니앨범 'WE ARE SUPERHUMAN'의 커버 우선 음악을 볼까. 정말 복잡한 곡이야. 코드 진행은 화려하다 못해 댄스음악이라기 보다는 재즈에 가까운 수준이야. EXO의 최근곡 'Tempo'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들어가는 '아카펠라' 클라이맥스 또한 정교하기 짝이 없지. 팝 음악이나, 대중가요처럼 느슨하고 대중이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노래라고 보기는 어려워..
음악에서 전반적으로 SM의 특색이 강하게 느껴져. 샤이니의 신스팝, 엑소의 아카펠라 등 과거 SM 그룹의 느낌도 들어있지. NCT 특유의 공격적인 힙합 음악의 성격이 줄었고 랩 또한 비중이 적어졌어. NCT의 음악이라기보다 SM의 결정체, 소위 'SMP'라는 느낌의 음악이야.
정리하자면, 대중에 크게 성공할 수 있을 듯한 소위 아이유, 빅뱅 류의 대중적인 아이돌 음악은 아니야. 그보다는 '케이팝'의 전형인 복잡성이 극대화되었지. 팝과는 구별되는 케이팝의 특성이 크게 드러나는 만큼 대중성은 줄어들었어. '장르음악'으로써 케이팝에 충실한, '순도 100% 케이팝'이라는 느낌이야. 이런 음악을 내서 한국 대중에게 큰 성공을 거두지 않을 것임은 굳이 음악 전문가가 아니여도 짐작할 수 있어. 하지만 이 음악은 한국 대중을 넘어 전 세계의 케이팝 팬을 'SM의 팬'으로 만들겠다는, 더 큰 야심을 보여주고 있지. 해외의 케이팝 팬에게 다가가기에는 차라리 미국 팝과 명확하게 구분이 되서 케이팝 다운 음악인게 더 낫다는 거야.
가사
'초인' 개념을 고안했던 니체 아이돌은 사랑 음악만 한다고? 적어도 방탄소년단 이후로는 틀린 말이야. Superhuman 또한 방탄소년단처럼 철학적 인용이 가득해. 제목 부터 니체의 '초인'이니까. '뭐든 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한계를 시험해 Try', '내가 끝이라 말하지 않으면 끝이 아니야'라 외치는 가사 또한 스스로 창조하는 초인이 되라는 니체의 메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려 노력하는 NCT 127의 상황과도 절묘하게 이어지기도 하고.
레퍼런스 인용은 가사에서만 끝나지 않아. Superhuman의 포인트 안무는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점프 포즈야. 슈퍼맨 또한 니체의 '초인'에서 그 초기 컨셉을 따온 작품이지. 니체의 초인을 가사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초인을 인용했단 팝 문화를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안무에까지 통일감을 더한 셈이야. 슈퍼맨은 특히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콘텐츠기에 익숙하기도 하지. 레퍼런스를 활용해 가사와 안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성을 만든 셈이야. 모두 방탄소년단이 했던 방식의 SM식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어.
이는 소위 말하는 '한국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작사가들은 '사랑 이야기를 해야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하곤 하니까. 니체의 '초인'을 인용해서 대중에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거 같지? 하지만 가사를 깊이있게 뜯어보는 팬이라면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 특히 '슈퍼맨'을 체화하고 있는 미국의 케이팝 팬이라면 더더욱.
무대/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95oZNxW5Rc
Superhuman 뮤직비디오는 무엇보다 색감이 독특해. 그야말로 하이 엔드 영상이라는 느낌이야. 최근에 유행했던 엑소, 방탄소년단 등의 '쨍'한 색감과는 또 다른, 아트 필름이나 미술작품에 가까운 색감을 보여준달까?
영상의 컨셉 또한 미래를 보여주는 SF 테마야. 팝 뮤직비디오보다도 더 정교한 세트와 구성을 보여주지. 대중이 보고 마음이 흔들릴 작품이라기 보다, 끊임없이 영상을 보고, 떡밥을 재해석하는 '팬덤'을 위한 선물이라는 느낌이 강해.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 속에 기어코 빠져들어 자신만의 의미를 해석하고 마는 팬덤이라면 멋지게 노는 모습을 전시하는 일반 팝 뮤직비디오보다 이런 뮤직비디오를 더 선호할 거야.
이달의 소녀. NCT 등 요즘 나온 어떤 아이돌 팀의 뮤직비디오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아. 뮤직비디오보다는 아트필름을 보는 느낌이 들지. 뮤직비디오가 아름다운 눈요기거리, 홍보수단을 너머 하나의 '작품'이 되는 시대가 온 셈이야.
결론
NCT 127 'Superhuman' 미국 TV채널 ABC의 방송 ‘굿모닝 아메리카’ 출연 장면 결론적으로 Superhuman은 한국 대중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기획이라 생각해. 전반적인 만듦새가 전혀 대중을 고려하고 있지 않아. 그보다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아이돌 팬덤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해보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케이팝 팬들에게 '정말 멋진 음악, 수준 있는 영상을 보려면 우리 걸 보라'라고 설득하는 콘텐츠랄까?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돌보다는 '정통 장르음악 뮤지션'의 태도에 가깝다고 봐.
NCT는 이미 한국 대중과는 거리가 먼 클라우드 랩을 선보인다던가 (일곱번째 감각), 머니 스웩을 보여주는 등(Regular) 한국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하지만 북미 케이팝 팬들, 음악 팬들이라면 환호할 만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선보였어. 심지어 SM은 최근에 미국에만 활동하는 슈퍼그룹인 SuperM을 런칭하기까지 했지. 그들의 과녁은 분명 한국 대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뜻 아닐까?
이는 비단 NCT, 혹은 SM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 대중보다는 전 세계 '케이팝 팬덤'을 노리는 기획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 몬스타 엑스는 북미를 위주로 활동중이야. 모모랜드는 동남아에서 절대적인 가지고 있어. 한때 보이그룹보다 상대적으로 '대중'을 중시한다던 걸그룹 또한 최근에는 (여자)아이들, 여자친구 신보 등 명확하게 대중보다는 케이팝 팬덤을 겨냥한 기획을 하거나 '아이즈원'처럼 다른 나라를 애초부터 전략에 넣은 음악을 발표하고 있어.
브릿팝은 영국인만의 음악이 아니야. 영국에서 나온 음악일 뿐, 전 세계의 브릿팝 팬을 위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음악이지. 콜드플레이, 뮤즈, 라디오헤드 등 영국의 브릿팝 밴드들은 명확하게 전 세계의 브릿팝 팬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활동하고 있어.
케이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제 케이팝은 한국인만을 위한 음악이라기에는 너무 거대해진 건 아닐까 싶어. 그보다는 전 세계의 '케이팝 팬'을 위한 음악이라는 느낌이 점점 드는거지.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팝이 세계화 될 수록, 점차 한국 차트에서 케이팝 비중은 줄어 들 거라고 봐. 한국 차트 취향을 덜 신경쓰게 될 테니까. 이 또한 케이팝이 '한국의 아이돌 음악'을 넘어 '전 세계의 팬덤을 가진 명확한 장르 음악'으로 성장하고 하는 과정이라 생각해.
그렇다고 한국 시장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건 아니야. 한국 '대중'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뿐, 전 세계 케이팝 팬덤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한국 케이팝 팬덤은 여전히 기획사에게는 중요할 거라고 봐. 아이돌 멤버들 또한 한국 팬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기도 하고. 굳이 아이돌 음악이 차트에서 줄어든다고 아이돌 팬덤이 아쉬워할 이유는 없는 이유야.
Written by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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