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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콰이엇과의 대담, "이젠 헤이터들이 그립네요"
    Interview/RAP GAME TALK 2020. 9. 13. 11:30

    [RAP GAME TALK]는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REP TV'의 주요 콘텐츠입니다.

    래퍼를 초대해 한국힙합씬에 대해 대담을 나누며, 매디에서는 인터뷰 영상의 텍스트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2018년 10월에 진행된 내용입니다.

    김봉현 (이하 'B') :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glow forever>인데 이 뜻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이게 뜻이 없습니다. 그냥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주셔도 되고요. 옛날부터 그냥 제 머릿속에 있었던 제목이에요. 언젠가 'glow forever' 로 한번 앨범을 내봐야겠다. 

    사실 어디서 착안을 했냐면 라킴(Rakim)의 'Flow Forever' 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그 곡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듣다가 이거 말 좀 바꿔서 'glow forever' 라는 말로 앨범을 만들면 재미있겠다 라는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이번에 앨범이 거의 완성이 되고 제목을 지어야 되는데 제목으로 할게 너무 없는 거에요. 그래서 뭐로 하지 하다가 제가 킵해놨던 이 제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쓴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596rdEwCbpE

    그의 앨범 제목에 영향을 준 미국 뉴욕힙합의 전설 Rakim의 'Flow Forever'

    B : 제가 해석하기로는 지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어떤 뜨거움 그런 것들이 계속 되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는 그런 의미인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근데 지금 말씀 드렸듯이 저는 의미를 생각 안하고 지은 제목이기 때문에 저 스스로한테나 팬분들한테나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B :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뭔가 심경의 변화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자유롭게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이번 앨범의 경우 저도 바쁜 와중에 만든 앨범이기도 하고 저도 이게 완성되기 전까지 정주행을 못해봤었어요. 그 정도로 뭔가 바쁜 와중에 나와야 했던 앨범이라 이 앨범에 대한 생각이 사실 정리되어 있진 않아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거고 제가 음악을 또 많이 내본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은 제가 처음 만들어보는 듯한 혹은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그런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에요. 

     

    B : 최근 정규 앨범들을 보면 <1 Life 2 Live>가 있고 <Millionaire Poetry>가 있고 이번 앨범이 있는데 이 세 장에 대해서 각 앨범 간의 차이, 혹은 본인이 앨범들에 가지고 있는 심정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일단 '1 Life 2 Live'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 제가 한창 되게 바쁘게 일하고 돈을 벌고 제 목표도 이루어내면서 (봉현 씨도 많이 말씀해주신 부분인) '힙합의 자수성가' 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 앨범이에요. 영화로 치면 느와르 영화 같은 요소를 섞어서 앨범을 만드는 그런 작업 방식이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 앨범을 제일 만들기 힘들었어요. 가끔씩 그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그 무게감이 장난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의 저라면 오히려 만들 수 없는 좀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는 음악들을 하고자 했었고 그 때 한창 거기에 꽂혀있었기 때문에... 만들었던 음악들이죠. 

    'Millionaire Poetry' 이건 좀 복합적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많은 걸 정리하는 앨범이었어요. 제가 그 당시에 해왔던 음악들 혹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들을 한 앨범에 모으는 작업이었고요. 어떤 커리어가 진행되다 보면 챔터가 나뉘잖아요. 제가 보는 저의 챕터에서는 마지막 작품 같은 그런 겁니다. 그 앨범을 끝으로 아마 제가 만들지 않을 음악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이번 'glow forever' 같은 경우 방금 말씀 드린 기준으로 치면 새로운 시작점, '다음 챕터의 시작' 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B : 말씀 주셨듯이 <glow forever> 앨범은 새로운 방향이 느껴지고 새로운 챕터의 시작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이 앨범은 힙합 앨범일까요?

    힙합앨범... 이게 상당히 심오한 질문이기도 한데요, 저는 힙합 앨범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근래에 와서 미국에서 진행되는 이 음악의 변화나 힙합문화의 어떤 진화 같은 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해요. 

    우리가 이거는 힙합이라고 생각했고, 이건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확장되는 시대잖아요. 경계가 사실은 없는 게 아닐까, 이제는 이런 류의 토론이 의미 없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하거든요. 

    이번 앨범을 굳이 힙합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그런 것에 미련은 없습니다. 다만 그래도 저는 기본적으로 힙합 팬이고 힙합 스피릿 같은 게 있잖아요. 저희같이 오랫동안 힙합을 사랑해온 사람들은 말이죠. 그런 맥락에서 제가 쓰는 가사와 제가 택하는 음악적인 장치들은 어쨌든 힙합에서 나온 거에요. 다만 지금의 힙합이 굉장히 확장되어 있는 뭔가기 때문에 기준을 두기 좀 애매해요. 3년 전 기준의 힙합, 5년 전 기준의 힙합, 그리고 10년 전 기준의 힙합은 전혀 다르잖아요? 아예 새로운 국면에 저희가 와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B : 이번 앨범을 들으면 누구나 더콰이엇의 음악이 변했구나 라고 느끼지만 그것을 전문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잖아요. 더콰이엇님 본인이 이번 앨범의 음악적 영향 등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단은 근래에 나오는 많은 음악들과 새로운, 감정적인 무브먼트라고 보는데 트랩 비트지만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감성이 달라요. 감성이 좀 많이 변했고 이모(emo) 랩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은데 왜 그런 명칭인지 알 것 같고 그 움직임에 공감하는 입장이에요. 저도 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를 접해온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많은 것들이 뒤섞이고 있고, 한번도 힙합에 섞여본 적이 없었던 것들이 와서 섞이고 있는 게 보이잖아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라던지 말이죠. 

    사실 예전 힙합같은 경우 상상도 못할 일이었거든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저 같은 경우 90년대 비디오 게임을 하고 일본 만화를 보며 자랐던 세대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웠어요. 이제는 이런 시대도 오는구나. 오히려 저한테는 더 편합니다. 이런 류의 감성적인 접근이. 그래서 이해가 잘 됐고 이런 것들을 꼭 해보자 라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최근 음악들의 영향을 받아서 나온 결과물 같아요. 

    이 앨범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나 어떤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굳이 말하자면 정서, 분위기에 더 많은 비중이 있는 앨범이라고 봤어요. 예를 들어 이 앨범을 틀었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분위기, 그 분위기가 중요했던 앨범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이건 청자들의 몫인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이 앨범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고 생각해요. 

     

    B : 힙합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이전의 랩의 정의가 하나의 철학이자 가치관, 태도고 라임은 빡세게 써야하고 세상에 자신만의 철학을 외쳐야 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의 랩이라는 건 젊은 세대가 자신의 순간적인 기분이나 하나의 무드를 표출하는 도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얘기와도 맞닿아 있을까요?

    예, 동의합니다. 지금 소위 말하는 트렌드의 음악들을 보면 랩을 안하잖아요. 거의 오토튠을 걸고 노래하니까...선택인 것 같아요. 랩이라는 것도 한 래퍼가 할 수 있는 선택인거지, 에전처럼 래퍼가 하는 게 랩이라는 단순한 방법론 그 이상인 것 같거든요. 

    보컬 양식. 이분들이 택하는 다양한 보컬 폼(form) 중 하나가 되는거죠. 이 노래는 멜로디 없이 랩을 한 번 해보자, 옛날 랩스럽게 해봐야지 등의 생각을 다양하게 해볼 수 있거든요. 녹음한 보컬에 디스토션을 걸까, 리버브를 걸까 등의 이펙트를 고민하는 것까지도 이제는 랩의 일부에요. 예를 들어 트레비스 스캇(Travis Scott)의 음악에 리버브, 디스토션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전혀 다른 무언가거든요. 그것마저도 어떤 래퍼가 보여주는 한 세계관의 일부인 거죠. 

     

    B : 어떻게 보면 '해시태그' 문화,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의 등장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텍스트로 구구절절 표현하는 대신 사진 한 장, 해시태그로 분위기를 보여주는 정서. 저는 힙합의 변화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젊은 래퍼들이 보여주는 아웃풋과 문화를 보면 세대가 단절된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 래퍼들이 90년대나 2000년대 힙합음악을 계승하고 연결되어 있다기보다 뭔가 단절된 어린 세대들이 만들어낸 아예 새로운 무엇이 아닐까 하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힙합의 전통과는 무관하다고 느껴지고 그분들 머릿속에서도 그럴 것 같아요. 본인들이 투팍, 비기, 우탱, 나스를 듣고 랩을 하고 있거나 그것을 계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최근에 미국에서 그런 비슷한 류의 논란들도 있었잖아요? ('투팍은 지루하다'고 했던 릴야티 등) 그분들에겐 저희가 클래식이라 여겼던 시대의 음악들이 와닿지 않는거죠, 같은 힙합인데도. 

    분명히 그런 건 있다고 봅니다. 지금 나이가 있는 래퍼들이 그런 신세대 래퍼들을 힙합 취급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고, 세대간의 그런 격차가 힙합 안에서 처음으로 본격화 되는 시기라고 보고 있어요. 

    투팍(2pac)과 비기(Biggie)의 음악은 거의 모른다고 밝혀 논란을 낳았던 래퍼 릴 야티(Lil Yachty) 

    B : 데뷔한지 15년이 넘은 래퍼로서 요즘의 힙합 흐름을 봤을 때 어떻게 보면 힙합 형님으로서 준엄한 충고를 날릴 수도 있잖아요. 그건 힙합이 아니야, 힙합 지금 잘못 가고 있어 라던지. 하지만 그런 입장은 아니신거죠?

    저는 그렇지 않죠. 그렇지 않은 게 더 재미있거든요. 훨씬 더 재미있는 선택입니다. 아직 아들은 없지만, 만약 자녀가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면 그걸 꾸짖기 보다는 옆에서 같이 하는 아빠가 더 낫다고 보거든요. 

     

    B : 근데 균형을 잡아보자면 모든 변하는 것을 다 받아들인다면 결국 뿌리에서 멀어지잖아요. 그러면 도대체 어디까지 멀어질 거고 어디까지 힙합인거야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죠. 거기까지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어차피 모든 건 진화하는 거잖아요. 결국에는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겁니다. 공룡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 보면서 이 문화를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B : 그러면 변한 힙합의 대표적인 상징이 멈블랩이잖아요. 중얼거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류의 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좋아해요. 처음부터 좋아했어요. 대표적인 뮤지션이 퓨처(Future)가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팬이었던 것도 있어서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요. 근데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건 확실하죠. 미국에서도 힙합 팬들이 많이 떡밥으로 쓰고 있기도 하죠.

    각자의 판단 기준이 있겠지만 예전 얘기를 해보자면 어릴 때 제가 듣던 많은 언더그라운드 힙합들이 있었어요. 2001~3년도 쯤에 나왔던 것들이고 나중엔 퉁쳐서 재즈힙합이라고 불렀거든요. 대표적으로 사운드 프로바이더스(Sound Providers) 같은 팀이 있고요. 근데 사운드 프로바이더스보다 퓨처가 저한테는 훨씬 힙합이에요. 그 느낌이, 에너지가, 힙합 에너지에요. 사운드 프로바이더스도 물론 힙합 음악이지만 그 분들의 감정선이나 컨텐츠라고 해야 하나 그게 그렇게 힙합이 아니거든요 저한테는. 그냥 얼터너티브 랩? 같은 거죠.  

     

    B : 힙합에 대한 기준이 바뀌면서 가사에 대한 더콰이엇 님의 생각도 궁금한데요. 예를 들어 제가 가리온의 MC메타, 김경주 시인과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거든요. 시인이 쓴 텍스트를 슬랭과 랩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이제는 래퍼가 자기 가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는 것 아닐까? 그런 방식이 어떤 경우에 더 자연스럽고 훌륭한 아웃풋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런 방법론이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도 올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가 암암리에 있지만 래퍼가 자기 가사를 쓰지 않는 게 전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으니까요. 

    그쵸, 그걸 자랑하는 사람은 없죠.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힙합이 가야 하는 길이라고 여기긴 해요. 고스트라이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진 않아요. 근데 문제는 그 정도에요. 만약 앨범이 10곡인데 전곡이 다 남이 서준 가사라면 그거는 별로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몇 곡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죠. 예를 들어 드레이크가 몇년 전에 고스트라이터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 때 저는 충분히 이해했어요. '뭐 받을 수 있었지, 저렇게 바쁜 사람인데'. 그 때 고스트라이팅 의심을 받았던 부분이 훅이랑 앞에 8마디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앨범이 곡 수가 되게 많잖아요? 17트랙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전곡이 다 쿠엔틴 밀러가 쓴 거였다면 저도 실망을 했었겠죠. 

    만약 제가 고스트라이팅을 받는다면? 저도 받고 싶은 래퍼들 많아요. 일단은 지금 잘하는 사람들에게 받겠죠. 뭐 예를 들면 수퍼비나 쿠기라던지? 기본적으로 랩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사를 잘 쓰는 사람들이에요. 실력자들한테 받겠죠. (웃음)

     

    B : 이번 앨범은 두 개의 롱 트랙으로도 다시 발매를 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이제 애플뮤직으로도 음악을 많이 듣거든요. (애플뮤직의 경우) 트랙간에 연결이 잘되는데 가끔 멜론을 써서 멜론으로도 들어보니까 이게 끊기더라고요. 사이사이마다 1, 2초의 공백이 있어요. 

    이번 앨범은 곡들이 이어지는 앨범이라서 앨범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곡 사이가 끊기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잠깐 생각해보다가 고안해낸 방법이고요, 커넥티드 버전(Connected Version)이라고 해서 새로 냈죠. 저한테는 되게 중요했어요. 저는 요 앨범이 믹스테입 같은 그런 느낌, 디제이 믹스 같은 느낌으로 앨범이 계속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쭉 이어서 들을 수 있는 glow forever(connected version)

    B : 드레이크도 사실 자기 앨범들을 두고 플레이리스트라고 하죠. 제가 칼럼을 쓴게 있는데, 외국의 뮤직 에디터들은 앞으로 플레이리스트가 앨범을 대체할거라는 말까지도 하거든요. '스포티파이의 유저 경험 등을 봤을 때 이젠 앨범 대신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메이킹이 일상화되고 앨범을 대체할 전망이다' 같은 내용인거죠. 의도하지는 않으셨겠지만 동시대적으로 그런 맥락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원래 제 취미로 하는 일이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서 믹스를 만드는 거였거든요. 디제이가 하듯이 하는 거죠. 디제이는 아니니까, 턴테이블을 사용하지 않고 믹스를 많이 하는 게 제가 앨범을 만들 때마다 항상 해보고 싶던 작업이었어요. 수록곡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B : 요번 앨범에 제네 더 질라(Zene the Zilla)와 폴 블랑코(Paul Blanco)가 참여했는데요, 각자 두 곡씩 참여했는데 그 트랙들이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그건 의도한 바는 아니고요. 예를 들어 폴 블랑코 곡은 그 두 개가 세트였어요. 'Go yard'란 곡에 피치(pitch)를 맞춘 버전이 'Money can't'였는데 이게 이어져 나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폴 블랑코가 그 두 곡 다 훅을 너무 잘해줬어요. 사실 제가 폴에게 이메일로 곡을 보낼 때 제가 의도했던 건 앞에 'Go yard'만 훅을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보낸 건데 제가 깜빡 잊고 설명을 안한거에요. 뒤에 거는 안하셔도 된다고 설명을 안한거죠. 

    이틀 뒤에 녹음한 게 왔는데 둘 다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Money can't'를 듣고 일단 감동을 한번 받았죠. 제가 부탁했던건 아니었지만 완성이 되서 왔으니까 저는 기뻤습니다. (웃음) 

     

    B :  얘기 나온김에 이번 앨범에 참여한 신인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네 더 질라(Zene the Zilla) : 이 친구는 작년부터 유심히 보던 친구에요. 제가 팬의 관점으로 이 친구의 작업물들을 보면서 정말 음악이 맑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이 친구가 좀 더 성장하면 작업을 같이 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이번에 같이 하게 된거고. 제가 항상 응원하는 친구에요. 

    폴 블랑코(Paul Blanco) : 이 분은 창모의 오랜 친구에요. 오랜 동료이기도 하고. 저도 <닿는 순간> 앨범에서 이 분을 처음 접했고 그 때 인상 깊게 들었어요.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번 앨범 작업 중에 'Go yard'라는 곡이 훅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었어요. 이 훅을 해줄 수 있는 적임자가 없나 생각하다가 제가 창모에게 부탁해서 인연이 생긴거죠. 

    릴러말즈(Leellamarz) : 이 친구는 주변 반응을 보니까 '쇼미더머니 5'로 유명하더라고요. 거기서 수퍼비와 1:1을 했던 친구로 유명한데. 문제는 거기서 본인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해봤대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였던거죠 이 친구한테. 추후에 이 친구는 제 노래 중 '미션'이라는 노래에서 바이올린 세션을 부탁하면서 알게 된 친구에요. 랩도 워낙 잘하고 그러다 지금은 노래 위주로 하는데 '남친' 이라는 곡은 본인 혼자 데모 작업했던 곡이에요. 유튜브에서 타입비트를 다운 받고 혼자 녹음한 곡이었는데, 그걸 저한테 들려줬어요. 저는 그걸 듣고 이걸 내 앨범에 넣어보자고 했었고. 

    브래디스트릿(BRADYSTREET) : 제가 앨범 작업하는 중 어느 날 새벽 2시 쯤 창모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클럽에서 어떤 친구를 만났다면서 이 음악 좀 들어보라고 하면서 저한테 사운드클라우드 링크를 보내더라구요. 들어보니 음악이 굉장히 좋았고, 순간적으로 내 앨범에 참여하면 딱이겠다 싶어서 만나서 작업하고 그랬죠. 

    Lil Quiett with the future

    B : 그렇다면 이번 앨범은 의도적으로 신인들, 혹은 커리어가 얼마 되지 않은 분들과 작업하신 건가요?

    그런 걸 수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제 의도는 제가 많이 들어보지 못했고, 사람들이 많이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여기 나오는 목소리들도 생소했으면 했고, 실력은 당연한거고요. 지금은 한국힙합 씬에 굉장히 잘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 의도도 있었어요.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제 머리 속에서 나오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이 친구들의 아이디어, 재능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죠. 이번 앨범은 사실 제 솔로 앨범이라기보다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B :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새로운 사운드와 참여진이 많은 앨범인데, 혹시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영향 받은 미국 래퍼의 앨범이 있을까요?

    Playboy Carti 의 이 앨범 <Playboy Carti>를 꼽을게요. 저는 이 앨범을 지금 시대의 일매틱(illmatic) 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대단한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요즘 음악을 하는데 이 앨범의 영향을 피해갈 수 있을까 싶어요. 너무 사랑 받은 앨범이라 좀 뻔한 초이스 같긴 했지만 어쨌든 사실이니까. 

    <glow forever> 앨범이 영향 받은 측면은 분위기인 것 같아요. 비트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 랩은 다르죠. 이 사람처럼 가사를 쓸 수가 없으니까. 비트가 주는 몽환적인 느낌이랄까요. 

    그가 꼽은 지금 시대의 illmatic, Playboi Carti - Playboi Carti

    B : 일리네어 레코즈 설립 이후에 돈에 대한 랩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세게 한 래퍼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처음 시도하신 뒤 몇 년이 또 지났는데, 돌아보니까 한국힙합이 어떻게 된 것 같나요?

    네 잘 왔죠. 저는 사실 뿌듯해요. 지금 많은 한국 래퍼들이 돈에 대해서 혹은 차와 여타 힙합적인 가사들을 거리낌 없이, 거침없이 뱉고 있잖아요? 아무 리스크 없이. 그런 초석을 저희 일리네어가 다져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뿌듯합니다. 

     

    B : 파이오니어는 그만큼 욕도 많이 먹고 부당한 오해와 누명도 많이 쓰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억울하지 않으세요?

    억울? 그런 생각 별로 안했던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생각보다 한국 사람들이 이걸 즐겨주는 시대가 빨리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이 맘 때쯤 풀릴까 말까 했어야 됐는데 생각보다 훨씬 앞당겨졌다고 생각해요. 

     

    B : 그게 일리네어 자체의 업적도 있지만 쇼미더머니 덕분도 있을까요?

    아 예, 그럼요.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순간이 저와 도끼가 '쇼미더머니 3'에 나온 이후부터 사람들이 이런 가사의 랩을 하나의 오락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거든요. 정말 그 전후가 완전히 달랐어요. <11 : 11> 이라는 앨범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앨범이었다가 쇼미더머니가 끝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앨범으로 탈바꿈하는 걸 목격했으니까요. 아무래도 쇼미더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B : 더콰이엇 답게 그런 변화들을 크게 신경쓰진 않으셨죠?

    저는 그냥 좋았어요. '연결고리'라는 노래를 주구장창 부르고 다녔는데요, 처음 그 곡이 인기를 얻을 때 대학행사를 다니는데 정말 착하게 생긴 대학생 새내기 분들이 맨앞줄에서 '연결고리'의 시덥잖은 가사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나네요. 

     

    B : 어찌보면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일수도 있을 것 같고,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즐길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까 '한국힙합이 잘 온 것 같다'고 하셨는데 잘 왔다라는 의미가 단순히 돈에 대해서 맘 편하게 가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만은 아니시잖아요?

    포괄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저희의 표현 영역이 확장됐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제는 많은 가사들이 가능해졌어요. 일리네어 이전을 생각해보면 저희가 다루기 어려운 어휘, 소재가 많았거든요. 특히 이런 쪽이죠. 돈, 여자, 성공, 차 자랑, 시계 자랑, 보석 자랑 같은 류. 이거는 힙합 래퍼인데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듯한 요소였거든요. 그런 것들이 가능해졌다는 게 많은 면에서 저희의 표현이 확장된거겠죠.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는 주로 돈 위주로 했으니까. 

     

    B : 제가 볼 때 한국인들은 돈을 좋아해요. 돈이라는 건 사랑만큼, 아니 사랑 이상으로 많이 불러져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돈은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따라다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목덜미를 쥐고 있는 것에서 해방되려고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누구나 다 돈에 대해 고민하고 돈으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돈에 대해 얘기하면 욕을 해요. 그런 도덕주의가 굉장히 아이러니했고, 그게 이제 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 강박이 있죠. 돈은 노래 소재여서는 안된다는 한국 사람들의 맹신이 있었고요. 예를 들면 드라마에서 돈이 주요한 소재로 쓰인다던지, 돈 때문에 주인공이 허덕인다던지 하는 것은 드라마나 한국 영화 등 많은 매체에 등장할 수 있어요. 유독 사람들이 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박이 되게 크다고 봐요. 음악에는 하면 안되는게 너무 많거든요. 음악 가사 심의가 TV에 나오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유난히 까다롭기도 하고요.  

     

    B : '쇼미더머니 777'을 보면 많은 래퍼들이 더콰이엇님을 향해 리스펙트를 표해요. 그 때 이 분들 어디 있다 나오신건지 궁금해하셨었는데 그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그 때 저는 기쁘다기보다 좀 의아했었어요 솔직히. 정말로 제가 그 때 말한 그대로였어요. 왜냐면 저는 '쇼미더머니'를 세 번째 해보는 거잖아요. '쇼미 5' 할 때도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거든요. 2년 후에 와보니까 많은 래퍼분들이 저를 언급해주시는 걸 보면서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했던거죠. 그냥 방에서 음악만 했지 별로 한 게 없는데. 

    뭔가에 재평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저나 일리네어에 대해서요. 저희가 한창 때 지노랑 도끼랑 바쁘게 다닐 때는 물론 팬 분들도 많았지만 저희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사실 요즘에 그 분들 그립거든요. 다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어. (B : 헤이터들이 다 없어졌다?) 네, 지금은 좋은 말만 해주시니까 오히려 부담스러워요. 칭찬만 듣는 것도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뭐, 감사한 일이죠.   

     

    B : 한국 힙합에 책임감을 느끼세요?

    사실 저는 책임감 없거든요. 책임지지 않을 거는 시작을 안해요. 제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으로 맨날 봐요 고양이 영상들을. 근데 고양이를 안 키우는 이유가 그겁니다.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한국 힙합도 마찬가지에요. 저한테 고양이 같은 그런 겁니다. 제가 어떻게 이걸 책임진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어쨌든 저에게 이런 영향력이 주어졌으니 뭔가 보탬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있죠.  

     

    B : 그래서 새 앨범에 신인들과 많이 작업도 하시고 '랩하우스'라는 공연 브랜드도 만드시고 하는 거죠?

    뭐 그런 걸수도 있는데 그거를 꼭 제가 뭐 캐리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랩하우스'도 제가 관객 입장에서 보고만 있어도 재밌을 것 같은 거에요. 오랜만에 조그만 공연장에서 인터넷이 아니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아니면 보기 힘든 래퍼들을 모셔놓고 공연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거죠.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랩하우스'는 제가 새로 런칭한 힙합 공연 브랜드에요. 제 아이디어로 시작했고 배경이라면 지금 (당시 2018년 가을) 많은 페스티벌이 존재하거든요. 그런 곳에서 래퍼들을 많이 섭외하죠. 그런데 거기 나오는 래퍼들은 다 TV에 나왔던 사람들이 대다수에요. TV에 나와야만 섭외가 되고, TV에 나와야만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도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TV에 나오지 않았거나 나올 마음이 없는 래퍼들, 음악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지금 무대가 없기 때문에 팬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수 없는 래퍼들, 혹은 베테랑이고 우리가 이름은 잘 알고 있는 래퍼들이지만 공연을 볼 수 없는 래퍼들도 되게 많아졌거든요. 

    대표적으로 화나, 화나는 이 씬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그 동안 공연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소규모 공연이 다 없어지고 페스티벌 밖에 없단 말이에요. 페스티벌에서는 화나를 부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화나는 공연의 기회가 많이 없어진 거고, 화나의 팬들 역시 화나를 볼 기회가 많이 없어진 거죠. 이런 뮤지션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제 우리가 무대로 올려야 한다 라는 생각이에요. 그 공연을 보는 게 저한테도 자극이 될 것 같았고요. 

    예를 들어 자메즈(Ja'Mezz) 같은 경우에도 안지 오래됐고 사적으로도 몇 번 봤지만 이 친구가 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쇼미더머니 3' 촬영할 때 잠깐 본거 말고는 없었어요. 이미 앨범도 내고 나름 인정받는 뮤지션인데 이 친구가 공연하는 모습은 어떨까? 물론 유튜브에 치면 나오겠지만 직접 보면 좋잖아요. 이런 친구들이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자.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된 공연입니다. 

     

    B : 새로 하고 계신 일들이 예전에는 덜 흥미로웠지만 지금은 흥미로워진 일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를 느끼세요?

    그런 것도 분명히 있을 거에요. 왜냐하면 저는 이제 활동을 오래 해오면서 제가 열심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이 얻었어요. 물론 계속 열심히 해서 더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저한테 주는 큰 의미는 이제 없습니다. 

    결국에 제가 하고 싶은 건 재미있게 음악을 하는 일이에요. 제가 제 음악을 할 때 재미있어야 되고 이 재미를 이제 나눠야 하고요. 사람이 혼자 재미있을 순 없거든요. 같이 재미있어야되요. 그 재미를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건데 그런 제 내면의 변화도 있고 다른 측면에서는 씬이 변했죠. 

    제가 랩하우스라는 이 공연을 2011, 12년도에 했다면 별로 주목 받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지난 5~6년간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쇼미더머니가 저희의 행보와 한국힙합씬의 구조를 만들어주게 됐어요. 사실 저희는 이제 그렇게 많이 할 필요 없어요. 쇼미더머니가 알아서 해주거든요. 그래서 다들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겁니다. 쇼미더머니 나가서 TV에만 나오면 그때부턴 자동이에요. 알아서 섭외 전화가 올거고 그 행사를 뛰고 돈을 벌고 적당한 타이밍에 음악과 뮤비를 내고.

    사실 원래 저희는 그것보다 훨씬 더 독립적인 존재들이죠. 원래대로라면.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이고 저희의 의지, 저희와 같이 음악을 하는 동료들의 아이디어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겠죠. 근데 이제 쇼미더머니가 이 게임의 시스템을 바꿔준건데. 저는 이게 게임을 망쳤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미 저희도 그렇고 전체적인 힙합씬이 얻은 게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결국에는 지난 몇 년 간의 방송으로 인한 시스템 밖에는 존재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준비를 해야 하는거죠. 저희의 집을 다시 지어야 되는, 저희의 자생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그런 시점이 저는 이미 왔다고 생각해요. 

     

    B : 공감해요, 저는 한국 힙합의 역사가 비포 쇼미더머니-애프터 쇼미더머니로 갈린다고 생각하거든요. (Q : 그럼요 이만큼 파급이 컸던 사건은 없죠) 사실 지난 몇 년간, 2012년부터 18년까지의 시대가 불가항력적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더콰이엇님 같은 일부 예외를 제하면 많은 래퍼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쇼미더머니가 등장해서 신호를 준거죠. 저기에 나가면 내 재능으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어. 이걸 확인 시켜 줬다고 생각하고요. 래퍼들의 신념을 떠나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동의해요. 쇼미더머니가 힙합뮤지션에게 옳으냐 그르냐는 무의미한 논쟁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팬들끼리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등의 논쟁이야 괜찮지만 결국엔 래퍼들도 희망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사실 가장 두려운 상황은 쇼미더머니가 없어지면서 래퍼들의 희망도 없어질까? 가 가장 두려운 이슈인 것 같아요. 장차 오게 될.  

     

    B : 쇼미더머니 이후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일단은 쇼미더머니가 이번 시즌으로 끝날까요? (필자 주 : 2020년 9월 기준 현재 쇼미더머니는 시즌 9의 방영을 앞둔 상태입니다)

    그건 모르죠. 이게 많은 분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얘기가 쇼미더머니 이제 곧 끝날 거 같다, 이제 재미 없어졌어, 나올 사람 다 나왔어 잖아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일반 시청자 분들까지 하는 얘기라면 어떤 신호는 신호라는 겁니다. 

     

    B : 그럼 재미 반, 의미 반으로 시뮬레이션 해본다면 쇼미더머니가 끝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기본적으로 힙합은 계속 인기 장르일 거에요. 왜냐면 쇼미더머니 이전에도 힙합은 인기가 많았거든요. 2012년도 이전의 일리네어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일리네어는 쇼미더머니 나가기 전에도 인기 많았고 돈도 잘 벌었어요. 그 이전인 소울 컴퍼니 시절에도 힙합은 인기 많았어요. 젊은이들은 힙합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도 이미. 힙합은 항상 인기 장르였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가 굉장한 기름을 부어준 거죠. 어쨌든 쇼미가 없어도 힙합은 계속 인기 장르일 겁니다. 젊은이들에게 힙합을 대체할 만한 문화는 없어요. 

     

    B : 왜 힙합이 젊은이들을 뒤흔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이게 봤을 때 멋있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서 저는 자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가 주는 가사적인 컨텐츠, 혹은 래퍼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캐릭터, 이 음악이 주고 있는 리듬. 이런 게 자극적이에요 힙합은. 콜라 같은 겁니다. 

    저는 항상 이 비유를 쓰는데요, 우리가 물을 시원하게 잘 마시고 있다가 어느 날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오렌지 주스 위주로 마실 거에요. 물 생각이 잘 안 날 겁니다. 그런데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다가 어느 날 콜라를 마시면 주스 생각이 잘 안 날 거에요. 저는 힙합이 콜라라고 생각합니다. 힙합이 주는 어떤 말초적인, 원초적인 자극이 있죠. 

    전세계가 힙합에 많이 동요하고 있잖아요. 제가 듣기로는 유럽에서도 새삼 힙합 붐이라고 하니 인기는 계속 많을 것 같아요. 심지어 지금은 부모님들이 자식이 래퍼가 된다고 하면 말리지 않습니다. 더 많은 래퍼가 지금도 탄생하고 있어요. 근데 그 분들이 그만한 기회를 가질 수는 없다는 거죠. 기회가 줄어들 겁니다. 사실 저희 뮤지션들이나 팬들이 이 문제를 생각해보긴 해야 해요. 

     

    B : 가사 중에 '이게 다 운이라면 what a perfect timin'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운과 노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행운이라는 건 존재해요. 그 중 유난히 운이 좋은 사람도 있어요. 저는 운이 좋은 편에 항상 속했던 것 같은데 결국에는 그렇게 찾아온 행운이나 성과를 유지하는 게 문제에요. 그 유지하는 게 노력입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다 운이야'로 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면 많이 봐왔으니까요. 이게 그렇게 쉽게 되진 않거든요. 제 음악인생을 비추어 보았을 때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성공했다 치고 사람들이 저처럼 되고 싶어 하잖아요. 되고 싶어 하겠죠?

    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여기에 들여야 하는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해요. 너무 많은 걸 겪어야 하고, 좋지 않은 경험도 되게 많고요. 저는 그런 걸 다 감수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고요. 그걸 감수하기 싫었던 분들은 중도에 포기하거나 좀 더 미적지근한 상태에 도달한 거에요. 공짜는 없습니다 결국에는. 저는 추천하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형처럼 되고 싶다거나, 형처럼 살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 저처럼 사는 건 좋은데 이렇게 살려면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들이 있거든요. 그게 만약 제가 겪은 거라면 저는 하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멋모르고 했으니까 여기까지 어떻게든 왔는데 이건 쉽지 않습니다. 

     

    B : 연결되는 질문일수도 있는데 '여름밤' 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서 제가 느낀 게 항상 뭔가 앞서가야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이 더콰이엇의 삶이라고 봤거든요. 앞서가는 동시에 나를 지킬 수 있는 노하우랄게 있을까요?

    그게 진짜 모순적인데 있는지 모르겠어요. 노하우랄 것이... 그걸 제가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고민 끝에, 많은 성찰 끝에 이루어 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번 앨범을 내고 특이하다고 느꼈던 반응은 오랜만에 올드 팬들이 굉장히 극찬 해주는 앨범이었거든요. 오늘도 계속 '새로운 음악, 새로운 스타일' 이런 맥락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올드팬들은 '소울컴퍼니 시절 더콰이엇이 돌아온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해주고 계세요. 그런 미묘한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럴 리가 없거든요. (전원 웃음)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있나 봅니다. 

     

    B : 슬슬 인터뷰의 마무리가 다가오고 있는데, 더콰이엇은 쉬지 않는 걸로 유명해요. 다른 뮤지션보다도 부지런하다, 허슬하다 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계시는데 예술가에게 성실함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이 쉽니다. 그 와중에도 잘 쉬고 있어요. 물론 제가 바쁠 땐 엄청 바쁜 사람이지만 쉴 때는 진짜 아무것도 안해요 저는. 성실함... 어려운 질문이네요. 근데 뭐 다작이 답도 아니고 각자 스타일에 맞는 그 속도감이 있겠죠?

    저 같은 경우네는 강박적으로 정규앨범을 내왔어요. 그게 어느덧 9장에 달했는데... 저는 그게 제 개인적인 목표인 거에요. 그걸 모두가 이래야 한다, 본받아야 한다 라고 하고 싶진 않고 그래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어요. 

     

    B : 그럼 이렇게 질문 드릴게요. 어떤 래퍼가 20년 만에 앨범을 냈는데 힙합 명반입니다. 다른 래퍼는 1년 마다 한장씩 내는데 구리진 않고 괜찮은 정도의 앨범들이에요. 누가 예술가로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일단 직업 뮤지션이라는 관점에서 말씀 드릴게요. 이건 팬들마다 또 입장이 다를 수 있는 사안이거든요. 제 관점에서 좋은 음악은 제 때 나오는 음악입니다. 

     

    B : 그렇다면 앨범 중에서 이건 좀 성에 안차거나 음악이 싫어졌는데 내신 작품이 있을까요?

    있죠. <Millionaire Poetry> 같은 경우에는 제가 쉬면서 낸 앨범이에요. 잘 쉬고 있다가 올해도 앨범을 한 장 내긴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낸거고 당시에 비트가 꽤 모였었어요. 주로 프리마 비스타가 만든 비트들인데 이걸 지금 앨범으로 안내면 너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사실 그때는 제가 일을 하고 싶은 시기는 아니었는데 어찌어찌 해서 냈죠. 이후에 뮤직비디오 같은 다른 활동은 안했어요. 

     

    B : 방금 더콰이엇 님이 말해주신 이런 상황과 맥락을 대부분은 모른 채 이 앨범을 평가할텐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평가요? 저는 음악은 공공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은 공원 위의 벤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벤치, 제가 설치한 벤치일 수는 있는데 거기에 앉고 추억을 만드는 건 사람들이잖아요. 음악도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게 나올 때까지야 제 음악이지 나오고 나면 그 이후의 일들은 사람들 몫이잖아요. 그 중에 평론가도 있는 거고요. 

     

    B : 제가 정신과전문의와 쓰고 있는 책이 '힙합과 정신 건강'에 관한 주제에요. 힙합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저는 좋다고 봐요. 저는 여기서 분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래퍼들이 그 분출을 세부적으로 잘하는 편이에요. 가사도 디테일하고 그 분출하는 방식이 좀 더 다양할거라고 저는 보거든요. 그런 면에서 랩을 하는 당사자도 이걸 하면서 많이 힐링이 되요. 모든 래퍼들이 경험을 했을 겁니다. 가사를 쓰면서 본인이 치유되는 그런 과정을. 

    그리고 이걸 듣는 분들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보거든요. 자기 얘기처럼 공감을 하고 자기가 겪고 있는 어떤 아픔을 랩으로서 달래고. 꼭 그게 아픔이 아니어도 이 가사가 주는 어떤 해방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우리가 액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어떤 희열이 있듯이 저희의 돈 자랑을 들으면서 느끼시는 희열이 있을 거에요. 놀이터 같은 거죠. 

     

    B : 예전에 제 책에 써주신 서문 중에 '힙합의 힘, 반드시 무언가 크게 바꿔놓는 힘'에 대해 언급해주신 적이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긍정의 에너지죠. 힙합은 되게 에너제틱한 장르잖아요. 이게 주는 리듬이 있고, 래퍼들이 주장하는 본인의 멋짐과 나는 아무 문제 없어 라는 태도, 이런 게 주는 어떤 자기 암시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힙합을 듣지도, 하지도 않고, 제이지나 나스 같은, 제가 어릴 때 좋은 음악을 만드셨던 그분들의 음악을 모르고 컸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 같거든요. 이런 음악들에서 얻는 것들, 그게 꼭 말과 메시지가 아니어도 그 에너지가 컸다고 봅니다. 

     

    B : 수고 많으셨습니다.

    Interviewer : 김봉현 (편집 : 안승배 / 사진 : 백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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