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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해의 걸그룹 리뷰: 니쥬(NIZIU)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1. 2. 19. 15:29
왜 일본은 안 되고, 한국은 되는가? 일본의 주간지 '프레지던트'의 기사 제목입니다. 10대 일본인 멤버 9명으로 구성된 걸그룹 '니쥬(Niziu)' 때문입니다. 이 걸그룹은 12월 데뷔 예정인데요, 데뷔하기 전부터 스트리밍부터 오리콘 차트까지, 일본의 온갖 기록을 다 경신했습니다. 니쥬는 JYP가 제작한 걸그룹입니다. 박진영이 직접 <케이팝 스타>처럼 1만 명이 넘는 응모자 중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선발했지요. 여기에 JYP의 제작 노하우가 들어갑니다. 의상, 메이크업, 뮤직비디오, 안무, 작곡 등 모든 게 한국식입니다. 일본인으로만 만들어진 케이팝 걸그룹이 등장한 셈입니다.
니쥬의 성공에는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의 성공이 가장 컸습니다. 프로듀서 박진영이 직접 출연했는데요. 한국에서는 익숙했지만, 일본에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충고하고, 아이돌에게 고차원의 퍼포먼스를 요구하는 오디션은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코로나로 방송 제작이 어려워진 운까지 겹쳐 '니지 프로젝트'는 크게 성공했고, 이는 그대로 니쥬의 인기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심사위원 박진영까지 '모찌고리(떡 먹는 고릴라)'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지요.
제가 니지 프로젝트를 보며 느낀 건 우선 한국의 제작 능력이었습니다. 일본인 멤버들을 일본어로 트레이닝함에도 한국 걸그룹의 느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외모, 의상, 음악은 물론 멤버들이 단순히 귀여움만 어필하는 게 아니라,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려 노력하는 모습까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걸그룹의 모습이었지요.
더욱 놀랐던 건 멤버들입니다. 니쥬에 나오는 아이돌 지망생은 제가 알던 일본인 아이돌 지망생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그에 못지 않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합니다. 일본의 전설적인 힙합 뮤지션 지브라의 딸인 요코이 리마는 직접 영어로 랩을 작사하는 등, 진지하게 흑인음악을 추구합니다. 일본 아이돌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케이팝 아이돌에만 적합합니다. 케이팝이 이제는 단순히 인기를 얻는 걸 넘어 현지에서도 '그냥 가수가 아닌 케이팝 아이돌을 지망하는' 미래 세대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니쥬는 우리에게 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디까지가 케이팝일까? 한국인이 해야 케이팝인가? 아니면 한국인이 만들어야 케이팝인가? 케이팝 느낌만 나면 케이팝인가? 니쥬는 한 가지는 증명했습니다. 케이팝 시스템을 가지고, 베테랑 케이팝 프로듀서가 진지하게 제작하면, 일본에서도 세계적인 아이돌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말이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미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이 나올 수 있을까요? 혹은 케이팝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외국인이 등장할까요?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케이팝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즐기는 것으로 일단은 충분할 겁니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 '케이팝'이라는 문화로 우리가 공감할 수 있게 된 니쥬처럼 말이죠.
*HIM 매거진 2020년 12월호에 게재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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