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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픽하이 특집] 정규앨범 통합 리뷰 (上)
    Review/Albums 2021. 2. 1. 20:23

    I paved the way
    For everyone that is pavin' the way
    말이 많네
    Ain't no one givin' a fxxk what you say
    Moment of silence
    'Rosario' 중

    에픽하이는 항상 논란의 중심이었다. 이게 힙합이냐? 지나치게 타협한 거 아니야? 배신자 아니야? 화장하고 예능 나오는 게 힙합이야? 이런 종류의 논란들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뒤돌아보면 그렇게까지 지키려 했던 힙합의 순수함이란 대체 무엇일까 싶다. 허망함마저 느껴진다. 에픽하이의 데뷔 이후 본토에서 등장한 드레이크가 멜랑콜리한 사운드로 힙합을 정복했다. 빡센 힙합 믹스테이프를 내면서 달콤한 알앤비를 하고. 틱톡 챌린지의 제왕이 됐다. 급기야 자신이 가사를 직접 써야 한다는, 어쩌면 힙합의 마지막 룰까지 부숴버렸다. 이 모든 룰을 부수며 그는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모든 힙합의 룰이 부숴진 지금, 다시 회고해보는 에픽하이는 '선지자'처럼 보인다. 그들을 힙합답지 못하다며 비판했던 목소리는 지금 힙합의 모습에 비춰보면 공허하기 그지없다. 래퍼가 블록버스터 영화배우 등 다른 엔터테이너 직업군이 된다 (Common). 댄스 음악을 시도한다 (Drake). 자기 이름을 걸고 토크쇼를 만든다 (Snoop Dogg). 틱톡 챌린지에서 곡을 홍보한다 (Roddy Ricch). 쇼미더머니를 연상하게 하는 힙합 오디션을 제작한다 (넷플릭스 'Rhythm + Flow'). 힙합과 록을 섞은 음악으로 정상의 자리에 선다 (Juice Wrld). 지금 힙합의 모습은 '이런 건 힙합이 아니야'라는 시선과 싸우며 에픽하이가 17년 전부터 그렸던 청사진 그대로 발전했다.

    케이팝은 어떤가? 힙합, 알앤비을 중심으로 온갖 장르를 섞는 방식. 'Lesson' 시리즈 등 기존 곡, 앨범마다 이어지는 떡밥과 서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세계관. 음악을 넘어 다양한 형식과 미디어로 뻗어나가는 홍보 활동 등. 에픽하이가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음악 및 홍보 활동 방식은 그대로 케이팝 아이돌의 전략에 녹아들었다. 'Fly'를 통해 음악활동을 시작한 RM의 그룹, 방탄소년단이 에픽하이의 후계자 중 하나로 보이는 이유다.

    17년째 새 길을 내고 있는 에픽하이. 지금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그들. 밟기만 하면 길이 됐던 그들의 17년 음악 커리어를 정리했다. 17년을 지나 지금까지 음원차트의 강자, 힙합 커뮤니티의 뜨거운 감자 노릇을 하고 있는 그들을 시작점부터 돌아봤다. 함께 살펴보다 보면 당신도 우리처럼 힙합과 케이팝, 그리고 음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10집 Epik High Is Here 上 (2021)

    Now I see the question to all answers
    Will only bring me to my knees
    And back to zero
    'Lesson Zero ' 중

    '지금까지 앨범 중 역대 최고'라는 자신감과 달리 얼핏 들으면 기존 앨범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잔잔한 트랙과 힙합 트랙의 조합. '내 얘기 같아'라는 가요 트랙의 배치. 김사월, 지소울 등 유독 보컬 피처링이 돋보이는 참여진 등. 가사적으로도 'Lesson' 시리즈가 나오고 아픔에 대해 노래하는 등 우리가 아는 에픽하이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필자는 다르다 생각한다. 10집은 에픽하이 후반기 커리어인 8, 9집을 이어가면서도 훨씬 유기적으로 발전했다. 우선 사운드가 그렇다. 힙합 - 팝 - 힙합 - 팝 이런 식으로 다른 장르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임에도 트랙들이 전혀 부딪치지 않는다. 한 곡처럼 들린다. 에픽하이의 두 자아가 드디어 완벽하게 융합된 것이다.

    가사적으로도 '이 시대의 상처'라는 단 하나의 주제만을 다룬다. 그래서 더욱 컨셉앨범같이 들린다. 발라드 트랙으로 보이는 '내 얘기 같아' 또한 코로나 시대 마음의 상처라는 주제를 갖고 들으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Rosario'는 케이팝이 떠오를 정도로 트렌드와 발맞추어가는 사운드지만 그 주제는 결국 자신의 상처다. '수상소감', '정당방위' 등 힙합 트랙 또한 힙합 스웩보다는 상처에 집중한다. 'Leica'는 상처를 다루는 인디 팝 트랙임에도 그 어떤 힙합 트랙보다도 가사에 힙합 정서가 가득하다. 김사월에게서 '지랄'이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이처럼 다양한 장치를 통해 앨범 전체가 한 곡처럼 들리는데도 장르적으로 겹치지 않는다. 팝 트랙만 봐도 그렇다. 라틴트랩인 'Rosario', 드럼이 없는 실내악에 가까운 OST 사운드의 '내 얘기 같아', 재지한 'LEICA', 전자음악을 담은 'True Crime', 알앤비 트랙인 'End Of The World'까지. 다른 장르들을 가져왔음에도 한 곡처럼 이어지게 주제의식과 사운드를 단일화시킨 '감독'으로써 에픽하이의 구성력이 돋보인다. 

    어쩌면 에픽하이는 언제나 10집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온 세상의 음악을 빨아들여서 자기화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그 이야기를 통해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에 에픽하이의 정서를 공감하는 팬과 공감한다.

    과거 에픽하이는 두 가지 음악 자아가 부딛치는 팀이었다. 심지어 4집, 6집처럼 두 자아를 나눠버리기도 했다. 17년과 10개의 앨범의 시행착오. 그리고 시대상의 변화. (자신의 후배(?)인 DRAKE가 멜랑콜리로 힙합을 평정하고, 케이팝이 전 세계가 소비하는 문화가 된 2021년) 이 모든 게 합쳐진 덕분은 아니였을까. 누군가에게는 '또 뻔한' 에픽하이지만. 사실 에픽하이는 이제야 '온전히 자기 자신다운 에픽하이'가 된 걸지도 모른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1집 Map Of The Human Soul (2003)

    epik high - tablo and mithra
    싱겁고 어두운 힙합의 소금과 빛이라
    'Go!' 중

    보통 특정 아티스트의 1집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만드는 작품이라 아티스트와 팬의 애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에픽하이의 1집은 아티스트에게 미움받는 데뷔작이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외부인 주도였다는 점. 랩의 화자로써 '타블로'가 2집 이후 우리가 아는 타블로와는 캐릭터가 사뭇 다르다는 점. 아직 타블로의 한글 실력이 성장이 필요한 단계였다는 점. 이후 에픽하이의 강점이 되는 '대중을 저격하는 유행가적인 안배'가 아예 없다는 점.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에픽하이의 이후 음악과는 성적이든 성향이든 그 궤를 달리한다는 점 등등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돌이 트랩음악을 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된 요즘. 에픽하이 1집은 오히려 신선하다. 진정한 먹통 힙합 느낌이랄까. Common의 전성기 음악을 연상시키는 재지한 붐뱁 사운드. 진리와 정의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캐릭터가 전달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밝은 광도의 랩. 주제 또한 10년 뒤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 유서. 세상의 부조리를 신에게 물음 등등. 오히려 너무나도 과거에 유행했던 어떤 종류의 컨셔스 힙합의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 지금은 되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랩 스킬이나 테크닉의 미숙함 또한 되려 힙합이 돌고 돌아 캐릭터 싸움이 된 지금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유행은 돌고 돈다 했던가. 먹통 힙합이 오히려 멜로딕한 트랩보다 fresh 하게 느껴지는 요즘. 에픽하이 1집은 은근히 신선한 청각적 쾌감을 준다. 에픽하이 1집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한번 들어보시길. '그때는 어려웠다면, 지금은 대중적인' 컨셔스 힙합의 진한 장맛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2집 High Society (2004)

    학벌로 계산적으로 밀어붙힌 PR 수단으로 
    대중의 눈에 선망과 반감의 대상으로

    내 존재 내 손에서 벗어나 왜곡돼 
    가요계 변두리 상아탑에 구속돼

    대중과 매니아 줄다리기 밧줄이 내 목을 매
    muthafuckin' haterz 나를 죽여도 부족해
    '뒷담화' 중

    이 앨범은 큰 틀에서는 ‘High Society’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상류층들의 부패와 비리를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신사라는 컨셉으로 세 번의 스킷을 통해 상류층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그리고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비판하기도 하며(Lesson 2 (Sunset), Lady (High Society)), 서울을 게토로 비유하며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슬픔을 그려내기도 한다(My Ghetto). 누군가가 힙합이 현실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장르라 생각한다면 위의 곡들이 자연스레 연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앨범에 대해 대중들이 기억하는 곡이라면 역시 가볍고 경쾌한 곡 평화의 날이나, 싸이월드 시절 서정적인 랩을 대표했던 ‘혼자라도’일 것이다. 그것이 힙합이냐 아니냐의 논의가 무색하게도 평화의 날은 힙합이 태생했던 파티 음악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혼자라도는 사랑에 실패한 친구에게 통화를 건네는 스토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며 my bro, my hood 감성을 느끼게 한다. 물론 그 깊이는 실제 게토에서 보여준 우정 곡들보다 깊이가 얇지만은 앞서 수록된 ‘11월1일’과 ‘뚜뚜루는 그 부족한 깊이를 조금 더 채워 넣는다.

    그래서 이 앨범은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태도와 음악을 보여준 앨범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 날 선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이런 음악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가사를 통해 MC로서 극단이 아닌 경계에 머물며 하고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내뱉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mcrock star 경계선을 지워가, 그래 나 한국힙합 표준의 배신자
    '뒷담화' 중

    난 할게! 경계선, 편견 없는 음악답게
    'High Skool' 중

    그 결과 지금까지 대중음악 씬에서 힙합 장르로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정말 가사에서처럼 에픽하이는 꾸준히 자신들만이 뱉을 수 있는 다양한 곡들을 대중들에게 보여 왔으며 이제는 힙합그룹이자 스타가 되어있다. 데뷔 17년 차를 맞이하며 10집이 나온 지금, 다시 들어본 2집 앨범에서 우직함이 느껴진다.

    한슬비, 디자이너

     

    3집 Swan Songs (2005)

    술에 취해 숨소리조차
    차가워 졌을때
    어둠속에서 귓속에
    속삭이는 그대
    'Paris' 중 

    <Swan Songs>는 에픽하이를 제대로 스타덤에 오르게 한 앨범이다. 여기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해외 트렌드를 아주 빨리 흡수하는 에픽하이의 선구안이나 그 트렌드를 기반으로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감각도 있다. 모두들 에픽하이의 최고 앨범으로 4집을 꼽지만 가요적인 감각이 빛나는 앨범을 꼽자면 단연 3집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걸 좀 더 넘어서 에픽하이의 소비가 아이돌 팬덤 같다고 느끼게 만드는 앨범이다. 여느 힙합 팬들과는 다르게 에픽하이의 팬들은 타락천사와 연결되는 <The Epikurean>-<Paris>의 서사와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이 앨범에 숨겨진 에픽하이의 의도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에픽하이의 팬덤이 뭉쳐서 놀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현상은 에픽하이라서 가능했다고 본다. 좀 더 정확히는 에픽하이만이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슷하게 이그니토가 떠오르긴 하지만 팝적이진 않으니까.

    이런 떡밥들은 <Black Swan Song>에 이르러서 절정을 이뤘다. 이 앨범은 에픽하이라는 아티스트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게 한 앨범이면서 동시에 이 팬들이 앨범을 분석하면서 교류할 수 있게 한 좋은 앨범이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이 안의 노래들도 다 좋다. 개인적으론 <Ride>나 <이별과 만남 그 중점에서> 같이 팝적인 트랙들을 마음에 들어하는 편.

    몬세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 (2007)

    성경공부 시간에 내뱉은 신성 모독
    그토록 순종했던 내 맑은 피가
    선악과의 거름이 돼 그 작은 씨가
    자랐는데 그 누가 사상의 순결을 가르치나
    운명을 향한 반역심이 내 hamartia(결함)
    '白夜(백야)' 중

    어찌하여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을 태어나게 하셔서
    빛을 보게 하시고,
    이렇게 쓰디쓴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욥기 3:20

    에픽하이가 1집(2003)에서 2집(2004)으로 넘어가는 기간에 나는 개신교인이 되었고, 3집(2005)이 나왔을 때는 신학교 1학년이었다. 개종 전 불교도였을 때도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특유의 '구도자적 고뇌'를 가지고 삶의 문제 또는 상상 속 비현실 영역까지도 탐구하는 에픽하이의 너른 시야는, 특정 종교나 어느 한 가지 사상에만 제한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픽하이가 인용하는 인물, 단어, 문장들과, 차용하는 종교, 신화, 역사 및 다양한 분야의 사상들 중에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에픽하이의 작품들을 보다 더 깊고 짙게 감상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이 4집과 5집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는 현재 직업 종교인으로서 한국교회를 섬기는 필자만의 억지가 아니리라. 

    이는 단순히 인용되거나 차용되는 다른 레퍼런스들과는 다르다. 스탠퍼드 대학교 영문학 석사답게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가사 위에 펼쳐놓고 흥미롭게 재조립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의 사람'이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며 몸소 느껴본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타블로가 자라며 학습한 문학, 역사, 철학을 당대까지 해석하고 정립한 눈동자는, 20세기까지 지성을 인도한 서구, 북미의 기독교적인 '관점(perspective)'이다.

    크레딧 중 "all concept/stories by"라는 항목이, 커리어 전체 앨범 중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본 앨범은- 그 치밀한 서사적, 음악적 짜임새를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이 '기독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타블로가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뜻하지 않고, 진리의 빛으로 어둠을 비추는 것이 신성모독이 아니다. 탕자의 고백과 성자의 것 중에 오로지 "성자"만을 환호하는 한국교회는- 그래서 '죄책감'이 없고, 따라서 '회개'가 있을 수도 없다. 죄인에 대한 긍휼과, 상처와 아픔에 대한 공감이 불가능하다. 허나 이는 본 작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감히 본 앨범의 행간에 "예수가 있다"라고 말하겠다. '희생양' 같은 트랙은 불신의 외침이 아니라, 절망의 낭떠러지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부인할 수 없는 절실함에서 나올 수 있는 부르짖음(기도)이다.

    에픽하이의 탁월한 점은 한 문장, 또는 그 문장 속의 고급스러운 단어 선택, 문단 배경의 방대한 여러 사상들, 풍부한 교양과 가녀린 감성 정도가 아니다. 에픽하이는 아티스트로서 '자의식' 면에서 뛰어나다. 그것은 그들의 '관점'이 가진 명민함에서 주로 나타난다. 최종적인 사진의 결과물은 카메라 바디보다 렌즈의 힘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과 시적인 가사는 사실 '바디'에 불과한 것일지도.

    앨범 커버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은 마치 사우론의 눈 같은 눈동자다. 그 눈동자 주변을 유광으로 투명하게 인쇄된 그림들이 추가로 둘러싸고 있는데- 왼쪽 끝에는 뇌가, 오른쪽 끝에는 심장이 있다. 그 사이에는 권총, 열쇠, 주사기, 유독성(poisonous) 주의를 알리는 싸인 등이 있고. 이는 실물 디지팩 앨범 커버를 빛에 비추었을 때만 보인다. 이는 인간 영혼의 지도를 재작성한다는 (Remapping The Human Soul) 그들의 예술가적 야심의 중심에 어떠한 자부심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청자/독자는 이 앨범을 통해 그 시선과 눈 맞춘다. 14년째 그 눈동자는, 또렷이 살아있다.

    * "all concept/stories by tablo"다. 하여서 본 리뷰는 다른 멤버들보다 타블로 한 사람에 더 집중했다.

    **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 안에서 선택 가능한 여러 종교 중 하나인 것과는 달리, 수 세기 동안 기독교는 서구사회의 근간이요 기본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서구 정신에서 '사회비판'이라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교회, 교권, 교역자에 대한 비판이 자연스럽게 함께 간다. 교회가 사회요, 사회가 곧 교회인 것과도 같은 시스템이다.

    필자가 말한 서구 사회의 기독교 근간의 유산 안에는 유럽, 북미 중심의 기독교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겪은 낮과 밤, 빛과 어둠의 목격자들 역시 있다. 비판적 지식인이라면 교회와 사회, 경전(성경)과 교역자('성직자'는 좀 더 천주교적인 표현이기에 필자는 피한다)에 질문하는 일은 마땅히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할 때 물러서지 않고 도전했던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었던 것을 보면, 오늘날의 한국교회 또는 21세기의 세계교회는 수용해야 될 비판과 자숙해야 될 점이 아직도 많다.

    *** '기독교(Christianity)'와 '개신교(Protestant)'는 필자가 의도적으로 맥락에 따라 각각 사용했다. 필자의 이해로- 기독교는 개신교보다 역사적으로 우선한 개념이며, 현재도 사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을 아울러 칭할 때 사용한다.

    **** 8집 무렵에 개신교 신앙을 떠난 것으로 보이는데도, (팬으로서 입수할 수 있는 자료의 한계 안에서 볼 때는 그렇다) 심지어 그 이후 타블로와 에픽하이의 작품에서마저 기독교의 '관점'이 느껴진다. 무신론 사상이나 반기독교의 자세와는 다른, 고뇌와 방황이 아직도 느껴진다. 신자이길 거부했다고 해서 모든 지식과 경험이 사라진 것이 아닐 테니.. 혹시 믿지 않기로 결단한 것(불신)이 아니라, 이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태'까지 교회와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깊어진 탓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빠의 장례식에 와 죽음이 치유라는 둥 떠들며 웃던 목사.
    좆 까. 네 신이 병가 중. 하늘엔 하늘 뿐이었어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중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종교 지도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교회)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빈자)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가복음 12:38~40

    이창수, 랩 하는 전도사

     

    5집 Pieces, Part One (2008)

    그대의 밤이, 틈을 잃어버린 삶이
    사람들의 태양이 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마
    '연필깎이' 중

    정규 앨범 단위의 발매 방식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요즘,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의 완결된 음악적 서사를 온전히 즐기고 싶어 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앨범이 바로 에픽하이 5Pieces, Part One이다.

    에픽하이 5집은 정규 앨범, 특히나 힙합 장르에서의 정규 앨범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빠짐없이 모아놓은 교과서적인 앨범이다. 잔잔한 바람 소리와 함께 서서히 시작되는 <Be>는 앨범 전체의 뉘앙스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며 인트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된 skit(<서울, 1:13 AM>, <slave>, <icarus walks>)은 중간중간 감정의 완급을 조절해주는 동시에 이어지는 트랙과 재치 있게 연결되어 서사를 이어나간다. 또한, 앨범의 전체 제목과 그대로 연결되는 마지막 트랙 <당신의 조각들>은 이 바통을 이어받아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를 통해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스토리텔링의 마지막 매듭을 지어준다. 풀 랭스(full length)의 정규 앨범만이 꾸릴 수 있는 깔끔한 기승전결이다.

    뿐만 아니라 DJ 두 명의 스크래치로만 구성된 트랙(<20 fingers>)이나 총 8명의 래퍼가 동원된 단체 곡(<eight by eight>), 스페셜 트랙으로 추가된 두 곡의 리믹스 트랙은 전부 힙합 앨범이라면 기대해봄 직한 상징적인 요소들이다. 단순히 랩과 비트가 주가 되는 것을 넘어 장르적 정체성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는 이러한 트랙들은 장르 팬들이 목말라하는 부분까지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어떠한 전형에만 그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규 앨범이나 힙합 앨범이 으레 갖추고 있는 모든 요소를 전부 아우르는 것은 물론, 흔히 말하는 ‘에픽하이스러움’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픽하이 5집에는 그들의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문학적인 가사나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운드가 부족함 없이 녹아들어 있다. 게다가 이 앨범은 에픽하이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피처링진 선택의 안목이 극에 달한 앨범이기도 하다. <one>, <당신의 조각들>지선이나 <우산>윤하는 그 가수 자체가 해당 곡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딱 맞는 피처링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훌륭한 예시이다. 오죽했으면 <우산>윤하의 <우산>’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6년 뒤인 2014, 윤하의 이름으로 리메이크된 <우산>이 따로 발표되었을 정도다.

    그렇게 Pieces, Part One은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무난함을 넘어선, 모든 방면에서 특출 난 팔방미인앨범이다. 그토록 많은 팬들이 5집을 에픽하이의 대표 명반으로 꼽는 이유는 그만큼 이 앨범이 대중과 마니아, 일반인과 팬들이 원하는 많은 부분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피지컬 앨범 한쪽 구석에 예고된 Pieces, Part Two1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필자 본인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흘러 팬들 사이의 우스갯거리가 되어버린 오래된 떡밥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기대의 끈을 완전히 놓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5집의 만족스러운 완성도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에픽하이의 정규 10집까지 발표된 지금, 그들의 두 번째 조각을 즐거운 마음으로 상상해본다.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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