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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픽하이 특집] 정규앨범 통합 리뷰 (下)
    Review 2021. 2. 3. 21:53

    고등학생 시절. 에픽하이 앨범은 내 BGM이었다. 항상 에픽하이 앨범을 틀어두었다. 내 음악 취향의 '뿌리'랄까. 돌이켜보니 내 인생 이렇게 오랜 기간 팔로우업 했던 아티스트가 또 있었나 싶다.

    당시 필자는 미국에서 체류 중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당시 같이 살았던 (미국인) 룸메이트를 다시 만난 적이 있다. 미국 해병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한국인 룸메이트를 둔 덕에 귀동냥으로 들었던 에픽하이 앨범을 아직까지도 즐겨 듣는다 말했다. 아이튠즈를 통해 최근에 나왔던 신보까지 꿰뚫고 있었다.

    가장 꾸준한 힙합 그룹. '홍대 인디 감성'의 마지막 주자. 글로벌 규모의 팬덤이 존재하는 케이팝 밴드. 이 모든게 섞인 그룹이 에픽하이다. 자신 내부의 서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보다 앞섰다. 자신들이 항상 사운드를 주도한다는 점에서는 '21세기 형 가내수공업 록밴드'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에픽하이는 2MC 1DJ 체제로 시작한, 힙합 그룹이기도 하다. 키메라 같은 혼종의 느낌이야 말로 에픽하이 그 자체다.

    '올 타임 넘버 원'을 꼽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임팩트'로 뽑는 방법과 '커리어 전체의 질과 양'을 뽑는 방법이다. 점점 템포가 빨라지고 쉽게 잊혀지는 요즘. 오히려 역설적으로 커리어의 질과 양, 그리고 꾸준함을 뽑는 게 시대에 더 맞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누구 못지않게 꾸준하게 활동했고, 그 누구보다 폭넓게 활동한 에픽하이의 디스코그래피가 앞으로도 기대되는 이유다. (김은우)


    6집 [e]

    때론 생각이 굳어 마치 로뎅의 thinker 
    새장 안의 새처럼 풀어줘야 할 때 I freestyle
    'Supreme 100' 중

    대다수의 팬이 최고의 앨범으로 뽑는 4, 5집 이후 에픽하이는 호기롭게 다시 한 번 2CD 앨범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대중에게도, 또 팬덤에게도 기억이 상대적으로 흐릿한 앨범이 되었다. 특히 싱글 컷 된 음악들의 임팩트가 약하다. '트로트', 'High Technology', 그리고 '따라해'까지.

    하지만 지금 다시 들어보면 오히려 에픽하이의 꾸준한 시도가 느껴진다. 대중적으로는 인디 팝 싱글과 일렉트로닉 싱글. 알앤비. 정통 힙합. 심지어 일렉트로닉까지. 에픽하이가 추구했던 다양한 방향에서 모두 후속곡을 꾸준히 내놓고, 기존보다 조금 더 장르에 정통적으로 접근하는 등 여러 가지 성장을 추구한다는 게 느껴진다. "언제나 비가 오면 에픽하이가 흐르던 곳에 울려 퍼지는 trap"이라 외쳤던 에픽하이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트랩의 문익점 Dok2의 초기 커리어 시절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협업했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빈지노, 팔로알토 등이 풋풋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앨범이 앨범적으로. 또 싱글적으로 에픽하이의 전성기보다 더 빛나는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에만 음악을 발표하는 게 미덕이 아닌 시대다. 에픽하이는 폼이 최정상이 아닐 때에도, 꾸준히 기존 음악의 연장선상부터 새로운 물결에 합류한 음악까지. 계속해서 시도했다. 그렇게 트렌드와 부딪치며 창작 활동을 지속한 덕분에 전성기 이후에도 계속해서 음악을 발표할 수 있었다. 에픽하이 커리어의 가장 큰 강점인 '꾸준함'을 상징하는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타블로 열꽃

    정말 미치겠어.
    내겐 들리지 않는 위로들 제발 그만해.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는 말.
    나에겐 이별보다 쓸쓸한 만남일 테니.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는 말.
    나에겐 매순간이 죽은듯한 삶일 테니.
    'Tomorrow' 중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시편 137:3

    다시는 나와선 안 되는 명반이다. 그 시절, 그 상황, 그 감정과 감상을 기록하는데 충실한 에픽하이, 타블로 작업 방식의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야기다. 대중에게는 다시없을 선물이 됐지만 아티스트 본인은 창작에 고통받았고, 본의 아니게 주된 영감을 제공한 꼴이 된 '그 사건'에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진짜 감정'을 통째로 담고 있는 본 앨범은, 그만한 절망의 끝에 서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을 장면들을 담고 있다. 높은 낭떠러지에 서면 아래로 어떤 것이 보이고 들리는지, 보통은 알 수 없다. 그 끝에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경험을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은 더욱 없기 떄문에. 우린 그 증언을 들어볼 기회가 도통 없다. 허나 이 앨범은 벼랑에서 바라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서 충실하게 전달하며 청자를 위로한다.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다. "힘내" 같은 말은- 종종 건네는 이의 내면에는 교만을 싹트게 하고, 듣는 이에게는 처연함과 함께 때론 분노까지도 자아내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타인의 불행과 비극"을 접할 때, 슬픔과 피로에 처해 있던 인간은 의외로 순도 높은 위로를 받곤 한다. 타인의 독이, 나에겐 약이 되는 순간이다. 공포영화를 시청한 뒤, 그 처참한 장면들과는 반대로 '나는 안전해'라는 안도감이 은밀한 짜릿함을 주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 아티스트가 겪은 비극이, 수많은 사람을 위로했다. 한 인간이 겪은 영혼이 부서지는 아픔이, 내면이 상처로 무너져 있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다시 살렸다. 아이러니하다.

    왜 하필 그 희생양이 타블로였을까? 에픽하이는 특히 죄와 은혜, 타락과 구원 등 기독교적인 심상을 서사로 치밀하게 잘 묘사해 왔다. 본의 아니게 타블로는 청자들의 위로를 위해 대신 죽은 예수가 됐다. [열꽃]은 그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가, 굴 무덤에 안장된 지 3일 만에 부활해서 전하는 넋두리, 위로, 설교 같은 앨범이다.  

    '나'를 말하던 [Part 1]과 비교해 [[Part 2]는 좀 더 '너'에게 말을 건다. 본 작은 자기 위로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자아의 문 밖을 향해 나간다.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그중에서도 '출처' 한 곡이 색다르다.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이 한국 힙합 100대 명곡으로 꼽기도 한 이 곡은, 이 앨범의 색채와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선곡이라 느껴질 여지도 있다. 이 곡이 묘사하는 장면들이 절망을 밑바닥까지 훑어본 이가 비로소 공감할 수 있게 된 우리 현실 속의 여러 단면이라고 보면 어떨까? 다르게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타블로는 부활해서 우리 곁에 돌아왔다. 회색의 간달프가 백색의 간달프의 모습으로 다시 온 것처럼, 본인의 한계를 크게 한번 넘어섰다. 그러나 예수를 판 유다는 어디 있는가? 나는 더는 궁금하지 않다. 그러니 그대도 검색해보지 말자. 더 이상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 않다. 부디 이 앨범이 타블로 본인에게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치유하는 효과를 낳았기를 기도한다.  

    유다는 잊혀졌지만, 명반은 남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도 상처의 깊이만큼 오래 오래.

    * BGM : [Part 2] 중에서 '05.유통기한'. 이 곡을 들으면서 읽자.

    ** 리뷰 이해를 위해 첨언한다. 예수는 부활해서 천국에 하나님 우편 보좌에 올랐던 이일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대신해 지옥에까지 내려갔다 온 분이시라고 성경은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길 지옥은 (단순히 불구덩이가 아니라) 신의 부재이며, 그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도신경 중. "He descended into hell"은 국문 번역에서는 탈락된 문장이다.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7:46

    이창수, 랩 하는 전도사

     

    7집 99

    웃으면 안 돼? 난 왜? 
    사람 싫어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고? 
    내가 싫을 땐 왜 수천 수만가지냐고 
    전부 내 탓이라고 소리치네 
    내 입을 막는 goalkeepers, 꼴보기 싫대
    'Don't Hate Me' 중

    굉장히 반발을 샀던 앨범이다. 사실 6집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2집부터 이어졌던 인디 팝, 일렉트로닉과 정통 힙합을 적절히 혼용한 에픽하이 특유의 음악 레시피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인상도 줬다. YG로 이적한 에픽하이는 강수를 둔다. YG 프로듀서들과 적극 협업해 YG 식 에픽하이 음악을 발표한 거다. 당시에는 팬들의 반발도 컸던걸로 기억한다. 팝스타가 힙합을 하고, 힙합 스타가 틱톡 맞춤 음악을 만드는 게 당연하게 된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래퍼가 케이팝을 하면 배반형인 시절이었다.

    그 시절과 거리를 두고 다시 들어본 7집은 '새롭다'. 모든 시도가 훌륭하다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록이 트랩이 된 지금 들으면 'Don't Hate Me'같은 음악은 콘서트 레퍼토리로써도, 또 인생의 가장 어두운 지점을 극복한 타블로의 세상을 향한 선언으로써도 썩 잘 어울리는 싱글이었다. 'Kill This Love'와 같은 본격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은 에픽하이 시절보다 진일보된, YG식 '돈맛 나는' 사운드를 풍성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길고 긴 에픽하이의 디스코그래피에서 1집과 함께 7집이 유독 튄다. 꾸준히 자기만의 길을 장인처럼 걸어왔기에, 오히려 7집의 시도는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양념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기존 에픽하이의 앨범에서는 채워주지 못한 강점까지 가진 채로 말이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8집 신발장

    바지 벗고 시원하게 깔라면 까 
    타진요도 기어와 I'm tryin' to love ya 
    어울리잖아 뭔가 내 역설적인 삶과 
    무한대를 그려주려 쓰러진 팔자
    'Born Hater' 중

    고백한다. 나는 에픽하이의 팬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헤이터에 가까웠다. 모두가 아는 미움과 사랑의 관계처럼 나는 헤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모든 것을 팔로우해왔다. 공연도 보았고 씨디도 샀었다. 내 안의 도출값이 항상 음수였을뿐. 싫다는 감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첫 시작은 이들에 대한 선망이었다. 2003년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던 형들이 내가 생각하는 힙합을 멋지게 대중화시킬 것이라는 순진했지만 그만큼 맹목적이었던 기대감.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혐오를 낳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음악과 모습을 연달아보게 되면서 방황하던 자아는 '헤이팅'이라는 기조 아래 금세 제 자리를 찾았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콘텐츠를 접하면서 겪고 있었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이들은 무엇인가? 세상은 변했고 힙합만 들을 것 같았던 나도 어느새 케이팝도 발라드도 즐기고 있는데 힙합인듯 가요인듯 애매해 보였던 이 형들을 이젠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에픽하이는 인터뷰에서 [신발장] 앨범을 '에픽하이 시즌2' 라고 표현했었다. 그들답게 돌아와 새로운 막을 올리듯이, 기존에 형성되었던 에픽하이와 리스너의 관계도 이 앨범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즌에 돌입했다. 나같은 (고민하는) 헤이터와 팬들에게 이들이 취한 액션은 예상보다 심플하다. 그간 착실히 키워온 대중성을 베이스로 가요/발라드도, 힙합도, 전부 업그레이드해서 양쪽 다 사로잡는 식이다. 심플하지만 아무나 취할 수 없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각 트랙들은 의도적으로 튀게 틀린다. 에픽하이 식 서정적 트랙이 나오는 듯 싶다가도, 완전 R&B를 제대로 끼얹은 트랙이 나오다, 별안간 랩/힙합의 향연에 고개를 까닥이기도 한다. 그러나 각 트랙의 균일하게 뛰어난 완성도 덕에 산만함 대신 개별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그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지점이라면 역시 리드 싱글인 'Born Hater'다. 베테랑 (VJ)과 정점의 랩스타 (빈지노), 그리고 루키들 (MINO, BOBBY, B.I.)의 절묘한 조화에 힘입어 에픽하이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힙합씬에서, 힙합 문화에서만 소비되고 순환되었던 주제와 태도를 유머러스하게 밀어붙인다. 2003년의 그들이 히든 트랙 'Watch ya self'에서 격렬하게 설파했던 주제가 2014년, 힙합이 마침내 대세가 되어가던 시기에 'Born Hater'를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저 어딘가의 헤이터들에 대한 응수를 넘어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유산 (legacy)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키고 인정받는 승리의 순간이다.      

    안승배, 음악에디터

     

    9집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달라진 게 없네 
    홀로 남은 놀이터에서 
    그 높은 턱걸이에 오른 뒤 
    여태 까치발 인생
    '빈차' 중

    얼핏 보면 전반적으로 8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붐뱁으로 포문을 연다. 이후 여성 보컬의 인디 팝. YG 래퍼들과 당대의 힙합퍼와 함께한 힙합 싱글 등이 이어진다. 앨범은 서서히 낙차를 더해가며 정적으로 변해간다. 이런 이유에서 '매너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앨범이기도 하다.

    8집과 9집은 하나하나 음악의 구조는 안정적으로 비슷하다. '이게 에픽하이의 안정기의 음악이다'라는 느낌. 그럼에도 8집과 확연하게 다른 9집의 느낌이 있다면 그건 앨범 전체의 서사다. 8집이 'Life Is Good', '신발장' 등. 구원으로 끝나간다면. 9집은 (Rapture 등 희망적인 부제가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희망이 사라져 간다. 마지막 '문배동 단골집'까지 가면 사실상 타블로 솔로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통기한'을 연상시키는. 시간과 트렌드에 밀려 사라져 갈지 모른다는 아티스트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담았다.

    사운드적으로도 9집은 기존 음악과 아예 같지는 않다. 점차 에픽하이는 안정적으로 인디 팝 정서는 유지한 채로, 멜랑콜리한 힙합 사운드와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춰가는 중이다. 미처 눈치채지 못하게 에픽하이의 사운드는 점차 2천 년대 사운드에서 2010년대 사운드로 진화했다. 얼핏 듣기에는 '또 에픽하이 노래네'라는 말은 그래서 어쩌면 에픽하이에게는 기분 좋은 칭찬일지 모른다. 사운드를 최신으로 바꾸었음에도 에픽하이스러움은 유지했다는 뜻이기에.

    7집 이후의 에픽하이는 확실히 이전처럼 활발하게, 폭발적으로 많은 트랙을 뽑아내는 성장기의 음악가는 아니다. 하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가 비슷한 재료와 조리법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듯. 에픽하이는 자신의 정서는 유지한 채, 음악의 요소 하나하나를 절묘하게 변주해가며 또 다른 서사를 만들었다. 다시 '2CD 대형 앨범' 형태로 돌아온 에픽하이의 10집. 그리고 그 이후가 여전히 기대되는 이유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에픽하이 특집] 정규앨범 통합 리뷰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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