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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리네어 특집] 지난 10년의 발자취. 주요 앨범 리뷰
    Review/Albums 2020. 8. 13. 19:02

     

    The Quiett <Stormy Friday> (EP) 2011.11.29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2010년 하반기 그의 소울컴퍼니 탈퇴와 연이어 발표한 도끼와의 일리네어 레코즈 설립 소식은 당시 한국힙합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게시판들을 뜨겁게 달구던 반응을 요약하면 강한 서던 힙합과 스웨거를 추구하던 도끼와 다소 전통적인 붐뱁 스타일과 언더그라운드적 태도를 추구해오던 더콰이엇의 조화 여부다. 그가 2011년 겨울 발표한 <Stormy Friday> EP를 둘러싼 각양각색의 반응들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막 출범을 알린 '일리네어 레코즈' 에 대한 기대 섞인 우려의 시선. 

    <Stormy Friday>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환' (Transition) 에 가깝다. 사운드적으로는 소울컴퍼니 시절 보여주던 무드를 어느 정도 유지하지만, 가사 속 태도는 보다 선언적이다. 예전과 달라졌다며 실망하는 팬들에게 마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한번도 사람들의 공감을 위해 음악을 만든 적이 없었다며 확인사살(?)을 하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삶과 감정에 솔직한 음악을 할뿐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만의 태도와 방향성을 더 세게 밀고 나가는' 일리네어 방식(illionaire way)의 자그마하지만 단호한 시작점이다.  

    안승배, 음악에디터

     

    Beenzino <24 : 26> (EP) 2012.07.03

    이 앨범이 빈지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좋은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앨범은 모두가 기억하는 지금의 '빈지노' 라는 존재를 만든 앨범이다. 빈지노는 대한민국 최초의, 타협하지 않은 힙합 슈퍼스타다. 그리고 이 앨범은 한국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순도를 유지한 힙합 히트 앨범' 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중요하다.

    이 앨범은 일단 엄청나게 팝스럽다. '최대한 안 구린 힙합으로 최대한 많은 대중을 사로잡자' 는 흐름의 상징인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앨범의 포문을 연다. 타이틀곡 'Aqua Man' 은 결국 어장관리 당하는 남자의 지질한 슬픔을 이야기하는, 어쩌면 발라드적인 정서를 담은 트랙이다. 앨범 전체도 재즈, 알앤비를 연상시키는 달콤하고 편안한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뼛속까지 힙합스럽다.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한 'Nike Shoes' 부터, 진보가 참여한 'Aqua Man' 까지. 모두 기존 발라드랩과는 전혀 다르다. 가요 보컬의 피처링도 없고, 발라드 정서도 끼여들 틈이 없다. 또 다른 히트 싱글 'Boogie On And On' 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힙합적인 파티 랩으로 이런 성공을 거둔 전례가 또 있을까? 무엇보다 이 앨범은 모두, 미친듯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다. 연예인적인 필터링 같은 건 없다.

    힙합이면서도 그 안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담기도 했다. 'Profile' 은 당대의 트랩이다. 'If I Die Tomorrow' 는 한국힙합이 항상 중시해왔던 '진지한 주제, 진지한 가사' 를 담고 있다. 'Always Awake' 또한 곡 전체가 Common과 같은 진지한 컨셔스 래퍼의 한국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힙합적이면서도 디테일에서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당시) 가난한 래퍼 빈지노가 할 수 있는 소재에 충실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단순 미국힙합 흉내조차 아니였단 이야기다.

    그 무엇보다 힙합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팝스럽고 대중적인 음악. 그 모순적인 일을 빈지노는 해냈다. 덕분에 빈지노의 음악은 당대 최고 히트곡이였으면서, 지금까지도 촌스럽지 않다. 순도 100% 힙합이면서도, 대중을 설득시킨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 앨범은 더 큰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Dok2 <South Korean Rapstar> (Mixtape) 2013.01.11

    'A부터 Z까지 힙합을 입고 말하다'. 쇼미더머니 열풍조차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의 힙합 대중화 시대에는 그리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도끼가 이를 갈고 믹스테입을 쏟아내던 2013년 초반의 분위기는 지금과 전혀 달랐다. 래퍼들은 늘어나지만 패션은 힙합적이지 않던 때. 힙합을 하지만 방송에서 에어조던을 모은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던 시절. 즉, 랩은 대중화되어도 힙합의 태도와 스타일을 당당히 메이저로 가져가는 래퍼들은 드물었다.

    도끼의 <South Korean Rapstar> 는 이전의 작업물들과 달리 앨범 제목에서부터 강한 열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 몇년 뒤 AOMG 박재범과 쇼미 6에서 심사위원으로 만나 공연했던 노래처럼, '니가 싫어해도' 끝까지 힙합이 뭔지, 랩스타의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일부러 돈과 성공에 대한 얘기를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쏟아낸다. 래퍼라고 하지만 힙합의 팬이 아니며, 불리할 땐 힙합을 좋아하는 정체성을 숨기는 사람들 역시 도끼의 랩 제물이 된다. 방송용 싱글은 가요와 다름없이 제작한 뒤 나머지 트랙에서 한껏 힙합인척, 센척하는 래퍼들 역시 뜨끔할 부분들이 많다. 앨범의 구성은 전혀 친절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랩 스킬을 듣다 보면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리뷰를 마치면 이 작품은 단순히 랩으로 가득찬 과유불급의 믹스테입 정도로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일리네어 레코즈의 가치는 작업물 자체의 세련된 완성도 보다도 당시 씬을 개척한 방향과 의미에서 나온다. 즉, 이 앨범은 메이저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도 랩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힙합판타지' 가 마침내 눈에 보이는 증거로 형상화된 마일스톤이다.  

    일리네어 키즈의 선두주자이자 현 힙합 씬의 정점인 창모가 'Rapstar' 의 피아노 커버를 SNS에 업로드하면서 그의 힙합 인생을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안승배, 음악에디터

     

    ILLIONAIRE RECORDS <11 : 11> (LP) 2014.05.21

    마블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영원히 바꿔버렸다. 마블 영화가 솔직히 명작은 아니다. 최고급 수제 제품보다는 잘 만든 공장제 제품이라는 뜻이다. 이 예측가능한 영화 시리즈에서 핵심은 캐릭터의 재미다. 우리는 아이언맨을 보러 가지, 거창한 주제의식이나 미학적 자극을 위해 마블 영화를 보러 가는게 아니다.

    <11:11> 은 힙합을 테크닉 싸움, 진정성 자랑이 아닌 '캐릭터의 매력' 으로 재정의했다. 원래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에미넴의 얼터 이고 (Alter ego) 놀이부터 스눕 라이언까지. 다만 한국은 그보다는 진정성 대결과 '좋은 라임은 무엇인가' 류의 유교적이고 관념적인, '누가 더 정의로운가'의 대결로 힙합을 변모(?)시켰다. 당대에는 필요한 일이었지만 미래지향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이를 뒤집어버린게. 아니, 이를 다시 본토의 트렌드로 돌려놓은게 일리네어 레코즈다. 그 면모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 바로 이 <11:11> 앨범이다. 가장 훌륭한 앨범이라서가 아니다. 가장 캐릭터가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라서다. 비유하자면 일리네어 레코즈의 '어벤져스' 인 셈이다.

    이 앨범은 얼핏 보면 단순하다. 주제는 '돈 자랑, 성공 자랑' 뿐이다. 장르는 앨범 안에서는 나름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잘 배분되어 있지만, 결국 하나의 단일한 청사진의 사운드로 쭉 흘러간다. 심지어 타이틀곡 '연결고리' 는 랩적인 테크닉조차 단일한 플로우에 절반을 할애하며 줄여버렸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도끼, 더콰이엇, 그리고 빈지노. 세 래퍼의 '캐릭터' 다. 거침없는 리듬감과 선명한 태도로 랩스타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도끼. 때로는 누구보다 감미롭게 낭만을 논하고, 때로는 누구보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빈지노. 그리고 얼핏 느리고 둔탁해보이지만 사실 가장 트렌디한 감성으로 본질을 찌르는 허허실실 더콰이엇까지. 셋을 붙여 놓고, 사운드와 주제도 동일하게 가져간 덕에 셋의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셋의 차이. 셋의 다양성. 그러면서도 셋이 함께 추구한 단 하나의 단일한 사운드. 이 덕분에 이 앨범은 그 어떤 힙합 앨범보다 균형잡힌 캐릭터의 전시장이 되었다. 

    이후 한국 힙합은 일리네어의 방식을 받아들인 수많은 래퍼들의 캐릭터 쇼로 한국 음악계를 평정했다.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 열풍부터 쇼미더머니를 거쳐 다모임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게 일리네어 레코즈는 마블이 영화를 바꿨듯, 국힙을 영원히 바꿔버렸다

    김은우, 케이팝 저널리스트

     

     Dok2 <Multillionaire> (LP) 2015.06.23

    10년이라는 시간을 바닥에서부터 버텨냈다. '너무 흑인스러워서 성공하지 못할 것' 이라는 비난과 훈계들을 2005년 올블랙 (All Black) 시절부터 들어오며 한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샴페인 병과 함께 롤스로이스 위에 앉아있는 도끼의 모습이 인상적인 <Multillionaire>는 그가 그동안 그의 방식대로, 한 번도 타협하지 않으며 얻어낸 성공을 자축하고 감사함과 동시에 다음 단계의 야망을 꿈꾸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내가 망할 것 같애?" 그의 도발적인 물음은 쉴틈없이 달려들던 헤이터들을 상대로 자신있게 외치는 선언인 동시에 위로 올라가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이언티를 위시한 국내 알앤비 스타들과 그간의 서사를 단단하게 완성하고 (Still on my way Part 2), Young Chop, DJ Mustard, Jahlil Beats 등 미국 프로듀서들과의 적극적인 작업을 통해 '본토의 멋' 과 '한국래퍼의 멋' 간의 간극을 줄이는 면모를 보면, 그가 래퍼 이외에 프로듀서로도 'Young King, Young Boss' 의 자리를 입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lapse, A&R

     

    Beenzino <12> (LP) 2016.05.31

    오랜 기다림 끝에 발매된 빈지노의 첫 정규 <12>는 기존의 한국힙합 안에서 통용되던 경계와 프레임을 한껏 확장한 앨범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 앨범은 그 이전의 힙합 앨범들보다도 아트적이다. 어릴적 친구들인 아트크루 IAB와의 작업에서도 보여지듯이, 단순히 음악 작업물의 사후디자인 의뢰를 하는 방식을 넘어 시각디자인적 요소와 음악 창작의 협업 모델을 제시한다. 앨범에 활용된 제프 쿤스, 살바도르 달리의 레퍼런스와 그가 IAB와 함께 제작한 미술 조형과 아트워크는 그림을 그리듯이 쓴 그의 가사와 세계관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하나의 전시된 예술 작품을 보고 듣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빈지노는 래퍼인 동시에 음악적 도슨트 이기도 하다.  

    또한 본작은 '힙합 뮤직비디오' 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하나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제작의 개념으로서 접근한 것도 인상적이다. 예상치 못했던 YDG 와의 조인트 'January' 의 M/V 를 떠올려보자. '셀레브리티 커플' 스테파니 미쵸바의 한복 핏, 한옥 지붕 위에서 몸을 숨긴채 랩하는 나그네 YDG, 퓨전 사극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촬영 로케이션들과의 조화는 '한국힙합' 에 씌여있던 단조로운 이미지를 없애고 하나의 아트폼으로서 창작/해석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Elapse, A&R

     

    Dok2 <Reborn> (LP) 2017.03.28

    본작의 도끼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던 랩스타보단 투박한 'Hiphop Lover' 에 가깝다. 미사여구와 겉치레로 포장하지 않은 결연함과 뛰어난 랩스킬이 만나 도끼의 커리어 안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앨범이 탄생했다. 비장한 분위기 속에 지난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도끼의 소회를 엿볼 수 있다. 올블랙에서 시작했던 도끼는 어느덧 거장이자 OG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기에 그가 앨범의 첫 트랙부터 (당시) 신예였던 앰비션뮤직의 세 멤버에게 바톤을 넘기는 모습은 다분히 감동적이다. 힙합에 대해 우직한 태도로 던지는 본질적인 메시지 역시 깊은 울림을 남긴다.

    긴 맥락에서 볼 때, 본작은 이후 도끼가 많은 사건에서 취할 스탠스를 암시하는 듯한 앨범이기도 하다. '1000만 원 사건' 이 도마 위에 오르며 도끼 개인에게는 선택이 강요되었다. 바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이준경과 래퍼 도끼로서의 명예 사이의 선택이다. 도끼는 물러서지 않고 싱글 '말 조 심' 으로 자신의 태도를 증명한다. '힙합이라 욕먹는 건 용납 못 한다’ 는 일갈은 분명 많은 리스크를 감내하고 던진 묵직한 한마디였을 것이다. 이후 상징적이었던 ‘힙합 꼰대’ 무대를 지나 일리네어 해체라는 결과에 도달한 지금, 다시금 꺼내든 도끼의 <Reborn>은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 앨범 속엔 도끼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그 해답이 남아있다.

    Vapizz, A&R

     

    The Quiett <glow forever> (LP) 2018.09.07

    “아, 세대교체다.”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앨범이었다. 더콰이엇의 <glow forever>는 늘 시대를 앞장서 이끌어온 노련한 래퍼가 한 세대의 끝에 새겨넣은 에필로그다. 트렌드를 흡수한 프로덕션과 프레쉬맨들을 대거 기용한 앨범은 다음 세대를 위한 사운드의 표본이다. 이 앨범은 새롭거나 혁신적인 성취를 남기진 않는다. 다만 한국 힙합이 마침내 도달한 지금의 모습을 기리듯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공감 가는 주제, 편안한 사운드, 소울컴퍼니 시절의 더콰이엇을 연상하게 하는 감성적인 분위기, 거장의 여유와 노련함이 느껴지는 앨범 전체의 완급조절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더콰이엇의 앨범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을 만든다. 다음 세대의 청사진과 같은 본작에 이후 앰비션뮤직에 합류하는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목소리를 보탠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앨범의 주인인 더콰이엇이 취하는 프로듀서 적인 스탠스 또한 흥미롭다. 프로덕션과 피처링진의 존재가 단순히 더콰이엇의 퍼포먼스를 빛내기 위한 요소가 아닌, 앨범의 큰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랩하우스, 앰비션뮤직, 국힙상담소, 뛰어난 안목 등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음악적으로도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신의 비중을 낮춤에도 앨범의 전체 요소를 총괄, 이끌어가는 그의 넓은 시야가 앨범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뛰어난 리더이자 많은 뮤지션의 존경을 받는 귀감, 더콰이엇은 <glow forever>를 통해 말 그대로 ‘계속 빛나는’ 힙합씬의 큰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Vapizz, 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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