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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대마초, 균형감각
    Feature/힙합과 한국 2020. 5. 13. 17:12

     

    평소 균형을 중요시 한다. 균형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극단이나 이분법은 짜릿하지만 건강하지 않다. 선과 악의 구도 역시 만화 속에선 매력적이지만 현실을 온전하게 반영하진 못한다. 현실은 양가적이고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복합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

    힙합과 한국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균형감각 덕분이다. 나는 한국이 균형감각으로 힙합을 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깊이 없는 비난과 애정 없는 폄하가 이토록 많이 존재할리 없다. 힙합이 완벽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힙합의 방대하고 복합적인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비판도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나의 균형감각을 최근 다시 발동시킨 존재가 있다. 바로 래퍼 빌스택스다. 얼마 전 그는 새 앨범 [DETOX]를 발표했다. 논란이 되는 건 이 앨범의 콘셉트다. [DETOX]는 전곡을 대마초 이야기로 채웠다. 심지어 앨범 커버에도 대마초가 가득하다. 또 빌스택스는 실제로 대마초 합법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인의 비난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온갖 비난과 비아냥이 댓글로 달린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참을 수 없다.

    대마초를 피고 싶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대마초 합법화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담배는 태어나서 입에 대본 적도 없고, 술도 누가 마시자고 안하면 평생 안 마실 수 있는 나는 지금 대마초 때문에 화가 나 있다. 대마초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에서 균형감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을 갖추는 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대마초의 역사나 찬반 양상을 길게 언급할 생각은 없다. 대신에 빌스택스가 나에게 해준 말은 꼭 옮기고 싶다. “지금 한국의 젊은 분들이 윗세대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대마초에 대해 모르고 공부도 안 해봤지만 그냥 안 좋은 거라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여요. 그렇게 말하면 어른들이 좋아하고 기특해하거든요. 그거에 대해 의문을 품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대신에 한국에선 불법이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되풀이하고 있어요. 그런데 법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잖아요. 법은 바뀔 수 있어요. 100년 전 법이 100년 후에는 틀린 법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대마초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결론도 균형감각에 의거한 과정을 통해 도출돼야 한다. 즉 대마초는 정말 약물이 맞는지, 중독성은 담배와 비교하면 어떤지, 대마초 금지에 정치적 맥락은 없었는지, 법이란 영원한 진리인지 특정한 시대의 산물인지 등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분법에 의지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스스로 공부하고 체화해 결론내린 자기 생각 대신 이미 자기도 모르게 외워놨거나 학습한 구도와 관념을 기준으로 삼는다. 빌스택스가 말을 덧붙였다. “이건 단순히 대마초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이야기죠. 한국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빌스택스를 둘러싼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힙합을 다시 떠올린다. 다수의 의견과 어긋나는 생각, 그리고 이미 정해져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동을 철저히 배격하는 나라 한국은 힙합 역시 그렇게 대해왔다. 단적으로 힙찔이라는 호칭은 한 번에 이해되지 않거나 자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래퍼들(과 힙합 팬들)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멋대로 규정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대신 상대방을 곧바로 부정함으로서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힙합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긴다. 힙합의 영향 덕분에 늘 왜 안돼?’라는 태도를 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남의 생각에 지배되는 일 없이 내가 체화하고 결론내린 기준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체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균형감각과도 연결된다. 세상을 늘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빌스택스 역시 힙합에게서 배운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확신이.

    Written by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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