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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펭수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 화내지 않는 래퍼들
    Feature/힙합과 한국 2020. 6. 13. 16:40

     

     

     

    펭수가 인기다. 펭수가 등장한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지금껏 나는 펭수 현상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펭수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 나는 한국인 거의 전부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을까. 이런 내가 싫다. 실은 좋다.

    그러나 결국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내가 펭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펭수가 랩 싱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펭수는 얼마 전 ‘펭수로 하겠습니다’를 발표하고 래퍼로 데뷔했다. 혼자는 아니었다. 타이거JK, 비지, 비비와 함께 했다. 타이거JK. 맞다. 타이거JK가 펭수와 함께 랩을 했다. 펭수가 힙합과 엮였으니 이제 나도 펭수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실 펭수의 랩에 큰 감흥은 없다. 평범한 랩이다. 아니, 걸음마 수준의 ‘랩 비슷한 무엇’이다. 이건 펭수 앞에서도 말할 수 있다. 펭수도 내 얘기에 반박불가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벤트성 음원이니 정색하고 평가할 생각도 없다. 애초에 펭수 역시 랩을 진지하게 구사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건 놀이다. 이건 엔터테인먼트다. 힙합을 도구 삼아 떠나는 펭수의 즐거운 모험이다.

    위 문단을 쓴 후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쓰고도 아무렇지 않은 자신에 놀랐다. 내 안에 거부감이나 저항감 같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힙합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며 발끈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봉현이가 변했다. 봉현이는 다른 사람이 됐다.

    힙합이 화를 잔뜩 품고 있던 때를 기억한다. 주로 개그맨이 래퍼를 불편하게 했다. 래퍼를 흉내내는 코미디에 래퍼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솔직히 말해서 되게 꼴 보기 싫어. 난 힙합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힙합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있어야지. 힙합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마.” 지난 2012년, 이센스의 트윗에 정준하가 반응했던 사건은 이런 맥락에서 다분히 상징적이다. 우리를 희화화하지 말라는 래퍼와, 마음을 다스리고 함께 웃어보자는 개그맨의 대립이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이 왜 래퍼를 흉내내는지, 펭수가 왜 타이거JK 앞에서 되도 않는 펀치라인을 뱉는지 얼추 이해는 간다. 힙합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힙합 밖에 있는 사람의 눈엔 대체로 ‘이상하지만 매력적으로’ 비치기 마련이고, 그것은 곧 패러디의 욕구나 예능으로의 활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엠씨메타의 ‘찢어버려’는 좋은 예다. 찢어버려는 엠씨메타가 무대에서 자주 외치던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동안 패러디 소재로 쓰였다. ‘라임의 왕’이라는 코너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용진, 양세찬, 이진호는 왜 엠씨메타의 그 말로 개그를 하게 된 걸까. 찢어버려는 힙합 안에선 멋있는 말(과 태도)였지만 일상 속에선 쓰이지 않는 말(과 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분석도 이제 공허해졌다. 래퍼들은 더 이상 화내지 않는다. 힙합 팬들도 마찬가지다. 펭수가 ‘펭수로 하겠습니다’ 뮤직비디오 설명란에 ‘힙합 너무 재밌다 키킥’이라고 써놓아도 아무도 불편해하거나 발끈하지 않는다. 대신에 함께 웃고 즐긴다. 더 나아가 오히려 펭수와의 콜라보를 희망한다. 세상은 달라졌다.

    세상이 달라진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힙합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힙합은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음악이 됐고 많은 래퍼들은 이제 가난하지 않다. 힙합은 각종 예능의 중요한 소재로 빈번히 쓰였고 광고시장은 물론 교육계와 공공기관으로도 퍼져나갔다. 다시 말해 지난 몇 년 간 힙합은 다시 오지 않을 호황을 겪었다. 또한 많은 것과 결합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이제 힙합은 랩하는 펭수에 놀라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는다.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여유를 갖게 된 걸까. 없는 살림일수록 예민한 법이니까. 펭수의 싱글을 듣고 티브이를 켜니 tvN의 예능 프로그램 ‘플레이어’가 나온다. 래퍼와 개그맨이 한데 모여 누가 래퍼이고 누가 개그맨인지 모를 랩과 개그를 발산 중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도 역시 누구도 놀라거나 화내지 않을 것이다. 괜스레 감회에 젖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Written by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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