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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특집] '리스펙트'에 관한 단상
    Feature/힙합과 한국 2020. 3. 6. 20:42

     

    * 이 글은 방탄소년단 자체에 관한 글은 아니다. 대신에 그들의 새 앨범 수록곡을 듣고 떠오른 단상을 간단히 정리한 글에 가깝다. 이번 BTS 특집 중 외전 격 정도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힙합에서 출발했다. 초기 앨범 몇 장을 들어보면 힙합과 관련지을 수 있는 꽤 많은 시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팝 쪽으로 외연 확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RUN', '피 땀 눈물’, ‘DNA' 등이 그 증거라면 증거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MAP OF THE SOUL : 7]이 발매됐다. 그런데 이 앨범이 재미있다. 초기 앨범 몇 장을 제외하면 힙합 색이 가장 짙은 작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리부트다. 데뷔 초 학교 3부작앨범을 차용 및 재해석했다. 그러니 힙합 색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가장 흥미로웠던 노래는 ‘Respect'. 일단 제목에 끌렸다. 리스펙트는 힙합 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니까. 노래를 다 들은 후엔 가사 내용이 마음에 계속 남았다. RM과 슈가는 이 노래를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리스펙트란 단어는 요즘 남발되고 있어. 부디 존경을 쉽게 말하지 마."

    맞다. 리스펙트란 단어는 확실히 요즘 자주 쓰인다. 예전보다 자주, 가볍게 쓰이는 느낌이다. ‘G.O.A.T'도 마찬가지다. ’greatest of all time‘이라는 뜻의 이 약자는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고트가 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서는 염소 이모지로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사람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랩을 조금만 잘해도 고트라고 부르면 어쩌자는 거야? 좋은 앨범 한 장 냈다고 위대하단 소릴 듣는 게 말이 돼?”

    어쩌면 리스펙트와 고트 둘 다 이 시대의 말의 인플레현상으로 조명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레전드라고 불리는 대상의 90% 이상이 레전드와는 관계가 없고, 대박이란 단어가 여고생들의 말버릇이 된지는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이 쯤 되면 농담이 아니라 단어의 뜻을 시대에 맞게 바꾸거나 추가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든다. 레전드는 감탄의 정도를 단순히 대변하는 세 음절 표현으로, 대박은 일상 대화 중 맞장구쯤으로 자주 쓰이는 추임새정도로 말이다.

    물론 RM과 슈가의 문제의식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단어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는 태도를 나쁘게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힙합 문화 안에서 리스펙트란 단어가 지닌 맥락을 다시 떠올리면 그들의 결론에까지 동의하기는 어렵다. 힙합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래퍼들이 리스펙트를 외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확실히 래퍼들은 이 단어를 습관적으로 입 밖에 낸다. “, 리스펙트! 리스펙트 브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미국 흑인의 역사적 맥락을 빼놓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흑인 남성의 사회경제적 위치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미국 흑인 남성은 샌드위치와도 같은 신세였다. 밖으로는 백인 남성에게 대항할 수 없었고 안으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없었다. 또 많은 흑인 남성은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에 태어나 자라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상처와 좌절을 겪어야 했다. 힙합 역사가 윌리엄 젤라니 콥은 이를 가리켜 흑인 남성의 무기력함이라는 흉터 조직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리스펙트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습관적으로 외치는 리스펙트, 다시 말해 힙합 문화 안에서 남발(?)되는 존중과 존경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조그마한 성취에도 최대한 큰 의미를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삶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총기사고가 빈번한 동네에서는 오늘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또 온전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는 학교를 졸업한 것만으로도 큰 성취를 거둔 것과 같았다.

    그럴 때 그들은 리스펙트를 건네며 서로를 격려했다. 너도 나처럼 힘든 걸 아니까 함께 힘내서 우리의 운명을 바꾸자고, 비록 밑바닥에서 출발했지만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고 말이다. 힙합음악에서 리스펙트 만큼이나 자주 나오는 단어가 바로 스트러글(struggle)과 허슬(hustle)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되는 셈이다. "험난한 거 알아. 그럼에도 역경에 지지 않고 분투하는 너의 삶을 우린 리스펙트해.” 그리고 미국에선 이를 가리켜 ‘black experience’라고 부른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나의 흑인 친구 카이욘이 말해줬다.

    영혼 없는 리스펙트는 물론 반대다. 또 리스펙트라는 단어를 최대한 무겁고 신중하게 대하려는 사람들의 입장도 존중한다. 하지만 모두가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격려가 필요해 보이는 이 시대에, 어쩌면 리스펙트란 남발을 경계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흘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말은 좋은 기운을 줘서 좋은 걸 해내게 하니까. 힙합이야말로 그걸 앞장서서 증명해온 음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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