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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래퍼들은 아버지가 된다
    Feature/힙합과 한국 2020. 4. 6. 16:55

    JJK -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래퍼 JJK가 새 앨범을 발표했다. 서프라이즈라면 서프라이즈다.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스타그램 상에선 앨범 작업을 하는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리도 과묵한 래퍼라니. 그러자 JJK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제 입장에서 앨범 작업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일상이거든요. 그래서 SNS에 딱히 말하진 않았어요.”

    새 앨범 타이틀이 눈에 띈다.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성경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가족 이야기다. JJK가 그의 아내와 아이에 관해 만든 음악이다. 이 쯤 되면 앨범 타이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은 지옥처럼 힘들다. 하지만 지옥의 아침은 매일 천사가 깨운다. 아이가.

    앨범 반응이 좋다. 대체로 호평이 많다. JJK가 털어놓은 가족 이야기에 사람들이 감동받았다. 동료 래퍼들도 마찬가지다. JJK는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미리 동료 래퍼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딥플로우에게 미리 들려줬는데 엄청 좋게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중간에 눈물이 흐를 뻔 했는데 진짜로 울면 오버인 것 같아서 눈물을 참았다고 했어요. 팔로알토 형도 마찬가지였어요. 좋은 말을 많이 해줬고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했어요. 또 가족 이야기의 정수에 도달한 것 같다고도 말해줬죠.”

    실은 이번 앨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언급해야할 작품이 있다. JJK5년 전에 발표한 앨범 [고결한 충돌]이 그것이다.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이전에 [고결한 충돌]이 있었고 이 둘은 마치 시리즈 같다. [고결한 충돌]이 가족 이야기의 전반이라면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는 가족 이야기의 후반 같다. 어쨌든 이 둘은 하나의 주제로 묶인다. JJK는 가족 이야기로 벌써 두 장의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번 앨범에는 다른 유부남래퍼도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스내키챈과 베이식이 랩을 보탰다. 그리고 여전히 주제는 하나다. 이 두 래퍼 역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을 랩 가사로 옮겼다. “가족과 일의 밸런스 충분히 유지하며 잘 사는 멋진 남자들도 많지 / 매일 밤 홍대 이태원의 잔치 / 못 가는 게 애기 때문이라고? No /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아서 Yes” 베이식의 진솔한 랩을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러한 유의 결과물을 한국힙합의 서브카테고리로 명명해도 되지 않겠냐고. 이제 한국힙합에는 유부힙합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긴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조금 더 큰 틀에서 다시 말해보자. 한국힙합이 모양새를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초중반을 기억한다. 그 때 패기 있게 등장했던 어린 래퍼들이 지금은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 때 등장한 모든 래퍼가 여전히 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랩을 놓지 않은 래퍼 중 상당수가 이제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됐다. 힙합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래퍼지만 사회 안에서 그들의 상황은 달라졌다. 나이가 들었고 책임져야할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래퍼들은 그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부남으로서의 삶을 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기 마련이고 래퍼도 예외일 순 없다.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는 래퍼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언젠가는 유부힙합의 서사가 한국힙합의 서브카테고리 중 하나를 넘어 주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어린 래퍼들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래퍼들 역시 계속 쌓일 것이다. 힙합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한지 이제 20여년, 어쩌면 한국힙합은 또 다른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를 가리켜 힙합의 변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날 것에다 혈기 넘치고 이분법적인 태도가 힙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유부힙합은 더 이상 힙합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힙합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함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진실함이라는 프레임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시기의 어떠한 모습이든 그것을 진실함이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는 태도 자체가 바로 힙합의 본질이다.

    사람의 모습은 시기마다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어릴 적 JJK는 누구보다 강경하고 완고한 태도를 지닌 래퍼였다. 그는 길거리 힙합문화의 수호자였고 가장 매서운 힙합 심판자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이와의 대화를 앨범에 담고 아내와의 갈등을 음악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의 힙합이 변질됐냐고? 당연히 아니다. JJK의 삶은 달라졌지만 JJK의 힙합은 그대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을 가장 진실하게 랩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부힙합이라. 웃음기 깃든 표현이지만 웃기기만 한 말은 아니다. JJK는 한국힙합에 새로운 얼굴을 더하는 중이다. 그렇게 래퍼들은 아버지가 된다.

    Written by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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