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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이브걸스가 잡아낸 마지막 기회
    Feature/케이팝 인사이트 2021. 6. 9. 12:30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1분기의 화두라면 단연 브레이브걸스 (이하 '브걸')의 차트 역주행입니다. '롤린'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있습니다. 군인을 대상으로 한 정밀 타겟팅, 차트 역주행이라는 티핑 포인트를 위한 '전염' 조건 구성 등. '운전만 해'까지 히트 중인 이들에 대한 연구는 보다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들의 스토리는 얼핏 제한된 업종 속 소수의 삶 같아 보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미 한번 굴러 떨어져 절망하는 언더독들이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는 모습,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영화이자 실화입니다. 주연 배우만 달라졌을 뿐이죠. 

    이들의 성공에 사실 새로운 건 없습니다.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론이 포화에 이른 것이 현대사회니까요. BTS의 성공을 두고 글로벌 팬과의 소통, SNS 전략 등을 논하지만 기획사가 적용하는 기본적인 프로모션 매뉴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브레이브걸스일까요? 저는 마케팅 전략보다 '한 끗 차이'를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태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잠시 시선을 미국으로 돌려보면, 해마다 실시하는 미국 프로농구(NBA) 드래프트 60인이 되기 위해 약 350개의 미국대학 1부리그 선수들 약 1800명이 경쟁합니다. 미국대학은 총 4100개가 넘으니 엄청난 경쟁률이지요. 그렇다면 1부리그 소속이 아닌 나머지들은 어떻게 꿈을 펼칠 수 있을까요? 

    넷플릭스 '라스트 찬스 대학'을 보면 추락한 유망주들을 모아 다시 1군 대학으로 보내는 목적의 대학이 존재합니다. 29승 1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며 주전 전원을 1군으로 올려 보낸 이스트 엘에이 대학의 존 모슬리 감독이 강조하는 건 간단합니다. '마지막 기회를 위해 언제 누가 와도 선택될 수 있게 차이를 보여줄 것.'

    그 과정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대학이 찾아올 지 모르고 방문이 곧 성공을 담보하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모슬리 감독이 가장 화를 낼 때는 선수들이 해이해지는 순간입니다. 선수도, 감독도 안 보이는 곳에서 더 혹독하게 훈련합니다. 해체를 고민하면서도 보다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존버한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와 브걸의 관계가 이와 유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단 한번의 기회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텨온 순간들이 끝내 결정적인 차별점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상향 평준화된 곡과 안무를 들고 위문 공연을 갑니다. 추천 알고리즘과 플레이리스트 덕에 과거의 곡이 현재의 곡을 뒤집고 인기를 누리는 환경도 조성되었고 그로스해킹 등 차트 역주행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 기술이 등장하고 있는 세상이죠. 

    하지만 모두가 '꼬북좌' 등의 별명을 가진 브걸 멤버들처럼 무대에 임했다 자신할 수 있을까요? 단번에 답할 수 없다면 이미 이들이 만들어낸 차이를 은연중에 인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브걸의 극적인 성공에서 생각해볼 지점은 역주행이라는 사건보다 이후 대중이 지속적으로 선택할 이유를 위해 안보이는 곳에서 연단해온 시간과 마음가짐에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매디였습니다.

     

    *HIM 매거진 5월호 게재

    안승배, 음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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