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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리네어 특집] "일리네어가 한국힙합에 남긴 것들"
    Interview/Player's View 2020. 8. 9. 13:24

     

     

    김봉현 (이하 'B') : 안녕하세요,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입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봤어요. 얼마전에 일리네어 레코즈의 공식해체 소식이 전해졌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있고 추억에 젖어 계시는데 일리네어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역사와 성취를 정리하는 특별대담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음악 저널리즘 그룹 매디 (Maedi)의 필진들을 모셨습니다. 한 번 소개해주시죠. 

    안승배 (이하 'S') : 안녕하세요. 봉현님과 함께 힙합/알앤비 글을 작성하고 있고 IT회사 마케터로 재직 중입니다. (현재는 음악에디터로 변경)

    원지훈 (이하 'W') : 안녕하세요. 현재 A&R로 일하고 있고, 매디에서는 주로 힙합과 알앤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김은우 (이하 'E') : 안녕하세요. IT회사 재직 중이고 매디에서는 주로 케이팝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업으로 '미국음악일기' 라는 칼럼을 연재중입니다.

     

    B : 이틀 전에 일리네어의 해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다들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S : '올 것이 왔구나' 라고 느꼈고요. 사실 일리네어와 한국힙합의 팬들이라면 지난 2년 동안 일리네어가 어느 정도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 방식으로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세 뮤지션이 어느 정도 갈 길이 달라지고 있었고, 각자의 음악에서도 표면화 되고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중에 대표적인 앨범이 더콰이엇의 <glow forever> 였고요. 

    W : 좀 당혹스럽다고 해야 되나? 왜냐면 바로 그 전에 빈지노의 탈퇴라는 뉴스가 크게 난 상황에서 해체 글이 올라오니까 되게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는 느낌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급하게 마무리 짓는 느낌으로 다가올수도 있으니까요. 

     

    B : 저는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 '그냥 이렇게 또 시간이 흘러가는구나.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네. 이렇게 한 시대가 가고 또 새로운 시대가 오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리네어와의 설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온라인에 이미지 한 장이 공개됐었죠. "도끼와 더콰이엇, 함께 손잡고 일리네어 설립하다"

    S : 한국힙합 팬으로서는 이 둘을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어요. 이전의 (국힙) 생태계라면 홍대에서 인기를 얻던 래퍼들을 향해 기획사들이 메이저로 러브콜을 해요. 그 당시엔 힙합이 지금처럼 인정받던 장르가 아니어서 계약을 해도 앨범을 준비할 때 여러가지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애매한 랩 앨범을 내고 (팬들은) 실망을 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콰이엇과 도끼가 메이저로 똑같이 가는 대신 언더에서 우리만의 색깔을 더 강하게 끝까지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그래 이거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둘만은 절대 꺾이지 않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희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7aNpILNcct4

    당시 이들의 포부가 잘 담겨있던 '1llionaire Way' (2011.07)

     

    B : 저도 '자신만의 방식' 이라는 게 일리네어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을 해요. '성공하려는 방법들이 비슷비슷하다' 라고 하고 본인들은 이제 다른 방식을 선택한 거잖아요?

    E : 방송국에 가서 활동하고 음원차트 1위를 노리는 등의 방식이 아니잖아요? 인디펜던트 음악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만의 생존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심지어 일리네어는 엄밀히 말하면 '쇼미더머니' 로 뜬 것조차 아니에요. 생존방식조차도 자신만의 방식을 추구했어요. 음악만 자기방식이 아니라 활동도 자기방식이었다는게 핵심인 것 같아요. 

     

    B : 그렇죠. 어떻게 보면 상상력과 용기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방식을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메이저와 계약을 하는 사례도 있었고요. 

    W : 사실 그런 생각도 좀 들어요. 이제 쇼미더머니의 여파가 물러가고 한국힙합이 자기만의 색을 많이 갖춰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 시작점이 일리네어에 있었다고 보거든요. 

     

    B : 일리네어의 인디펜던트한 회사 설립은 어떻게 보면 부와 명예를 얻고 음악에 플렉싱을 하는 것과도 연결된다고 봐요. 본인들이 사장이기 때문에 사실 수익의 거의 대부분이 본인의 계좌로 들어갔거든요. 제 라디오에 나오셔서 얘기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 방식의 성공이 더 많은 돈을 가져다주었고 그것들이 본인들의 캐릭터와 전략으로 활용되는 선순환이 아니었나 싶고요. 물론 여기서 전제는 그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거지만요. 

    S : 사실 이전까지 한국힙합과 케이팝은 서로 적대감이 컸잖아요? 케이팝 필드에서 흔한 개념인 '팬덤' 이라는 요소를 일리네어가 전략적으로 활용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은 그들만의 엣지를 유지하지만 팬덤 전략은 케이팝의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한거죠. 예를 들어 SNS 소통이나 이벤트를 활발히 하면서 본인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로고인 '1' 을 효과적으로 브랜딩한다던지 여러 방식들을 그들의 강한 음악과 결합해서 힙합 씬에서 그들만의 파이를 더 확장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B : 그러니까 '너희도 일리네어 갱이야' 라고 하면서 우리는 다같은 일리네어 갱이라는 소속감을 주고 팬덤을 이끌어나간거죠. 굿즈도 팔고. 지금 은우씨 모자도 '일리네어 갱'이죠.

    E : 네 그래서 가져왔죠. (일리네어 컴필 앨범을 가리키면서) 이 (롤렉스) 시계의 색깔을 멤버마다 다르게 가져가서 상징을 준건 굉장히 아이돌적인 방식이거든요. 그런 테크닉적인 요소들도 있지만 보다 중요했던 건 태도인 것 같아요. '우리도 주류가 될 수 있고 우리만의 음악을 해서 1위를 할 수 있다' 는 것. 

     

    B : 그 태도가 쇼미더머니에서도 드러났죠. 쇼미에 출연했다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들도 (다른 참가자들과) 똑같을 수 있지만 뭔가 달랐잖아요.

    E : 재미있는게 일리네어가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나가건 쇼미더머니에 나가건 항상 자신들에게 필요한 순간에 취해야 할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러 나갔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사실 A&R의 관점에서 보면 A&R이 아티스트를 키우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스스로들 하고 있는거에요. 자신들이 먼저 브랜딩을 만들고 이후에 미디어를 활용해서 효과적으로 소개한거니까요. 직접 해냈다는 점에서 지금 생각해봐도 놀랍네요. 

    S : 일리네어가 어떻게 보면 한국힙합 역사에서 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의 효시인 것 같아요. 1세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때는 씬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그걸 하고 있는 사람들도 '아 이걸론 밥 벌어먹기 힘든데' 라는 걸 서로 공감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직장인이 되었고 나머지는 도끼가 말한 것처럼 (메이저에) 영합했죠. 지금 다모임 등 일리네어와 같은 세대들, 창모-수퍼비 같은 일리네어 키즈들 모두에게 보이는 특징을 일리네어가 처음 세워준 건데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끝까지 진행했던 첫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E : 좀 감성적으로 보면 사실 힙합을 끝까지 믿었던 사람들이 힙합의 구원을 받은 거잖아요. 그게 좀 어떤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B : 리스크를 기회로 바꾸고 자신의 컴플렉스를 오히려 매력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한거죠. 그리고 그 근간은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고 계속 버티고 몰입했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고요. 

    E : 오히려 기존에 힙합을 하더 사람들은 케이팝에 대해 쿨하지 못했고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이나 열등감같은 게 있었거든요. 일리네어는 처음으로 케이팝 앞에서 대등했고 '너도 나도 그냥 똑같은 음악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세대였던 것 같아요. 그게 꽤 큰 차이라고 보는데 왜냐면 도끼가 요즘이야 '힙합 꼰대, 힙합 근본주의자'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도 맞기도 하지만요) 박재범에게 제일 먼저 손 내밀어서 '이 친구도 랩을 잘하고 힙합 할 수 있다' 고 샷아웃 해준게 도끼거든요. 

     

    B : 그 당시에 도끼가 제게 해준 말이 기억나네요. 이 씬의 래퍼들보다 오히려 박재범이 더 힙합적이다. 도끼는 그 안에 숨겨진 힙합적인 애티튜드를 봤고 그래서 같이 했던 거죠. 단순히 그가 아이돌이라서 그의 인기를 업어가려 했던 게 아니라. 일리네어가 처음으로 얘기했던 것들이 '셀프메이드' 라는 서사잖아요? 이제는 많이 익숙하지만 예전엔 그게 뭔지도 몰랐죠. 사실 이게 힙합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힙합은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에서 살았던 흑인들의 음악이기에 성공하고 부와 명예를 얻어서 그 환경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 그게 힙합에 많이 투영되어 있잖아요. 도끼와 콰이엇은 그걸 간파했고 그것을 자기 식으로 혹은 한국에 사는 젊은이들의 방식으로 재현했던 거죠. 콰이엇이 태어난 광명은 미국에 있는 게토 (Ghetto)는 아니지만 서민적인 동네에서 자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그 본질은 같은 거니까요. 

    W : 그래서 한국힙합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제대로 힙합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 튀어나왔다는 느낌을 주는 등장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누명을 많이 쓴 것 같기도 하고요. 

    E : 사실 정당한 평가를 받았던 적은 (꽤 오래전부터 봐도) 많지 않아요. 대중에게는 언제나 사랑을 받았지만요.

    B : 하지만 처음부터 정당한 평가를 한 사람이 한 명 있었죠.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습니다. 

    E : 박수 한 번 치고 갈까요? (전원웃음)

     

    B : 그러면 이 얘기를 해보죠. 일리네어 설립 당시 많은 비난이나 기존 팬들의 등돌림, 배신감 토로 등이 많았어요. 혹시 여기 있는 분들도 그랬던 적이 있나요?

    W : 콰이엇의 팬들 중에 그렇게 돌아선 사례가 많을 것 같아요. 

    E : 빈지노도 처음에는 재지팩트 활동처럼 보다 재지한 느낌의 곡들이 많았기 때문에 <24 : 26> 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는 'Profile' 이라는 트랙이 확 튀거든요. 유일하게 일리네어 트랙이라고 할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아 일리네어 가면 이상해지는 거 아냐?' 라는 얘기를 팬들이 진지하게 했어요.  

     

    B : 콰이엇이 초반에는 풋풋하고 순수한 청년의 가사들 ('닿을 수 있다면', '상자 속 젊음')을 얘기하면서 인기를 끌었었고 그게 바로 소울컴퍼니의 정체성이었잖아요? 그런 소울컴퍼니의 아이콘이었던 사람이 일리네어를 설립하고 성공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더 강하고 빡센 태도로 '밑바닥에서 내가 왔고 그래서 이렇게 자랑하는 거다' 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꼈던 거죠. 

    S : 저는 고백하건대 사실 소울컴퍼니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웃음) 물론 처음 2년은 멋있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것들에만 너무 치중한다고 생각했던 팬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럴 때 콰이엇이 과격했지만 변화의 무브를 보여준 거 잖아요? '이 답답함을 해소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더 세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B : 인간은 매우 복합적인 존재잖아요. 뮤지션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언제라도 할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그냥 '저런 면에서 변화한거구나, 저렇게 선택했구나' 하고 말거든요. 그래서 배신감 같은건 사실 1도 없었고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한걸까? 앞을 내다본 것일까? 몇 년 후면 어떻게 달라질까?' 같은 생각으로 계속 접근했었죠. 

    E : 약간은 배신을 계속 시켜야 하는 것 같아요. 배신하지 않는다면 소울컴퍼니 후기처럼 계속 갇혀있을 수 있거든요. 더콰이엇의 긴 커리어를 보면 소울컴퍼니 시절조차도 컨셔스한 랩, 재지한 랩이 가장 힙할 때였기 때문에 그걸 했었고, 트랩을 할 때는 트랩이 가장 핫하니까 한거거든요. 항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S : 사실 이들과 같은 결에 있는 박재범이 예전에도 했던 얘기가 '아티스트의 생명력이 더 길어지고 오리지널하게 가려면 때로는 팬들의 기대를 배반할 줄 알아야 한다' 였거든요. 

    E : 전 그래서 일리네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 시대를 정리하는 앨범, 사운드, 그리고 메시지도 결국 더콰이엇의 <glow forever> 앨범을 기점으로 말할 수 있거든요. 자기가 스스로 혁명을 만들고 그것의 끝조차 자신이 낸거죠. 

    W : 에필로그 같은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B : 일리네어는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미국힙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시도했던건데 아직도 기억나는 웃픈 에피소드가 있어요. '일리네어 갱' 이라는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게시판에서 "너네가 무슨 갱이냐"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던 게 기억이 나거든요. 도끼가 제가 진행했던 '힙합초대석' 에 나와서 그런 말을 했어요. "갱이라는 건 사전적으로는 깡패라는 뜻이 있겠지만, 요즘 힙합 씬에서의 갱은 그냥 멋진 무리라는 뜻으로 확장되서 쓰인다" 라고요. 

    S : 앞으로 계속될 싸움인 것 같긴 해요. 그 당시에는 '갱' 이라는 단어를 두고 벌어진 시비였을 뿐이고요. 

    W : 지금은 그 토픽에 '멈블랩' 이 올라가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S : 그런 팔짱 끼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아요. 다들 힙합이 조금만 우스꽝스러워진다 싶으면 언제든지 "것봐라, 내가 말했지. 너네 이런 거 하면 되게 바보같다는 거" 하면서 흠집 낼 준비는 항상 되어있는 것 같아요. 

    W : 웃긴 건 그런 댓글들이 달리는 곳이 힙합 커뮤니티라는 건데 가끔은 가슴 아파지는 순간들이기도 한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GDIjtuf8OYM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던 'Illionaire Gang'

     

    B : 제가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일리네어가 인기를 얻고 음원차트에 오르면서 TV 출연을 하고 심지어는 무한도전까지 나왔는데 그 과정 속에 타협의 흔적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에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는데 예를 들면 에픽하이 같은 경우엔 공중파 예능에 많이 출연했었지만 그들은 어찌보면 자아를 분리한 거잖아요? 힙합의 자아와 방송인으로서의 자아. 그게 꼭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힙합팬들은 어쨋든 그런 판타지가 있으니까요. 힙합만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저 위까지 올라가는 그런 무언가를 바랐는데 그걸 일리네어가 해낸거니까요. 

    랩스타라는 개념도 뺄 수 없죠. 도끼의 <Southern Rapstar> 믹스테입을 예로 들면 도끼가 랩스타라는게 뭔지 정희해주거든요. 1위를 한다고 랩스타가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음악과 태도, 즉 진짜 힙합으로 랩스타가 되는 것을 중요시했던게 도끼였고 우리가 봐도 최초의 진정한 랩스타가 아니었나 싶어요.  

    W : 그쵸, 그리고 (도끼가 했던게) 다른 래퍼들에게도 희망의 아이콘이 되는 거잖아요. '정말 힙합으로 끝까지 가려면 뭔가 하나씩 버려야 해' 라는게 기존의 스탠다드 였다면 기본적으로 래퍼들이 노리고 갈 자리가 별로 없었을 거에요. 예전에 버벌진트가 '라디오스타' 에서 했던 얘기처럼 거기 끝자리에 앉아 있는 게 최종 목표라면 누가 랩을 열심히 하겠어요? 이 방향으로 정상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제시하면 그게 정말 bar를 올려버리는 거거든요. 더콰이엇이 'glow forever' 의 방향으로 향하는 순간 도끼는 '킬빌' 에 나와서 '힙합꼰대' 를 공연했죠. 그게 이제 좀 (각자가) 상징적으로 갈리는 순간 같아요. 

    S : 사실 저는 그 지점에서 일리네어가 점점 깨지겠다고 생각했어요. 리얼하게 힙합을 끝까지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 이후엔 수많은 일리네어 키드들이 그 방식으로 성공했고 이제 그 모델 자체는 일상이잖아요? 그랬을 때 그 다음 스텝이 뭐냐? 라고 하면 저는 이제 리얼이고 페이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거든요. 이제 중요한 건 각자의 정서와 오리지널함이고 그 경계의 유연함을 압축해서 보여준 게 더콰이엇의 <glow forever>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E : 아티스트가 되길 바랐던 빈지노는 아티스트가 됐고, 랩스타가 되길 바랐던 도끼는 전통적 의미의 랩스타로 남았고 영원히. 그리고 더콰이엇은 항상 프레시하고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어했던 사람인데 그것의 아이콘이 되었으니 가장 올드한 사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프레시한 최전선의 끝에 서있는 사람이 됐어요. 결국 세 명이 모두 자기가 바라던 자리로 가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B : 일리네어 컴필 앨범 <11 : 11>에 대해서 한 번 얘기를 해볼까요? '연결고리' 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이 트랙이 굉장히 선언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 노래가 사실 랩적으로 즐길 게 많진 않지만 다시 보면 래퍼의 정체성만 있는 랩송인 것 같거든요. 무슨 얘기냐면 '연결고리' 는 랩 트랙이라기 보다 어떤 선언문 같아요. '지금이 힙합의 시대' 라고 선언하는 듯한 아이코닉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W :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저렇게까지 도발적인 커버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단 커버부터가 너무 신선한 시도가 아니었을까요? 가지고 있던 마인드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E : 타협하지 않는 일리네어 웨이의 시작인거죠. 심지어 힙합꼰대라고 디스를 하거나 당하기도 했던 가리온의 MC메타가 곡을 시작하잖아요. 처음 시작을 그렇게 과거의 정신을 잇는 것도 어찌보면 타협하지 않는 일리네어 식이 녹아 있는데 분명 노래방 히트곡은 맞고 재미있네요. 

     

    B : 도끼가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난 믿었다" 같은 말들. 불안을 견디는 일종의 용기죠. 어떤 사람들은 불안함 때문에 합리화를 하고 포기를 많이 하거든요. 믿는다는 태도 자체도 결과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은 말의 힘과 정신적인 마인드셋의 힘을 간과하고 공허한 말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도리어 그게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과 마인드셋이 계속 영향을 주면서 안될 것도 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E : 이 앨범이 어찌 보면 공격적인 가사나 욕설이 많은데 대중들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라면 이 (공격적인) 톤이 남들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나를 그렇게 깎아내리지 말라' 는 방어적인 태도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헤이터들이 나를 안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거지. 공격적이고 돈자랑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정신에 가까웠어요. 긍정의 정신이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W : 힙합에서 많이 얘기하는 'Good Vibe' 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돈자랑이 대체 뭐가 굿바이브?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공격적으로 보이는 언어와 태도 안에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에너지가 강하거든요. 그 에너지를 음악 안에 언어로 담는 게 아닌, 태도로 담는 시대가 되면서 그걸 자연스럽게 팬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엔 무조건 이걸 컨셔스하게 풀어내야 올바른 방식이라는 고집이 있었는데 이 시대부터는 거기에서 나오는 에너지 그 자체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는데 그 흐름에 <11 : 11> 앨범이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어요. 

     

    B : 지금 생각하는 가사는 "나는 진지한 것보다는 진실한 게 좋아" 에요. 이런 문장도 그 당시의 고정관념을 찌르는 말이거든요. 돈 얘기를 할 때 대부분은 '너무 가볍고 허세' 라고 했죠. 하지만 (일리네어는) 다른 관점에서 돈얘기 같은 것들을 이것이 우리가 느끼고 있는 진짜 삶의 한 부분이다 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진지하게 정치, 사회 얘기하는 것보다 목걸이 얘기를 진실하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거죠. 

    W : 힙합 팬들에게 끼친 영향도 있지만 힙합의 새로운 팬들을 유입해올 수 있었던 게 힙합 특유의 집단적인 에너지가 있고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개인들이 있어요. 각 개인이 가진 단단한 자아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느끼고 따라가게 만드는 리더십이 있었던 것 같아요. 

     

    B : 일리네어가 본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끼친 영향력들이 있잖아요? AOMG도 그렇고 일리네어 키드들의 등장도 그렇고요. 수퍼비나 창모처럼 일리네어를 보고 자라 그들의 특성을 내면화한 래퍼들. 

    E : 일리네어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고요. '우리도 메이저가 될 수 있네?' 라는 생각이 한국힙합의 가장 큰 변화였다고 생각해요. 이 세 명은 자신들이 지향했던 바가 있었고, 그걸 솔직하게 앨범에 얘기했고 (각자가 지향했던) 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W : 지금은 랩게임에서 열심히 했던 플레이어가 퇴장했다는 것 자체에 박수를 쳐줄 시간이 아닐까 해요. 

    S : 일리네어의 끝이 머지 않았다고 느꼈던 또 하나의 순간이 생각났어요. 국힙상담소에서 더콰이엇이 레이블 얘기를 했던 부분이에요. '아직까지는 레이블이 팀 같았다. 리스너들도 레이블을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의 팀으로서 인식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이 많았다. 결국엔 데프잼 (Def Jam Recordings)이나 다른 글로벌 음반사처럼 어느 뮤지션이든 합류할 수 있는 큰 힙합레이블들이 늘어나야 한다' 는 방향성을 주셨거든요. 사실 일리네어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선 레이블이라기보다 세 명의 올스타가 뭉친 그룹이자 브랜드였으니까. 

    그래서 일리네어라는 것은 2010년대의 한국힙합 전성기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다음 10년이 발전하려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할 것이기도 한거에요. 그래야 각 레이블들이 XL Recordings 처럼 더 자유롭게 다양한 뮤지션들을 받아들여서 성장할 수 있는거니까요. 이미 어느 정도는 시작된 2020년대의 한국힙합씬에서 이 세 분이 이제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일리네어 웨이' 로 새로운 길을 어떻게 보여주실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리고 (그 새로운 계획이)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끊이지 않는 기대가 있습니다. 

     

    Interviewer : 김봉현 (편집 : 안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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